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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종합선물 [2] - 금지곡 명반 10

그 옛날의 ‘금기’에 빠져봐∼

금지곡에 대한 추억은 아무래도 ‘1970∼80년대’와 연관된다. 1990년대 이후는 금지곡의 ‘파장’과 ‘논란’이 아무래도 그때만 못하기 때문. 그렇다면 7080? 이미 상업화되어버린 이 용어를 쓰기는 찜찜하지만, 어쨌거나 그 시대로 돌아가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단, “그때 정말 황당했어요”라는 말 이상이 필요할 텐데, 이상하게도 이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각설하고.

비틀스, <A Day in the Life> in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

‘록음악 최고의 명반’이라고 평가받는 비틀스 음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한국 발매반은 가히 만신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초의 ‘컨셉 앨범’이라고 평가받는 이 음반에서 정작 그 ‘컨셉’을 이루는 두곡이 빠져 있다는 사실. <A Day in the Life>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가 그 곡이다. 두곡은 ‘1967년의 알딸딸한 분위기’를 상기할 때 적절한 곡이고 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미 많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A Day in the Life>는 존 레넌 파트와 폴 매카트니 파트가 병렬된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종 사운드 이펙트를 동원하여 긴박한 느낌을 던지고 있으니 차 안에서 들으면 정신 사나울 수도 있겠다. 오버더빙을 여러 번 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끝나는 엔딩 음이 유난히 길다는 점도 첨언. 이 불후의 명반의 표지도 기가 막힌데, 칼 마르크스의 그림이 있다는 이유로 배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시커멓게 덧칠을 해놓았다.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야 할 만한 작품.

킹 크림슨, <The 21st Century Schizoid Man> i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1969)

‘21세기 정신분열자’라는 제목의 타이틀을 가진 곡이 심의를 통과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게다가 그로테스크한 표정의 사람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표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음반 표지도 ‘반려’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앨범은 의도하지 않게 ‘편집음반’으로 발표되었다. 첫 트랙을 뺀 다음 킹 크림슨의 세 번째 앨범 <Lizard>(1970)에서 두곡을 발췌해 삽입했고, 앨범 표지로는 아예 세 번째 앨범을 사용했다. 정리하면, “표지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 아니지만 속 알맹이에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 한곡 빼고 들어 있으며, 표지는 <Lizard>지만 속 알맹이는 이 앨범의 수록곡 두개만 들어 있다”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정신분열증이 걸릴 정도로 복잡하고 혼동스럽다. 그러니 교통체증이 심각할 때 <The 21st Century Schizoid Man>을 들으면서 그때의 분노를 재현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법일 수 있겠다. 금지곡은 아니었지만, 한 트랙 건너 이어지는 <Epitaph>의 “나의 묘비명은 혼동”(Confusion will be my epitaph)이라는 가사를 들으면서 고향 선친들의 묘비명을 떠올려보는 것은 조금 엽기적일까.

사이먼 앤 가펑클, <Cecilia> in <Bridge over Troubled Water>(1970) 혹은 <Simon & Garfunkel’s Greatest Hits>(1972)

피트 시거, 밥 딜런, 리드벨리처럼 ‘사회의식적’인 포크 싱어들의 ‘저항가요’들은 아예 음반으로 접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사이먼 앤 가펑클처럼 그닥 정치적일 것도 없고 저항적일 것도 없는 팝 포크 듀엣에 대해서도 금지곡이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문제의 곡은 <Celcilia>인데, 이 듀엣의 최고이자 최후의 대박이 된 앨범 <The Bridge over Troubled Water>에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곡이다. SG 워너비도 경하해 마지않는다는 (‘SG’가 ‘Simon & Garfunkel’의 약자란다) 이 청아한 멜로디와 하모니의 듀엣의 곡 치고는 까불거리는 분위기의 곡인데, 곡의 가사는 2층방 침실에서 자신의 연인인 세실리아가 다른 남자와 뒹굴고 있다는 ‘고려가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발매반에서 이 곡은 ‘그레이티스트 히츠’ 앨범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앨범 표지를 유심히 보면 칼로 긁은 듯한 자국이 있다는 사실….

