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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청년의 꿈, 사막 위에 쓴, <무사>의 박정학
위정훈 2001-09-19

<무사>에서 가남은 ‘철없는’ 최정 장군의 ‘철없는’ 행동과 명령을 묵묵히 따르면서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그야말로 듬직하고 충실한 부하다. 갑옷과 투구, 큰 칼 등 캐릭터에 걸맞게 묵직한 의상을 걸친. 그러나 막상 투구를 벗은 가남, 박정학은 칼보다 펜이 어울릴 듯했다. 갸름한 얼굴, 가늘고 긴 눈매, 그리고 수줍은 미소까지. 서른 고개를 훌쩍 넘어 마흔에 한발짝 가까운 나이도 거짓말 같다.

한때는 가출소년, 아니 가출청년이었다. 중3 시절 누나와 함께 본 <쿠쿠박사의 정원>이라는 연극 한편이 삶의 행로를 바꿔놓았다. 연극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저 무대 위에 있었으면’ 하는 열망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연극을 하고 싶어 예고를 가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한번 좌절됐고,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지만 다시 반대에 부닥쳤다. 그 길로 집을 나왔고, 대학로에서 자취를 하며 연극에 빠져들었다. 군대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연극에 몰두했다. 인천에 있는 돌체 소극장을 찾아갔고, 김성찬씨 등과 함께 활동했다. 한때 <아가씨와 건달들> 등 뮤지컬도 했다가 다시 정극으로 선회했다.

어느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 <무사> 연출부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그것도 참 우연인 게, 연극배우협회에 등록된 프로필을 보고 연락을 했다는데, 사실 거기 실린 전화번호는 예전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서 접촉이 된 것이다. 제안을 받았을 때 첫 느낌은 “이렇게 스펙터클하고 큰 영화를 내게!”라는 감동 반 감격 반이었다. “원하던 얼굴이다”라는 ‘감독님 말씀’도 있었고, 실제로 콘티를 봤더니 정말 자신과 비슷했다. <무사>는 고생했지만 행복한 기억이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현장에서 말들이 박정학씨에게 돌진하던 그 순간. 일단 말 앞으로 뛰어들었는데 아무도 ‘컷!’을 외치지 않는 것이었다.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허벅지를 말굽에 맞아 걸을 수가 없었다. 눈앞이 하얘졌고, ‘말을 먼저 공격하라’는 말을 떠올리며 정신없이 칼을 휘둘러 말을 벴다. 또 한 가지. 투구가 철판으로 되어 있어 조금만 있어도 하늘이 노래졌다. 겨울이 되니 피묻은 칼을 잡고 있으면 피가 얼어붙었고, 투구에 손을 대면 손이 달라붙었다. 연기는 해야 하는데 칼은 크고, 갑옷도 무겁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욕망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한낮의 열기와 한밤의 한기가 번갈아 찾아오는 사막 한가운데서 그를 지탱해준 것 한 가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지만 이제는 “배우로서 알려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가남이라는 인물은 충성스럽고, 무게감 있는 대신, 언제나 한결같았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주기가 힘들었다. 화면을 보니 스스로 보기에도 자신의 반응이 언제나 너무 비슷해 보인단다. 자기 연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후회스러운 장면이 너무 많다.” 그 한결같은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겨줬다는 평들도 없지 않건만.

상대방과 반응을 주고받으며 흘러가는 연극과 달리, 영화연기는 외로웠다. 연결도 안 되고 컷단위로 끊어지는 시간 속에서 혼자서 감정을 만들어 내는 일. 하지만 조명이 환하게 비치고, 어둠 속에 스탭들이 옹기종기 둘러선 촬영장 풍경 자체가 연극무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제까지는 코믹한 역을 많이 했지만, 무대로 돌아가면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감성적 역할을 하고 싶다. 물론 영화로의 초대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고. 이야기하는 동안 간간이 눈을 내리깔면서, 가끔은 한참 대답을 생각한 뒤 천천히 입을 열던 그가 돌아가면서 던진 한마디. “저, 인터뷰는 난생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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