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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영화세계 [3]
이종도 2006-10-26

켄 로치의 어제와 오늘, 켄 로치 특별전 상영작 14편 소개

<빵과 장미> <칼라 송> <네비게이터> 등 몇몇 작품이 빠졌지만 상영작 14개 작품 속엔 켄 로치의 주요 작품들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케스> <랜드 앤 프리덤> <레이닝 스톤> 등 걸작이 많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거두면서 이야기의 즐거움과 정치적 예민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1.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1966년 1960년대 TV드라마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 홈리스가 된 가족 이야기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관료적 복지제도가 어떻게 가족을 해체시키는지를 다뤘다. 훗날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의 문제의식을 연상시킨다.

2. 케스/ Kes/ 1969년 가정도 포기하고, 학교생활에도 관심이 없는 소년들이 어떻게 영국 노동계급으로 편입되는지 탁월하게 묘사했지만 무엇보다 빌리가 매(황조롱이)와 가까워지면서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압권이다.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 폭력 교사의 엉뚱한 처벌, 난폭한 형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매와 함께 있는 순간 빌리는 아무도 다다르지 못하는 자유를 누린다. <품행제로> <400번의 구타>와 함께 또는 그보다 먼저 거론되어야 할 성장영화의 걸작. ‘케스’는 매 이름이다.

3. 게임키퍼/ The Gamekeeper/ 1980년 사냥터를 지키는 조지의 사계절. 철강 노동자였던 조지는 전원생활에 만족한다. 정성껏 새알을 부화시키고 영지를 관리한다. 그러나 복장과 일이 바뀌었을 뿐 피고용인으로서의 일상은 똑같다. 조지는 도시생활이 그립다는 아내에게 전원생활의 장점을 설명하지만 스스로도 전원생활의 허상이 뭔지를 알고 있다. 켄 로치가 가장 기쁘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작품. <케스>의 원작소설을 쓴 배리 하인즈의 작품이다.

4. 외모와 미소/ Looks and Smilles/ 1981년 켄 로치가 만든 영국판 <마이 제너레이션>. 실업문제로 허덕거리는 <케스>의 빌리 세대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다. 수리업체 면접에서 떨어진 믹은 술과 싸움으로 소일하고 앨런은 군대에 자원해 아일랜드로 간다. 영국과 아일랜드간의 정치적 문제, 노동계급 문제 속에서 청춘의 방황을 우울하게 길어낸 작품.

5. 하층민들/ Riff-Raff/ 1990년 집도 절도 없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 공사판에서 일하는 스티브는 가수 지망생 수잔과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지만 노동현장의 처우는 열악하기만 하다. 의료보험이나 안전 따위엔 관심도 없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지만 그들은 기거할 집도, 임금을 받을 계좌도, 생리현상을 해결할 화장실도 없다.

6.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 1990년 <랜드 앤 프리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등과 함께 켄 로치의 국제정치에 대한 근심을 보여주는 작품. 미국 출신 인권운동가 폴이 북아일랜드의 인권을 조사하는 중 의문의 테이프를 도난당하고 사고로 죽는다. 사건의 파장은 커져가고 영국은 일급 수사관 케리건을 급파한다. 케리건은 공정한 수사를 천명하지만 의문의 테이프 안에 영국 정치를 뒤흔들 만한 내용이 있음을 알게 된다. 스릴러 형식 속에서 영국 정보기관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수작.

7.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 1993년 ‘노동자에겐 돌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고단한 영국 노동자의 삶을 따스한 시선 안에 담아낸 작품. 아마도 켄 로치 작품 가운데 유머와 온기가 가장 듬뿍 담겨 있는 사례일 것이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양을 훔쳐 팔거나 남의 집 잔디를 훔치는 밥에게 걱정거리가 생긴다. 일곱살난 딸이 얼마 안 있으면 성찬식을 치러야 하는데 새 옷을 사줄 돈이 없는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삶을 헤쳐나가려는 밥의 의지는 가상하지만 현실에선 ‘돌이 비처럼 쏟아진다’.