핑크 플로이드, <Brain Damage> in <The Dark Side of the Moon>(1971)

빌보드 앨범 차트에 741주 동안 머물렀다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한국 라이선스 버전에는 여러 가지 판본이 있다. 그 하나의 판본의 콘텐츠는 원판(오리지널 에디션)의 콘텐츠를 완벽하게 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지에는 두곡의 이름이 빠져 있다. 하나는 <Us and Them>이고 다른 하나는 <Brain Damage>. 나중에 나온 이본(異本)에는 이 곡들이 빠져 있다. 그런데 왜 표지에 곡목이 적혀 있지 않은 곡이 음반에는 수록되어 있었을까. 이유는 이 앨범이 트랙들 사이에 휴지부(pause)가 없기 때문이었다. 부연하면, 한면이 하나의 트랙처럼 수록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내 상상으로는 당시 검열을 맡았던 사람들이 ‘곡이 어디서 끝나는 거야?’라고 헷갈려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혹은 이 음반의 심의를 신청한 국내 음반사에서 기지를 발휘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 덕에 적어도 내가 구매한 음반은 ‘희귀본’이 되었다. 어쨌든 “광인은 당신 머릿속에 있어요”로 시작하는 <Brain Damage>는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금지곡이었지만 금지되지 않은 채.

퀸, <Bohemian Rhapsody> in <A Night at the Opera>(1975)

금지곡이 한두곡 들어 있는 경우를 예로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서도 가장 심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문제의 음반은 퀸의 <A Night at the Opera>인데, “아하 <Bohemian Rapsody>를 말하는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금지곡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름 아닌 첫 트랙인 <Death on Two Legs (Dedicated to…)>라는 곡인데, 수려한 멜로디와 화성을 자랑하는 당시 퀸의 음악답지 않게 거세게 휘몰아치는 곡으로, 제목에 ‘사망’이 있으니 금지곡이 되는 것은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운명이었을 테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라이선스 LP의 재생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 <Bohemian Rapsody>는 명절 때 팝송 프로그램에서 곧잘 나오니, 다소 지겨운 느낌이 있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Death on Two Legs (Dedicated to…)>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앨리스 쿠퍼, <School’s Out> in <School’s Out>(1972)

1980년대 금지곡의 화살을 가장 많이 받은 장르는 단연 하드 록/헤비메탈 계열의 음악들일 것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Screaming for Vengeance>, 메탈리카의 <Welcome Home (Sanitarium)>, 모틀리 크루의 <Dr. Feelgood>, 데프 레퍼드의 <Run Riot>, 건스 앤 로지스의 <Nightrain> 등의 제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이 ‘형님들’ 음악 가운데 하나만 뽑으라면 아무래도 이렇게 와일드하고 엽기적인 형님들의 원조 격인 앨리스 쿠퍼의 <School’s Out>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이유를 묻는다면, 앨리스 쿠퍼는 ‘전곡 금지’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듯. 이렇게 전곡이 금지당한 외국 아티스트들이 피트 시거, 리드밸리 같은 ‘사회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명예는 영예가 될 수도 있겠다. 혹자는 전곡 금지의 사유가 “Don’t you know people are starving in Korea”(“Generation Landslide ’81”)라는 가사 때문(국가모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곡은 1981년에 발표된 곡이라서 그전부터 금지된 이유는 설명하지 못할 듯. 어떤 곡이든 지금 들으면 온건하고 얌전하게 들리기만 하는데….

