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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이 뭇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1]
김나형 2006-11-08

여러분 하이룽~ 방가방가! 정신과 전문의 한니발 렉터예요. 여러분의 쫀득쫀득하고 유쾌한 정신건강을 위해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밥도 먹다 말고 달려온 참입니다. 뭘 먹었는지는 묻지마세요.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까요. 뭐, 제가 기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병적 심리 분야에선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걍 믿으세요.

오늘 강의 주제는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병리적 증상에 대한 사례 연구’입니다. 8개 케이스를 통해 애정결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살펴볼 거예요. 강의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애정결핍’은 말 그대로 ‘애정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는 절대 병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여러 환경적 요인이나 개인적 특성으로 인해 애정결핍이, 경미하거나 심각한 병적 상상 및 행동을 유발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애정결핍이 병으로 발전됐다고 말할 수만도 없는 일입니다. 육체의 병이 그렇듯, 마음의 병도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생기는 거니까요. 그러니, 오늘 강연을 듣고 ‘내가 애정결핍은 아닐까’, ‘나도 저렇게 돼버리면 어쩌나’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정 마음이 괴롭거든 주저말고 저를 찾아오세요. 제 상담실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까요.

※주의: 그의 상담실을 찾아갔을 경우 벌어질 일련의 사고에 대해서 <ME>는 일체 책임지지 않습니다.

담요 대신 야구로 애정결핍을 매우려는 남자

이름 국적 미국 나이와 성별 30대 남성 직업 교사 비고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대명사가 되다

이 친구를 볼라치면, 대체로 멀쩡합니다. 얼굴도 저만하면 귀엽고 가끔 썰렁한 농담도 잘하죠. 직업이 선생인데 애들한테도 꽤 인기가 있더군요.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근데 뭐가 문제일까요? 이 친구는 야구광이에요. 시시하다고요? 그렇죠. 자기 머리카락하고 손톱, 발톱을 30년간 비닐 봉투에 모은 놈도 있는 마당에, 보스턴 레드삭스 로고가 새겨진 양치컵과 샤워타올, 잠옷이랑 베개 좀 쓴다고, 온 집을 야구 사진으로 도배하고 야구에 관한 책만 읽는다고, 그게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벤이 야구광이 된 건 7살 때 일입니다. 아빠는 이혼해 떠났고, 엄마는 매일 바빴죠. 갑자기 타지로 이사를 와서 친구도 하나 없었고요. 그런 녀석이 삼촌을 따라 팬 웨이 파크에 갔던 겁니다. 혹시 라이너스 기억나요? 담요를 질질 끌고 다니는 꼬마요. 젖을 일찍 떼거나 엄마와 떨어져 지낸 아이들은, 담요나 인형 같은 부드럽고 포근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벤은 담요 대신 야구에서 위로를 받은 게죠. 문제는, 아이가 좀 크면 주변에서 담요를 억지로라도 버리게 하는데, 벤에겐 야구를 포기하게 할 누군가가 없었다는 겁니다. 때문에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사람으로 옮겨왔어야 할 애정이, 계속 야구에 머물러 있게 됐습니다. 삼촌이 물려준 그놈의 시즌권은 (물론 덕분에 뭇 남자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벤의 연애 실패의 원흉이 됐습니다. 아무리 그녀가 좋아도, 야구와 충돌하면 야구를 포기 못하는 남자니까요. 다행히 이 케이스는 바람직하게 해결됐습니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쿨한 언니와 만났다 헤어지면서, 벤도 ‘야구광’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동시에 야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죠. 물론 사랑도 되찾았답니다.

쓸쓸한 크리스마스, 가족도 살 수 있나요?

이름 드루 래덤 국적 미국 나이와 성별 30대 남성 직업 제품 프로모터 비고 <서바이빙 크리스마스>를 창안

여기 몸만 큰 어린애가 또 하나 있군요. 어릴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커서도 정신연령이 유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벤과 마찬가지로 드루도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빠는 드루가 4살이던 크리스마스에 집을 나갔고, 엄마는 돈 버느라 바빴답니다. 그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외로웠다고 해요. 다른 아이들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이 녀석은 컴컴한 집에 혼자 있어야 했죠. 외로움을 못 이겨 엄마가 일하는 커피숍에 찾아가면 엄마는 몰래 팬 케이크를 줬답니다. 눈치를 보며 가게 구석에서 팬 케이크를 먹는 것, 그게 드루의 크리스마스 이벤트였던 거죠. 벤이 야구광으로 자랐다면, 드루는 지독한 일벌레로 큰 모양이더군요. 펭귄한테도 냉장고를 팔아치울, 수완 좋은 일벌레요. 근데 크리스마스만 되면 사무치는 회한을 이길 수 없는 겁니다. 급기야 어느 해, 크리스마스 동안 자기 가족 행세를 해달라며 한 가족을 25만달러(약 2억4천만원)에 사는 지랄쇼를 벌이죠. 저 나이 되도록, 돈으로 관계도 살 수 있다고 믿으니 대책이 없군요. 게다가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평소엔 눈 높은 인간이, 하필 고릴라 같은 아빠와 갱년기 우울증 엄마, 야동 중독 아들로 구성된 ‘안습 패밀리’를 골랐답니다. 하지만 뭐, ‘크리스마스 시즌 가족 대상 로맨틱코미디’를 만들어야 했던 감독의 입장 덕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긴 했습니다. 드루는 문제적 가족의 딸과 사랑에 빠져 그들의 사위가 됐고, 해체 위기에 놓였던 가족도 드루 덕분에 마음을 열게 됐다죠. 솔직한 말로, 긴 생머리를 참하게 묶고 슬리퍼 신은 엄마,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하늘을 가리키는 아빠, “하하하하하하” 해맑게 웃는 아이들, 이런 캐안습 가족이 세상에 어딨겠습니까? 다들 엎치락뒤치락, 상처도 내고 껴안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아파트 광고 너무 믿지 마세요. 정신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여자없이 17년, 여자 한분만 내려주세요

