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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8] - 성기영
박혜명 사진 오계옥 2006-10-19

<싱글즈> <가족의 탄생>의 성기영 작가

유쾌하게, 단순하게, 수다스럽게, 즐겁게

무심한 듯 흘러가는 일상에서 건져지는 온기는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선경이 노래한다. 경석이 구슬을 달아준 드레스를 입고 있다. 동작에 따라 구슬이 반짝반짝 빛난다. (중략) 옷이 계속해서 화려한 색깔로 변한다. 갑자기 선경이 선녀처럼 펼쳐져 하늘로 오른다. 와- 함성, 박수갈채. (중략) 하늘에 폭죽 터진다.’ <가족의 탄생>에서 선경(공효진)이 합창하던 중 공중부양하는 장면의 묘사는 시나리오를 들추면 이렇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쓴 <가족의 탄생> 시나리오는 공기처럼 일상 주위를 흐르다가 식상할 수도 있는 진심을 이렇게 재치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세개의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되다가 만나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감독님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내 얘기는 채현(정유미)과 경식(봉태규)에게서 시작했다. 너희들 사랑이 새롭고 예뻐 보이지만 결국 너희 부모님도 그런 사랑을 했었다. 그들의 현재가 비록 콩가루처럼 보일지라도.”

풍부한 감수성과 사려 깊은 촉수가 표정에서 먼저 드러나는 성기영 작가는 4남1녀 중 셋째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추리소설과 동화책을 좋아했던 그는 피아노를 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꿈을 꾸었다. 그것이 최초의 꿈이기도 했다. 문학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불문과에 진학했고 석사 수료를 했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와 반주를 오랫동안 겸하기도 했던 그는 대학원 시절에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정식 교육을 거치지 않고 작곡을 해왔고, 그 일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충무로의 시나리오 작가교육원에 들어갔는데, “그땐 솔직히 놀았다. 친구들이 너무 좋고, 영화 얘기 주고받으면서 왔다갔다하는 게 좋았던 지망생”이었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중에 대학원 선배를 통해 권칠인 감독을 소개받고 <싱글즈>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그 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카시아> 그리고 <가족의 탄생>까지 왔다.

입양된 아이에게 가해진 소외와 폭력의 이야기 <아카시아>를 작업하면서도 그것이 공포물이라기보다 슬픈 이야기라는 심정으로 썼다는 그는 ‘덧없음’에 관한 유쾌한 시선을 견지하고자 한다고 자신의 취향을 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TV시리즈 <환상특급>을 예로 들었다.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인간관계의 덧없음을, 절망적인 시선이 아닌 유쾌한 시선으로 그리고 싶은 소망이 있다. 에헤라디야….” 관계의 좌절 속에 상처입고 오기를 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웃어줄 수 있는 관용은 그가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는 철칙 혹은 원칙에 관해서도 “테크닉이야 각자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적어도 나는 내가 글을 써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지만 똑같이 써내서 당황하게 만드는 그런 일은 벌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글쓰는 일은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독해져봐야지만, 악해져봐야지만 써낼 수 있는 이야기는 힘들 것 같단다. 성기영 작가는 따뜻한 <가족의 탄생>보다도 더 유쾌한, 더 단순한, 더 수다스러운, 더 힘을 뺀,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은 희망을 밝혔다. “친구들은 그런다. 자기네 얘기 써도 좋으니까 히트작이라도 내라고. 별걸 다 걱정한다고. (웃음) 글쓰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잘사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즐겁게 인간성 지켜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 즐겁게 하고 싶다.”

막힐 땐 이렇게 뚫었다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과 물음을 내 것으로 만든다

“<가족의 탄생>을 쓰면서 채현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 캐스팅이 되고나서까지도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다. 길가의 꽃도 밟으면 안 되고, 헤픈 아이라는 설정 등 결국 주위 친구 두세명을 합쳐서 완성했다. 경식하고 심각한 이별 얘기 하는 와중에 복도 센서등 꺼졌다고 손 흔들어서 도로 켜는 건 내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쓸 땐 그걸 가짜로 쓴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경험이 적음을 탓하면서. 그런데 그렇게 캐릭터를 만드느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역시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니까. 실제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본다. 그럼 그것 자체가 결국 충실한 경험이 되어서 시나리오 안의 세계도 내적인 통일성을 갖추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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