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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우리 시대의 멍청한 독서법
권리(소설가) 2006-11-10

첫 소설을 내고 가장 기분 나빴던 말은 ‘무라카미 류 같네?’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이 마치 ‘합성이네?’라는 리플처럼 무책임하게 들렸다. 바나나만 읽은 사람은 바나나만 보이고 가오리만 읽은 사람은 가오리만 보인다. 그들은 어차피 다른 책을 읽어도 바나나와 가오리 독자의 시선으로밖에 작품을 평가할 수 없다. 일본 청과물 시장의 감수성이 위에서 장까지 그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독서법은 합성주의다. 그들은 세탁기에 흰 빨래와 청바지를 함께 넣고 마구 돌려버리듯이 ‘이 작가’와 ‘저 작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쉽게 말해 자신의 빈약한 독서소비 실태를 들키지 않도록 ‘이 작가’를 가장 안전한 ‘저 작가’의 카테고리에 슬쩍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평소 독서를 게을리하거나, 오독하는 사람들이 주로 저지르는 범죄다.

하지만 더 멍청한 독서법은 편식주의다. 편식주의자들은 유오성이다. 한놈만 팬다. 왜 한놈만 패는가? 간단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데다가 지성인이라면 책은 한달에 한권 정도는 읽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베스트셀러가 구타 대상이다. 베스트셀러가 좋은 점! 첫째,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둘째, 추천해도 적당히 욕은 피해갈 수 있다. 그들의 독서 목록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요새 무슨 책 읽어?”라는 질문에 “요리책”이란 말을 하지 않게 해줘서 고마울 정도다. 게다가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교훈적이고 적당히 말랑말랑하고 적당히 허위의식도 자랑할 수 있으니 과연 명품 도서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시작한 편식주의자들의 한놈 패기 작전은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낳았다. 삼순이 때문에 낡은 서랍 속에 처박혀 있던 먼지 쌓인 <모모>가 떴고, 광고에 나온 <상실의 시대> 때문에 대학생이 읽어야 할 책 100순위에 ‘난 항상 그 자리에’를 부르며 고고히 서 있었던 <위대한 개츠비>가 덩달아 떴으며, 영화 <오만과 편견> 때문에 중학생 필독서가 우아한 양장본 드레스를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요새 <마시멜로 이야기>의 이중번역에 대해 말이 많다. 출판사와 번역자의 부정이 비난의 핵심이다. 물론 이해한다. 나도 그들이 독자를 속였단 사실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 책을 산 사람들이 순수한 피해자들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초코파이’에 불과했던 <마시멜로 이야기>를 원작자마저 입을 떡 벌리게 하는 ‘황금의 빅파이’로 만들어준 것은 대체 누구인가? 합성주의자인가, 편식주의자인가? 베스트셀러니까, 유명인이 번역했으니까, 하며 책을 고른 건 누구인가? 당신은 인기검색어 베스트 목록에 시선을 확 당기는 뭔가를 재빨리 클릭하는 기분으로 ‘베스트셀러니까 조건없이 사랑해줄게’ 하며 달려간 건 아닌가? 책의 내용보다 ‘그래 24’에서 살까, ‘램프의 지니가 나오는 동화책’에서 살까를 더 고민한 건 아닌가?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시대의 우울을 느낀다. 지하철은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생활 속의 바로미터였다. 하지만 많은 열독자를 배출해왔던 지하철에서 독서인이 사라져간다. 한때 언론에서 그토록 떠들어댔던 ‘능동적인’ P세대들은 책 대신 PDA나 PMP를 능동적으로 만지작거린다. 인터넷 강국의 비극이다. P세대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 때문에? 아니다. 전 세대가 수동적인 독서법에 매달리는 것 때문이다. 같은 재료와 요리법으로 빵을 만들면 같은 빵이 나온다. 같은 책을 읽는 것은 자기 머릿속에 자발적인 전체주의자를 키우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과 같은 책을 보는 것은 교과서나 성경, 경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왜 당신은 남과 같아지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가? 독서는 전시(戰時)의 라면 사재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빨리 읽으려 애쓴다. 정말 빨리 읽어야 할 것은 스테디셀러임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