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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실현될지도 모르는 이야기, <파이널 컷>

‘기억’이 화두인 SF.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지도 모르는 이야기.

만약,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기록하는 기억장치 칩이 머릿속에 내장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까? 너무나 끔찍해서 자살이라도 할까 아니면 좋은 기록만 남기려 개과천선 노력할까? <파이널 컷>은 이런 질문과 함께 시작되는 SF영화다. 시간적 배경은 명확하지 않은 미래사회, 한 사람의 평생 기억을 담는 ‘조이칩’은 아이의 출생과 함께 머리에 이식된다. 비용은 비싸지만 아이를 위해 기꺼이 구매하는 부모가 많아서 인구 20명 중 한명꼴로 칩이 이식되었다. 칩은 죽은 다음에야 제거되는데, 보통 1시간40분 분량의 영상물로 편집되어 장례식장에서 상영된다. 영화는 여기서 좀더 심화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앨런(로빈 윌리엄스)은 조이칩 기록을 편집하는 ‘커터’이다. 영상을 보면서 고인을 추도하는 장례의식 ‘리메모리’를 위해선 당연히 아름다운 기억만이 선택된다. 앨런은 그 방면에 이름난 숙련된 커터로, 자신의 일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인의 어두운 기억을 삭제하는 것을 영혼을 정화하는 작업에 비유한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과연 기억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으며, 기록에 찍히지 않을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며, 더 나아가 기억은 객관적으로 기록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에 봉착하게 된다. 앨런은 우연히 의뢰받은 작업을 하던 중 자신의 기억과 관련된 영상을 보게 되고, 오랜 세월 자신을 짓누르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예상을 뒤엎는 결말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 채 마감된다.

철학적 성찰의 단서를 풍부히 제공하는 이 영화는 화려한 시각적 볼거리보다는 개연성 높은 내러티브가 강점이다. 유전자 조작, 동물 복제가 현실화된 지금, 영화의 상상력이 먼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파이널 컷>은 한 가족의 다큐멘터리를 구상하던 중 착상을 얻었다는 오마르 나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질문을 던지느라 바빠 벌여놓은 이야기를 완벽하게 수습하지 못한 면이 있긴 하나 감독의 독창성과 로빈 윌리엄스의 안정된 연기가 잘 조화되어 있다. 크게 보면, 다큐든 픽션이든 본질적으로 선택과 배제라는 편집의 예술일 수밖에 없는 영화의 숙명에 대해서도 감독은 깜찍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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