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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에서 3차원으로
2001-09-13

해외만화 애니 / 캐릭터 모델

성탄 시즌이 되면 서구, 특히 미국쪽에서 항상 들려오는 해외토픽이 있다. 그해 인기있었던 캐릭터 상품들의 매진과 그걸 구하지 못해 안달인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런 해프닝이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솔드 아웃>처럼 영화화할 정도로 이미 정기적인 사회현상이 돼버린 가운데, 최근에는 ‘파워 레인저’나 ‘포켓몬’ 같은 일본 캐릭터를 찾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과거부터 ‘테디베어’나 ‘바비인형’과 같은 캐릭터 상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 기획 당시부터 구상돼 수많은 변종 캐릭터 상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탱크’, ‘군함’, ‘자동차’와 같은 실제 사물을 축소한 것이나 우주선이나 SF메커닉, 로봇의 플라스틱 모형이나 봉제완구가 그러한 상품의 주류였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는 사람 형태의 캐릭터를 활용한, 고무와 같은 연성 재질의 모형들이 많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남자가 인간형 캐릭터 인형이나 모형을 사모으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등장인물을 활용한 캐릭터 상품의 주를 이루는 이러한 축소모형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와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실제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아무리 입체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2차원 평면에 그려지는 존재다. 디즈니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처럼 애초부터 기본 모형을 가지고 캐릭터 디자인 및 작화를 하는 노력을 들이지 않는 이상, 입체물로 만들어질 때 그 캐릭터 본연의 모습을 표현해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려지는 만화는 흑백이고 기본적으로 간단한 선이나 스크린톤에 의해 굴곡이 표현되며, 그 안의 색깔이나 색조는 독자의 상상으로 펼쳐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컬러로 채색돼 있는 애니메이션조차 자연광이나 일반적인 조명을 고려한 질감이나 색감은 아니기 때문에, 캐릭터가 인물의 기본 등신대에 근접하면 할수록 입체 캐릭터 상품이 되었을 때 어딘가 본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느낌의 모형이 되기 쉽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경향 중 하나인 ‘복고’는 캐릭터시장에도 예외가 아니다. ‘배트맨’이나 ‘슈퍼맨’, ‘마징거 Z’나 ‘데빌맨’ 등과 같은 옛날 캐릭터가 다시 상품화하고 있는데, 과거의 조악한 이미지의 모형이 실물과 같거나 훨씬 훌륭한 모양새로 만들어져 성인이 된 당시의 팬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처럼 추억을 자극하는 상품 중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프란다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간머리 앤> 등 ‘명작극장 시리즈’에 바탕한 ‘소형 조립채색인형 시리즈’다. 200∼300엔짜리 소형 동전상품기의 상품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이 시리즈는 과거에 나온 원색 위주의 로봇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게다가 수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캐릭터 상품을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던 터에 개당 3천∼4천원 정도의 저렴한 값에 어릴 적에 봤던 캐릭터들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이 ‘명작극장 시리즈’는, 드라마를 지닌 모형인 ‘디오라마’에 가깝게 작품 속의 한 장면을 뽑아낸 듯한 동작과 자기인형에 채색한 듯 부드러운 색감을 내 성인들이 일반적인 장식물로 활용해도 될 만한 질을 갖춘 수작 캐릭터 상품이다. 9월16일까지 열릴 예정인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서울만화모형공모전’에는 70∼80년대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만화캐릭터였던 ‘태권V’, ‘주먹대장’, ‘로버트 킹’의 창작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캐릭터들의 상품화가 기획되어 자신이 좋아했던 한국만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캐릭터 상품을 책상이나 방 주변에 놓아둘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 캐릭터의 생명을 좀더 연장해줄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