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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없네요
2001-09-20

서른이 채 안 된 인생이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영화 같은 일’을 겪었다면 바로 며칠 전 있었던 ‘미국이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다이 하드>에서 빌딩이 무너지고, <터뷸런스>에서 여객기가 납치당하고, <피스메이커>에서 테러리스트가 국가에 정면으로 폭격을 가하고,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에서처럼 인류의 재앙에 수많은 인파가 도시에 넘쳐나고….

그 사건은 단 한편의, 영화 같은 실제사건으로 이 블록버스터 대작들을 아주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나의 다섯살난 조카는 “이모, 영화에서 빌딩이랑 비행기가 부딪혔어”라고 말하듯 감히 현실이라 생각 못할 정도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이 TV에서 24시간 방송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 대여점에 오지 않는다. 몇년 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사건 이후로 가장 큰 재앙이다. 나 역시 하루종일 TV를 켠 채, 나의 목숨과도 상관있을지 모를 이후의 국제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정도이니, 누가 영화를 보랴.

워싱턴과 뉴욕이 쑥대밭이 되고, 앞으로 어떤 세계의 정세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상황에서, 아시아 한쪽 끝에 위치해 있는 한 작은 국가의 조그마한 대여점에서 단지 ‘장사가 안 된다’는 한탄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새삼 ‘미약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 아주 묘한 감정이다.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