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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그림 감상법
이종도 2006-11-17

아내의 보스에게 선물을 받았다. 그림이다. 40인치 텔레비전 정도 크기 될까. 기껏해야 그림이라곤 드문 외국 출장 때 미술관에서 사오는 아이 손바닥만한 명화 마그네틱이 전부였으니 호수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림을 부여잡고서는 ‘이건 무슨 뜻일까’, ‘저건 무슨 뜻일까’ 보고 있다.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으니 그냥 소파 위에 올렸다가 TV 뒤에 놓았다가. 그림의 운명은 기구하기도 하지.

카산드라 통신에 따르면 올해 우리 부부가 삼재수라고 한다. 아내는 돈 많은 근사한 남자가 유혹을 하는데 거기 넘어갈 거라고 했다. 또 소문통신에 따르면 보스의 매우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다면평가에서 아내가 1위였다고 한다. 아내가 직장에서 질투든 유혹이든 둘 중 하나는 받을 것 같다. 어쨌거나 ‘둥지’라는 이 그림, 정확히 말하면 판화는 심신에 아주 큰 평화와 안정을 준다. 어제까지 아내와 나는 ‘둥지라는데 새는 어디 있는 거야’ 하면서 그림 속을 장님처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림만큼 좋은 선물은 없는 것 같다. 이준익 감독이 평생 뜻을 같이한 정승혜, 조철현 대표에게 남은 평생도 같이하자며 자화상을 줬다는데, 또는 황지우 시인이 연초면 지인들에게 손수 그린 엽서를 보낸다는데 그림만큼 우정을 전달해주는 선물도 없는 것 같다. 새삼 아내의 보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다음엔 조금 더 알아보기 쉬운 그림을 선물로 받고 싶은 소망이 뭉게뭉게 떠오른다만).

사랑하는 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서 앨범으로 선물하거나, 아름다웠던 순간을 붙잡아서 단편영화로 만들어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당신의 애타게 아름다운 순간을 캡처한 jpg 또는 동영상 파일이랍니다, 하고 틱, 클릭을 해서 메일로 보낸다면 거기엔 온기는 조금 없을 것 같다. 그걸 만드는 과정은 따스했을지언정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미디어는 조금 춥게 느껴진다. 자신의 마음을 쏟아서 그걸 붓이나 연필로 옮긴 뒤 종이 위에 꾹꾹 누르고 그걸 전했을 때 상대방은 꾹꾹 누른 마음속에 피어나는 향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 아닐까.

돌이켜보니 옛날 애인들은 참 잘도 그랬던 것 같다. 낙엽부스러기를 손수 골라, 그러니까 가을의 살점을 한잎 떼어, 정성껏 육필로 시를 옮겨 적은 그 갈피 사이로 얌전히 옮겨놓은 뒤, 그걸 전해줬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또 나도 연필로 끼적끼적거린 그림이나 시를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쉬운 건 그 기억들을 박제하지 않고 그대로 다 날려버렸다는 데 있다. 아마 오해 때문에 태우기도 하고, 새 애인에게 들켜서 에드거 앨런 포처럼 벽 사이에 던져넣고 콘크리트를 바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나는 무슨 선물로 답례를 하나. 참다 못한 아내가 드릴로 못을 박아 그림을 걸자고 못을 박는다. 드릴이 뭐지? 먼 이국의 동사 변화처럼 들린다.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모르는 주인을 만나 그림은 거실에서 작은 방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그나저나 둥지 속의 새를 찾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