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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로도 덮어지지 않는 ‘사랑’, <러브>
김현정 2006-11-15

토니 모리슨이 <파라다이스> 이후 5년 만에 쓴 <러브>는 시점과 시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노래처럼 써내려간 소설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아우르는 <러브>는 이미 죽은 요리사의 회상과 혼잣말로라도 진심을 발설하지 않는 여인들의 이야기와 트럭에 발가락에 뭉개지면서 마음도 함께 무너진 소녀의 사연을, 차가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어조로 들려준다. 부유한 흑인으로 호텔을 소유하고 있던 빌 코지의 미망인 히드와 손녀 크리스틴은 저택에 은둔해 살면서 서로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다. 이제 노인이 된 그들은 같은 또래다. 유배지나 마찬가지인 이 집에 구인광고를 보고 흑인 소녀 주니어가 찾아온다. 어릴 적에 가출해 소년원을 전전했던 주니어는 영악하고 야성적이고 생존본능이 강한 아이다. 세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된 <러브>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토막토막 들려주면서 마지막 순간에야 진실을 드러낸다.

<빌러비드> <재즈> <솔로몬의 노래> 등을 썼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토니 모리슨은 사랑을 멈추지 못하고 상처를 잊지 못하는, 오직 감정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히드와 크리스틴도 그런 여인들이다. 크리스틴은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히드의 얼굴을 잊지 못해 수십년 동안 아이스크림 스푼을 간직하지만, 증오에 휘말려 자기 삶을 망쳐버렸다. 크리스틴에게 예쁜 옷을 보여주고 싶었던 히드는 그녀의 분노에 상처받아 자신 또한 분노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둑질당한 유년기, 증오로 뒤덮으려고 애썼어도 사라질 줄 몰랐던 사랑. <러브>는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의 마음을 파먹곤해도 갈증을 풀지 못했던 이들의, 심장 밑바닥에서 발견한 ‘사랑’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