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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여인들의 씻김굿 <그르바비차>
김도훈 2006-10-18

그르바비차 Grbavica 야스밀라 즈바니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오스트리아/2006년/90분/월드 시네마

웰컴 투 사라예보!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데뷔작 <그르바비차>는 내전의 상처를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 사라예보의 희망가다. 에스마는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강간당해 낳은 딸 사라를 홀로 키우며 살아간다. 딸의 수학여행이 다가오자 그는 사라예보 시내의 나이트 클럽에 웨이트리스로 취직을 해 여행비를 벌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이 상이용사의 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라는 “상이용사 증명서만 있다면 무료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며 아버지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에스마는 가슴속에 품은 진실을 사라에게 말할 용기가 없다. 그리고 어린 사라 역시 진실을 대면할만한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다큐멘타리 감독 출신인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그르바비차>는 미학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서툴고 투박한 데뷔작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만든 모든 데뷔작이 그렇듯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울림은 결코 얄팍하지 않다. 즈바니치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에스마가 철없는 사라에게 진실을 폭로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따스한 어머니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여인의 분노에서 튀어나온 감정적인 폭로다. 하지만 <그르바비차>는 각기 다른 세대가 함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다고 나지막히 이야기하며 막을 내린다. 에스마는 말없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사라를 배웅하고, 사라는 말없이 버스에 오른다. 모녀는 출발하기 시작한 버스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서야 비로소 눈을 맞추고, ‘사라예보 내 사랑’이라는 촌스러울만큼 희망에 찬 보스니아 노래가 흘러나온다.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아픔을 모두 짊어진 <그르바비차>는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스스로를 씻어내려는 사라예보 여인들의 씻김굿처럼 서글프다. 제56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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