8.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994년 켄 로치의 날카로운 눈매는 평화로운 가정이라는 신화 이면에 있는 정부의 무관심, 관료주의, 인종주의에까지 뻗어 있다. 매기는 네명의 다른 남자에게 아이를 하나씩 거둔 여자다. 술집에 놀러갔다가 불이 나 사고로 아들이 다치자 복지기관이 매기의 아이들 넷을 모두 빼앗아간다. 아이를 지키고 기를 능력이 없다는 이유다. 폭력 남편에게 시달리던 매기에게 파라과이에서 쫓겨난 시인이 찾아온다. 매기는 비로소 평화로운 가정을 얻지만 관료주의에 찌든 복지기관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9.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 스페인 내전을 돌아보며 켄 로치는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묻는다. 액자구조를 통해 스페인 내전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이야기임을 전한다. 프랑코의 독재를 막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은 이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 하나로 뭉친다. 그러나 좌파 안에서도 이념적인 분열이 생기면서 급기야 그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켄 로치의 격렬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10.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1998년 실업, 알코올과 마약중독, 폭력으로 얼룩진 사회 속에서도 희망을 타진하는 거장의 고단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조는 아마추어 축구단을 꾸리고 있다. 축구단 소속인 리암과 그의 여자친구가 마약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자 조는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돕는다. 조는 애인 사라에게 자신의 갱생 의지를 보여주지만 그게 쉽지 않다. 마약조직의 덫에 걸린 리암을 구하느라 자기도 모르게 그 덫에 함께 걸려버린 것이다. 정경화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테마가 중요하게 쓰인다.

11.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2002년 <케스>와 함께 다시 봐야 할 켄 로치의 걸작. 펄떡대는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 열다섯살 리암은 감옥에 들어간 마약중독자 엄마를 모시고 살 집을 장만하는 게 꿈이다. 영리하고 집요한 리암은 승승장구하지만 단짝친구 핀볼은 자신에게 무심해진 리암 때문에 속이 상한다. 열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리암은 마약 조직원 인정도 받고 꿈에 그리던 아파트도 장만하며 사랑하는 엄마와도 조우한다. 그러나 리암에겐 감당할 수 없는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다.

12. 다정한 입맞춤/ Fond Kiss… Ae/ 2004년 켄 로치판 <로미오와 줄리엣>. 다인종사회인 영국에서 켄 로치는 피부색과 종교가 달라서 생기는 비극적인 로맨스를 그린다. 켄 로치 작품에서 드물게 에로스와 세대 사이의 갈등이 있다. 파키스탄인인 카심 부모는 사촌 자스민을 카심과 짝지우려 하지만 카심은 여동생의 음악 선생인 아일랜드 여인 로이신과 사랑에 빠진다.

13. 티켓/ Tickets/ 2005년 올미,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만든 기차 옴니버스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 켄 로치의 것이다. <스위트 식스틴>에서 피자를 팔던 세 악동이 다시 나온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열혈 셀틱팀 팬 셋이 로마행 기차를 탄다. 챔피언스컵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꿈에 부푼 그들이지만 알바니아 소년에게 샌드위치를 사준 뒤 기차표를 도난당했다는 걸 안다. 노동, 난민, 정치, 축구 이야기를 유쾌하게 엮었다.

14.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년 온통 푸른빛인 아일랜드의 평화로운 풍광 속에 비극적인 정서가 붉은 핏방울처럼 번져나간다. 1920년대 아일랜드로 돌아가 제국주의의 무자비함과 그에 맞서는 청년들의 비극을 그렸다. 다미안 형제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하키를 하는데 영국군이 난입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그들을 체포하고 무참하게 폭행한다. 다미안은 형이 이끄는 독립군의 싸움에 뛰어든다. 그러나 영국이 아일랜드에 자치권을 넘기면서 독립군은 분열하고 어제의 동지였던 형제는 오늘 원수가 돼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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