이름 동철동, 동현 국적 한국 나이와 성별 50대 남성, 10대 남성 직업 사회운동가를 가장한 백수, 무늬만 학생 비고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증언함

엄마들이 잘 쓰는 관용어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자(父子)가 또옥~ 같네, 또옥~ 같아!” 또 이런 말도 있죠. “애나 어른이나, 남자는 그놈이 그놈이라더니….” 동철동-동현 부자는 그에 꼭 맞아떨어지는 모범 사례입니다. 다만, 저런 말을 해줄 엄마가 없다는 게 문제죠. 17년 전, 이 가정의 엄마가 저세상 가버린 뒤, 두 부자는 서로 경쟁하듯 비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철동으로 볼라치면, 남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등쳐먹는 일로 밥벌이하는, 순 사기꾼 날건달이랍니다. 50줄이 넘어가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남의 뒤만 캐고 다닌 셈이죠. 물론 자신은 그 일을 사회운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아들 동현 역시 문제가 있어요. 평소엔 얌전한 것 같은데, 싫어할 만한 질문을 계속했더니 조용히 망치를 들고 나오더라고요. 물론 정말 사용할 심산으로 갖고 나온 겁니다. 그래서 저도 이빨을 보여줬죠. 어흠 어흠…. 뭡니까? 그 ‘또옥~ 같다’라는 듯한 표정은? 여하튼. 이 부자는 여성의 잔소리(내지는 손길)가 고팠던 결과, 심각한 여자 밝힘증으로 발전했습니다. 동네에 예쁘장한 언니가 이사오면서부터 전쟁은 시작됐죠. 둘이서 전향적으루다가 미미씨한테 들이대는데 가관이더군요. 반칙을 달고 사는 아비에, 망치 들고 대드는 아들이니, 부자지간에 양보하고 말 것도 없었다니까요. 그래서 어찌됐냐고요? 그건 말 못해요. 스포일러 퍼뜨렸다고 몰매 맞을 일 있나요? 궁금하신 분들은 극장 가서 확인하세요. 전 소중하니까요.

엄마 그때 너무했어요. 비뚤어질 거예요

이름 문유정 국적 한국 나이와 성별 30대 여성 직업 교수 비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끝나도 삶은 남네요

문유정의 고모가 내린 적절한 진단이 있습니다. ‘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표정 지으며 사는 애’라는 겁니다. 예쁘지, 돈 많지, 집안 백으로 젊은 나이에 교수됐지, 제멋대로 강의해도 자를 사람 없지…. 여튼,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걸 다 갖고도 만날 죽을상입니다. 자살 시도도 벌써 몇번이나 했는데, 어떤 날은 아침 해가 눈부셔서 약을 한 다스 먹었다죠. 면회 온 엄마한테 한다는 얘기 좀 보세요. “누가 나 낳아 달래? 그러니까 나 죽게 좀 내버려달란 말이야!” 근데 정말, 문유정은 왜 안 죽었을까요? 진짜 죽을 마음이었으면 확 죽지, 자꾸 벌떡벌떡 일어나는 걸 보니 짐작가지 않습니까? 사실은 죽을 생각이 없는 겁니다. 문유정의 행동은 일종의 땡깡, 즉 어리광입니다. “나에게 관심가져주세요”라고 분노의 시위를 하는 거죠. 알고봤더니 이 친구도 어렸을 때 사건을 겪었더군요. 15살 때 사촌오빠에게 강간당했는데, 그도 그녀에게 큰 외상을 입혔지만, 실은 어머니가 더했던 거죠. 울며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너는 그 입 다물라!”는 식이었다는 겁니다. 그런 소문 ‘쪽팔린다’고요.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데 저렇게 반응할 엄마가 있을 수 있는 걸까요. 그녀야말로 아스퍼거 신드롬 환자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다행히도 문유정은, 자신과 똑 닮은 사형수를 만나면서, 15살 고통 속에 멈춰 있는 자신의 세계에서 놓여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기쁨을 알고,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죠. 엄마에 대한 증오의 밑바탕에 애정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요. 결국 사형수는 세상을 떠나지만, 문유정은 덕분에 새 삶을 시작하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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