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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4] - 가족영화
씨네21 취재팀 2006-09-29

일상의 균열을 담은 가족영화 4편

때로는 벗어나고픈, 때로는 기대고픈

<럭셔리 카> Luxury Car 왕차오/ 2006년/ 중국, 프랑스/ 88분/ 아시아영화의 창

올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부문 시선상 수상작. 왕차오 감독은 이농현상과 천안문 사태 등 중국을 뒤흔든 시대적 움직임 속에 도시로 간 뒤 연락이 끊긴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의 문제를 생각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시골 학교에서 평생을 교사로 일해온 나이 든 남자가 죽음을 앞둔 아내를 위해 도시로 간 아들을 찾아나선다. 그는 일단 도시에 살고 있는 딸 얀홍에게 찾아간다. 건실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 같던 딸은 사실 가라오케 바에서 일하며 나이 든 고용주의 애인으로 살고 있으며, 아버지에게는 그를 남자친구라고 소개한다. 아버지는 은퇴를 앞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아들의 소재를 찾아다니지만 노력의 결실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희망은 없어 보인다. <럭셔리 카>는 사회적 비판의식보다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대도시로 떠나버린 자식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하루가 다르게 나이를 먹는 부모의 심정을 예민한 통찰력으로 관찰한 영화다. 딸이 진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딸이 남자친구라고 소개한 남자가 정말 남자친구일지, 아들이 과연 살아 있기는 한지 아버지의 마음속에서는 근심이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아버지의 심중을 읽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도시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자식들의 안위에 대해 근심하지만, 그 깊고 넓은 근심 때문에 오히려 딸을 채근하지 않는다. <럭셔리 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은 아버지가 나이 든 경찰과 신뢰를 쌓아가는 대목들이다. 그 모든 실수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힘껏 살아가는 삶을 인정한다는 게 부모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운니> Life is All about Friends 무랄리 나이르/ 2006년/ 인도, 영국, 프랑스/80분/아시아영화의 창

인도 남부 시골마을의 장난꾸러기 소년 운니. 상층 카스트 계급에 속하는 집안 덕분에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는 있지만, 보수적인 가풍은 그의 숨통을 조인다. 그런 그에게 학교는 가장 좋은 탈출구. 친구들과 작당해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고, 선생님을 골탕 먹이며 운니는 시끌벅적한 일상을 보낸다. <사좌> <개의 날> 등 전작들에서 날카로운 풍자를 선보였던 무랄리 나이르 감독은 예리한 비판의 날을 소소한 일상사의 장막 아래 슬쩍 감추어놓았다.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소년들의 호기심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천진한 세계를 잔잔하게 그려가던 영화는 순수함의 판타지에 몰입하는 대신 불현듯 잔혹한 현실을 들이댄다. 일상 속에 균열처럼 존재하던 카스트 제도는 결국 한 소년의 삶을 비극적인 파국으로 이끌고, 아이들의 작은 세계는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99년 부산영화제 PPP 프로젝트 중 한편이었던 <운니>는 무랄리 나이르 감독이 새롭게 준비 중인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무화과의 얼굴> Faces of a Fig Tree 모모이 가오리/2006년/일본/94분/아시아영화의 창

자기 세계에 은둔하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가족을 담은 영화. 초보작가 유메는 목수인 아버지로부터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고 아버지가 빌린 원룸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유메는 또한 느닷없이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한다. 유메는 슬픔을 거부하며 쾌활하게 떠들어대는 어머니 대신 영정사진을 찾다가 자신의 입양서류를 발견한다. <게이샤의 추억>에 사유리의 게이샤 어머니로 출연했던 모모이 가오리의 감독 데뷔작. 늦은 나이에 이 영화를 만든 모모이 가오리는 슬프다, 고 소리내어 말하기보다, 남편의 담배를 없애야 한다며 멍하니 줄담배를 피우는 아내의 모습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서정적인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는 가족이, 다만 말없이 머물러주는 모습이 눈물겨운 영화다.

<진다바인> Jindabyne 레이 로렌스/2006년/호주/123분/월드 시네마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 <숏컷> 원작 중 하나이기도 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발밑에 흐르는 강>을 각색했다. 정비소를 운영하는 스튜어트는 세명의 동네 친구들과 함께 깊은 산속으로 낚시여행을 간다. 그들은 계곡에 떠 있는 젊은 원주민 여인의 시체를 발견하지만 어렵게 들어온 길을 되짚어 나가고 싶지 않아 낚시가 끝난 다음에야 신고를 한다. 스튜어트의 아내 클레어는 남편이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을 여인을 방치했다는 사실을 용서하지 못하고, 모두 함께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클레어가 살고 있는 곳의 지명인 <진다바인>은 면도날처럼 얇고 예리했던 원작을 세밀하게 들추어 패스트리의 결을 지닌 이야기로 만든 영화다. 이 영화에는 중산층의 위선과 허망한 관계, 죄의식 외에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과 죽음의 유혹, 인간의 악한 심성을 직시하는 차가움 등이 두루 깃들어 있다. 가브리엘 번과 로라 리니가 부부를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