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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불량한 경험

한 대학에서 기말시험 감독을 하다 겪은 일이다. 한 학생이 답안지를 제출하면서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학생은 낮은 목소리로 “선생님, 제 앞자리의 두 학생이 시험 시작부터 커닝 페이퍼를 보고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학생이 알려준 자리를 주시했다. 과연 그랬다. 한참 관찰하다 현장을 덮쳐 ‘범행도구’를 압수했다. 그런데 문제의 페이퍼에 깨알처럼 박힌 활자는 논술식 문제에 도움이 안 되는 한심한 내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 제보자의 인정머리 없음이 오히려 더 씁쓸했다(이런! 선생이란 사람이 평가의 공정성을 위한 주옥같은 제보를 그렇게 삐딱하게 보다니!).

24년 전 같은 학교 한 강의실에서 나는 비슷한 마음 상태를 경험한 바 있다. 학과 공부와 거리가 먼 대학 첫 학기를 보내고 ‘정치학 원론’ 기말시험을 맞은 나는 앞자리의 친구에게서 ‘비급’이 날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감시가 삼엄한 탓인지 친구는 매우 느린 속도로 시험지를 메워나갔고, 약속했던 ‘비급’은 끝내 오지 않았다. 전날 나는 다른 과목의 답안을 복사하듯 날려줬는데, 그는 공정거래 혹은 경제정의 개념이 전혀 없는 인간이었다. 그날 이후 한 학기 동안 쌓은 우리의 우정은 재가 됐다(어머나! 대학생이 커닝이라는 범법 행위의 공범 여부로 우정의 깊이를 판단하다니!).

사회에 나와서도 ‘불량한 경험’은 계속됐다. 15년 전쯤 신문사 기자로 있을 때 기자 10여명이 모 방송국 드라마 촬영현장을 취재하러 갔다. 홍보담당자가 아직 촬영도 안 된 드라마를 ‘잘봐달라’며 ‘생활보조금’이 든 봉투를 돌렸다. 집이 부유하거나 마음이 부유한 몇은 돌려주었고, 푼돈을 소중히 여기는 나머지 몇몇은 받았다. 며칠 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알고 있던 언노보 기자였다. 그는 누가 돈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내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얘기하자, 그는 당시 상황을 얘기해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취재에 응하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실명인용을 말아달라는 것과 받은 기자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조건을 수락했다. 이틀 뒤 기사는 ‘몇몇은 돌려주고 몇몇은 받았다’는 표현 수위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그 기자가 돈 받은 기자 명단을 끝내 확인 못한 건지 실명 거론이 가혹하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내가 거의 반사적으로 ‘기사 취지는 좋지만 돈 받은 기자를 밝히는 데 협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이를 어째!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기자가 동료의 비리를 덮어주는 조폭적인 생존전략을 의리로 생각하다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불량한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꼭 나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한겨레>에 현직 검사의 몸으로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란 글을 실었다 검찰 내부에서 ‘경고’를 받은 금태섭 검사 관련 기사를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법률지식 없고 변호사 수임료 없는 서민들에게 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를 챙겨주는 친절한 가이드에 불과했다. 검찰이 고객감독 경영 기법을 도입하면 나올 법한 화끈한 대국민 서비스였다. 그런데 왜 그게 검찰 내부에서 ‘경고’ 거리가 되지? 혹시 검찰 내부에서 금 검사에게 ‘커닝 제보 학생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종종 ‘커닝 제보 학생 이미지’가 한국 집단주의의 깊은 내면적 불안이 외재화된 전형적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집단주의는 내집단의 강한 연대와 외부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꼬리를 물고 서로를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구도에서는 집단으로부터의 단순한 일탈도 내부고발의 위협으로 과장되기 쉽다. 그러니 내부의 결속은 다시 강화돼야 하고 과도한 결속은 쉬이 공적영역의 준칙을 위반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리하여 ‘공범의식’만이 집단을 지켜주는 최고의 문화적 가치로 공유된다. 어떤 집단이 시민사회를 대하는 뻔뻔함과 불손함은 거기서 나온다. 누가 뭐래도 결국 밥 먹여주는 것은 ‘패밀리’밖에 없더라는 확신! 한국사회는 하나의 반도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배타적 집단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 같다. 오늘 잠들기 전에 내가 몇개의 폭력조직에 조직원으로 등록돼 있는지 헤아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