프린스, <Darling Nikki> in <Purple Rain>(1984)

프린스 본인이 주연한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자,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반년 가까이 정상을 차지하고 1980년대 명반을 뽑을 때 1, 2위를 다투는 작품. 그렇지만 프린스와 한국의 인연은 악연에 가까운데 이 작품도 온전한 형태로 듣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유인즉 <Let’ Go Crazy>와 <Darling Nikki>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기 때문. 특히 <Darling Nikki>는 흥미로운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다름 아니라 미국의 민간음악검열단체 PMRC(Parental Music Resource Center)가 탄생하는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사건의 발단은 앨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딸과 함께 이 노래를 듣다가 화들짝 놀라서 알음알음 모은 사람과 함께 1985년 5월 PMRC를 설립한 것. 가사는 “I knew a girl named Nikki/ I guess you could say she was a sex fiend/ I met her in a hotel lobby/ Masturbating with a magazine.” 하지만 박진영 등의 노력 덕인지 이제 이런 가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할 뿐인데….

펫 숍 보이스, <West End Girls> in <Please>(1986)

험악한 사나이들의 우지끈 쿵쾅거리는 사운드만 금지의 멍에를 뒤집어썼다고 오해하는 것은 금물. 런던 출신의 멋쟁이 팝 듀오 펫 숍 보이스의 ‘댄스 음악’도 사정은 마찬가지. <West End Girls>에 대해서는 과거 나의 지인이 쓴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 곡은 서구 문명의 몰락에 대한 전망을 한 개인의 분열증으로부터 사회주의의 황금기에서 붕괴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적 드라마에서 발견하고 있다. 1절에서는 일상생활의 광기와 자살 충동에 대한 냉정한 테크놀로지에 대해, 2절에서는 현대 문명의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 이면에 있는 공허함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3절은 과거와 미래 모두 탈역사화되고 영원한 현재만이 남았다는 ‘역사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그렇게 깊은 뜻이? 그렇지만 경박한 댄스 리듬이 이런 ‘진지한’ 메시지를 쉽게 중화해주니, 한때 횡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추억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U2, <Running to Stand Still> in <The Joshua Tree>(1987)

무더기 금지곡 지정 이후 누더기가 되어 발표된 음반의 역사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니까 이렇게 말하지 그때는 반쪽이 되다시피 한 음반을 얼떨결에 구입한 뒤 분을 삭이지 못했던 기억이…. 1980년대 이후 최고의 록밴드가 된 U2의 최고 걸작 <The Joshua Tree>가 또 하나의 예다. 4, 5, 6, 7번 트랙에 해당되는 <Bullet the Blue Sky> <Running to Stand Still> <Red Hill Mining Town> <In God’s Country>가 줄줄이 금지당해 게이트 폴더(이른바 더블 재킷)씩이나 만들어낸 LP에는 A면에 세곡, B면에 네곡이 수록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듯한 <Bullet the Blue Sky>의 긴장감도 좋고, 아일랜드 광산촌에 와서 광부가 부르는 민요를 듣는 듯한 <Red Hill Mining Town>의 정겨움도 좋지만,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이 도시의 황폐한 모습을 묘사한 <Running to Stand Still>의 잔잔하고도 강렬한 감정을 추천해본다.

김추자 <거짓말이야>, 김정미 <아니야>, 이장희 <그건 너>, 송창식 <왜 불러>

마지막 10번째 트랙으로는 국내 금지곡 네곡을 메들리로 들어보기를 추천해본다. “거짓말이야”를 네번 반복하는 김추자의 목소리나 “아니야 아니야 그 사람 아니야”라는 김정미의 목소리는 육감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한데, 이걸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이장희가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고, 송창식이 “왜 불러 왜 불러…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라고 외치는 것을 ‘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인식했다는 풍문도. 한편으로는 이런 풍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너무 황당하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곡들의 가수나 작곡자들이 마음속으로는 정말 도전적이고 반항적이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너무 이상한가?). 어쨌거나 당대에는 워낙 유명했던 곡이지만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으니 민족의 명절에 대중음악의 전통을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메리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