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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플롯 엉성해도 내가 지지하는 이유
2001-09-18

<무사>를 지지할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지를 택할 것이다. 만약 <무사>가 재미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재미없다고 답할 것이다. 이것은 상호 모순되는 행위가 아니다. 토론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답변들은 결코 한국 영화의 애정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정만으로 애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대 영화에 대한 애틋한 지지가 애정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학문적으로 대상화시킨 과거의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 역시 애정이 아니다. 진정한 애정은 과거와 미래의 좌표 위에서 현재를 그려내는 동시에 `제대로'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현명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사>가 재미없는 첫 번째 이유는 플롯의 엉성함 때문이다. 만약 플롯이 엉성하다면 이를 벌충할 다른 요소가 있어야 하거나, 성긴 플롯이 다른 미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명으로 간 사신 일행은 곧바로 귀양에 처해지고 때마침 나타난 원나라 군사의 공격으로 그들은 졸지에 사막에 내동댕이쳐진다. 돌아가야 한다. 영화의 욕망은 초반에 정해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 귀행길에 느닷없이 명의 공주 부용이 등장한다. 이후 최정 장군은 부용 공주에게 호감을 갖지만 공주는 여솔에게 호감을 가진다. 단선적인 드라마 구조가 두 가닥으로 벌어졌는데, 여기에 쫓기는 명나라의 주민들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갈래갈래 풀어져서 산만해져 버렸다.

두 번째 이유는 인물 성격의 모호함이다. 여솔(정우성)의 성격은 그 무술적 화려함에 비한다면 너무 직선적이며 그 성격에서 비롯된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또 최정(주진모)의 심리는 종잡을 수 없도록 많이 부여되어 있다. 다른 인물들 역시 제각기 심리와 행동의 동기를 어느 정도 부여하려다보니 아무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무사>는 재미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무사>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것은 이 영화가 적어도 역대 한국형 블록버스터 중 최대의 물리적 결과를 낳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록 인용된 장면이 있지만 화려하고 장대한 무협씬도 그렇거니와 시대 상황의 재현에서 성공적이었고 또 독특한 무협영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시대 배경의 역사적 맥락을 현재의 시점에서 되살리거나 재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를 위해 시대 배경을 문맥없이 차용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측면이다.

하지만 결과는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인물들을 다 살리고 역사적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런 의욕은 이 영화의 완성도에 흠집을 내고 극적 전개의 일관성을 흐트려 놓는 대가를 치뤄야 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어는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은 예술가적 작가와 상업적 감독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국 영화인들의 `강박'이었다. 이 `강박'은 김성수 감독만의 것이 아니라 80년대 이후 형성된 우리 영화 문화의 강박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 `강박'을 온 몸으로 부딪히고 드러냄으로써 극복의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계간 <독립영화> 편집위원 : 이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