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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큐빅스> 미국서 대박
2001-09-13

“대단한 일 아닙니까. 올해의 한국 콘텐츠상이라도 만들어줘야 할 거 같아요. 미국에 제대로 진출한 한국 문화상품 1호라고 봐야죠. 영화야 찔끔찔끔 갔지 메이저로 푼 적이 있나요. 완성도요? 훌륭하잖아요. 현지 시장의 정서도 잘 담았고.”

최근 열린 3D(3차원) 애니메이션 <큐빅스> 시사회 직후, 이를 관람했던 영화사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는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 등을 만든 그가 허튼 소리를 할 리는 없다. 말하자면, <큐빅스>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나타난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8월 중순 미국 공중파 <키즈워너브러더스>를 통해 방송을 시작했는데, 이 채널의 프로그램 가운데 일본의 세계적 히트 상품 <포켓몬>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1위를 차지했다.

<큐빅스>, 국산품 맞나?

20분짜리 텔레비전 시리즈인 <큐빅스>를 보다보면 완성도가 워낙 좋아 이게 정말 국산품 맞나 싶다. 매년 한두편의 장편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지만 완성도와 독창성에서 늘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고, 이는 국내의 애니메이션 제작 능력에 짙은 회의감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큐빅스>는 순도 90%가 넘는 국산품이다. 작품의 출발이 된 로봇 `큐빅스'에 대한 착안부터 모든 캐릭터의 개발, 디자인, 3D 작업,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모든 공정이 `영상벤처기업'인 ㈜시네픽스에서 이뤄졌다. 연출과 시나리오 분야에서 일본 인력을 고용했다는 약점이 있지만, 일부 공정에 대한 하청이란 점에서 그리 문제삼을 건 아니다. 곧 `실전'에 투입될 자체 연출팀이 꾸려진 상태다.

작품의 배경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도시 버블타운이다. 이곳에서 큐빅스가 미지의 에너지원 솔렉스를 두고 악당 닥터K와 대결을 벌여나가는 이야기다. 선악 대결의 단순한 구도이고 80가지가 넘는 로봇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화면에는 따뜻하고 유쾌한 감성이 듬뿍 묻어난다. 살벌한 기색이 은근히 감도는 <포켓몬>과는 많이 다르다. 또 하늘, 유리, 민우 등 인간 캐릭터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특징을 고루 지닌 무국적성을 띠는데 이것 또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단순 재조립으로 무한 변신이 가능하도록 만든 로봇 큐빅스의 아이디어는 특히 빛을 발한다. 26편까지 이어질 두 개의 시리즈는 미국 방영을 먼저 끝내고 내년 봄께 한국과 일본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지금, 해외 배급사들은 52편까지 만들자며 계약을 서두르고 있다.

경제적 효과

“글쎄요, 너무 엄청나서 뭐라 말하기가 어려운데….”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엔지니어를 시작으로 이력을 쌓아온 황경준 시네픽스 회장의 말은 과장같지 않다. 편당 2억6천만원짜리 <큐빅스>는 이미 판매를 시작한 캐릭터 상품, 개발에 들어간 게임, 그리고 극장용 영화화로 부가가치를 계속 높여갈 텐데, 이는 로열티라는 외화수입 형태로 현금화된다. 미국 및 세계 배급은 미국의 포키즈 엔터테인먼트가, 일본 배급은 JR기획이 맡았고, 이들이 벌어들이는 총수익금의 14~20%가 시네픽스에게 돌아온다. 연간 5백~천만달러가 고정적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포켓몬>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포키즈가 <큐빅스>의 마케팅비로 천만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박 가능성'을 증명한다. 현재 포키즈는 차기작 <아쿠아 키즈>를 빨리 계약하자고 재촉하고 있지만, 시네픽스는 충분한 값을 받기 위해 `여유'를 부리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자본이득이다. 경영진은 시네픽스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유명한 `픽사'의 주식 평가액은 2조6천억원에 이른다. “<큐빅스>에 이은 후속물들이 계속 성공해준다면, 픽사 가치의 5분의 1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자본금 20억6천만원짜리 회사의 희망사항이지만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다.

콘텐츠 제작의 모범사례

`장난감 큐빅을 응용해보자. 각 몸체가 자석 자장을 갖고 있어 공중에서 완전 해체된 뒤 재조립될 수 있는 변신 로봇!' 지난 97년에 시작된 <큐빅스> 아이디어였다. 이후 디자이너가 1년여간 수천장의 그림을 그려 지금의 로봇 큐빅스가 완성됐다. “처음부터 세계시장, 곧 미국을 겨냥했죠. 일단 영화쪽에서 일을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유태계가 꽉 잡고 있는 `영화계의 휴먼 네트워크'를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텔레비전쪽으로 돌렸죠.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애니메이터만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작 단계마다 속썩이는 거예요. 스토리보드를 만들려고 하니 그 인력이 없고, 그 다음에는 포스트 프로덕션 인력이 없고….”

이 작품의 또 다른 의의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련의 시스템을 갖춰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자존심과 지구력'이 주효했다. 홍종우 디자인 슈퍼바이저는 “로봇 캐릭터를 개발하는데 국내에 참고할만한 게 별로 없어 갑갑했다”며 “그래도 일본과 미국의 로봇들과는 차별화하자는 원칙을 늘 염두에 뒀다”고 말한다.

진짜 두려움은 불확실성의 문제였다. “이 프로젝트가 과연 될 수 있느냐를 아무도 얘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작업해야 하는 게 늘 어려움이었죠. 3~4분짜리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일정이 자꾸 늦어지면서 과연 될 것이냐는 문제는 더욱 커져갔었고….”

“남의 것을 따라가면 돈만 깨진다”는 회사의 방침은 4년만에 “좋은 물건을 만들면 돈은 따라온다”는 현실로 바뀌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