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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케이션으로 한국을 전파하라
김수경 사진 이원우 2006-11-24

각국 전문가와 영화인 대거 참여한 ‘2006 수도권 로케이션 팸투어’, 해외 촬영 유치 모색

팸투어 장소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용인민속촌에서 전통무훈을 선보이는 연기자들과 함께한 할리우드 로케이션 관계자들

“할리우드에서 로케이션 매니저는 프로듀서만큼 중요하다.” <위트니스> <죽은 시인의 사회>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의 로케이션 매니저였고 최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로케이션을 총괄한 할리우드 27년차 마이클 존 미한의 표현이다. 전쟁의 승패가 정찰에서 갈리듯, 영화라는 함선의 진로도 로케이션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로케이션 매니저 마이클 존 미한의 말처럼 “캐스팅과 투자 완료 전부터 영화에 관여하고 프리 프로덕션의 대부분을 진행하는” 로케이션의 전문화가 이루어진 할리우드와 달리 국내 로케이션 업무는 제작부, 연출부, 감독이 책임지는 어중간한 형태로 존재한다. 마이클 존 미한은 서울영상위원회, 경기영상위원회,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2006 수도권 로케이션 팸투어’에 참여하려고 서울에 왔다. 11월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팸투어에는 미국, 타이, 홍콩, 인도, 뉴질랜드, 호주의 로케이션 전문가와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워너브러더스 세계 로케이션을 총괄하는 빌 바울링, <킹콩>을 후반작업한 뉴질랜드 파크로드 포스트의 수 톰슨 대표, 호주국립영화산업 네트워크 케리 오를크 위원장, 아시아 최대 현상소 칸타나그룹의 후반작업 담당 순타리 사수안프라셋, 홍콩의 감독 겸 제작자 빌 입 등이 방한했다. 팸투어를 기획한 경기영상위 이현승 위원장은 “영상위원회는 국내 촬영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해외 촬영 유치에도 대비해야 한다. 해외 촬영 유치는 일단 경제 유발효과도 있지만, ‘한국의 특정 공간이 영화를 통해 세계로 전파된다’는 문화적 측면이 강하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해외 로케이션 전문가 참여한 팸투어

로케이션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는 해외 영상물의 촬영 유치를 위해 영상산업 관계자를 초청해 영상물 촬영지와 촬영후보지를 관광하거나 체험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번 팸투어는 시화호, 대부도, 용문산, 파주 출판단지, 헤이리 예술마을, 통일전망대, 노량진 수산시장, 창덕궁, 인사동, 용인 민속촌, 수원 화성행궁, 두물머리, 남양주종합촬영소, 봉은사, 명동성당, 청계천, 선유도 순으로 진행됐다. 해외 게스트들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공간은 용인 민속촌과 사찰들. 이현승 감독은 “공간 자체의 풍경도 중요하지만 민속촌처럼 그 나라의 삶의 방식이나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괴물>을 언급하며 실제로 목격한 넓은 한강 너비에 놀란 관계자도 많았다”는 후문.

해외 영상물을 촬영 유치하기 위한 교두보는 인적 네트워크의 확보다. 마이클 존 미한은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상위원회를 비롯한 열정적인 한국 영화인들”이라고 말했다. 팸투어에는 아이필름,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미니필름 박민희 대표, <사생결단>의 이종호 PD, 한, 미 합작영화 <네버 포에버>의 유은정 PD, 박기형 감독, 김경형 감독 등 충무로 인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해외 로케이션은 공간을 찾는 일이지만 현지 영화인과의 유대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할리우드영화의 국내 로케이션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프로듀서와 제작사에 한국을 소개할 지한파 로케이션 전문가들이 생겨나야 한다. 오랫동안 국내외 로케이션 매니지먼트의 실무를 담당했고, 국내 최초로 로케이션 전문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던 미니필름 박민희 대표는 “그들이 판단할 때 촬영을 위한 국내 행정이나 제도는 미비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팸투어를 통해 그들은 마음을 열고, 한국이라는 로케이션의 장단점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시아와 유럽에는 이미 익숙한 로케이션 전문가들이다. 부산영상위부터 수년 동안 한국에 관심을 가져온 빌 바울링처럼 이번 투어에 참가한 다른 전문가들도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이 성과”라고 평했다.

대형 프로젝트 유치에 ‘인센티브’, ‘책임보험’ 필요

그렇다면 할리우드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 아시아영상위원회 네트워크의 결성에도 크게 공헌했던 워너브러더스 월드와이드 로케이션 책임자 빌 바울링은 “한국 촬영을 위해 전국 영상위원회를 모두 접촉할 수는 없다. 정보를 한번에 얻을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 일본도 영상위원회가 수십개에 달한다. 그런데 그 영상위원회를 대표하는 통합기구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현승 위원장은 “현재 국내영상위원회는 영상위원회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있다. 향후 중앙위원회 차원의 기구가 확보될 전망”이라고 답했다. 실무 차원에서는 할리우드 대형 프로젝트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빌 바울링이 소개한 해외 로케이션 36계명의 첫 번째 항목은 ‘정부 지원’, 그중에서도 ‘인센티브’다. 파크로드포스트 수 톰슨 대표도 “뉴질랜드 정부는 뉴질랜드 내 소요 예산의 12.5%에 해당하는 제작비를 환불하는 대규모 예산영화 제작 지원금 제도를 마련했다. 자격은 전체 제작비의 70% 이상을 뉴질랜드에서 사용하고 그 금액이 94억원 이상 314억원 이하면 된다. 만약 영화의 총제작비가 314억원이 넘는 대작이면 총액 대비 뉴질랜드 내 소비와는 상관없이 자격이 부여된다”고 밝혔다. 로케이션 매니저가 프로듀서와 제작사에 해외 로케이션을 제안할 때 가장 매력적인 조건은 단연 ‘비용 절감’이다. 최근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킹콩>, 도에이의 특촬물 <파워 레인저> 시리즈가 이 제도를 이용하며 뉴질랜드에서 장기간 촬영을 진행했다. 다른 지원제도까지 활용하면 뉴질랜드의 환급 비율은 18~20%에 달한다.

박민희 대표는 “아무리 공간이 매력적이라도 대작영화는 인센티브가 없으면 절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산업적 파급력에 합당한 법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실제 프로덕션에서도 로케이션 허가만 지연돼도 비용 상승과 직결된다. 제도가 불안전하면 프로덕션 비용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해도 인프라 구축을 동반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센티브뿐만이 아니다. 해외 영화사들이 중시하는 안전과 관련된 보험문제도 아직은 미비한 요소가 있다. 팸투어에서 국내 제작사의 해외 로케이션 사례를 발표한 호주 빔필름 박지안 대표는 “<한반도>에서 항공촬영을 위한 스페이스캠을 사용하려고 할리우드에서 들어왔는데 한국에는 ‘책임 보험’ 자체가 없어서 장비보험과 운송에서 발생하는 것에 대한, 인력에 대한 상해보험을 따로 가입했다. 나머지 부분은 면책 각서로 대신했다”고 밝혔다. 보험의 부재로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진다”는 불리한 각서를 작성해야 했던 것. 그나마 면책 각서마저 허용되지 않았다면 장비 반입은 불가능했다.

첫 번째 팸투어로 당장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한국 촬영에 돌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참가자들은 “정책적으로 이러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내년 수도권 팸투어는 “부산영상위의 참여도 고려하여 시기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경기영상위원회쪽은 밝혔다. 아시아영상위네트워크(AFCNet)를 주도해온 부산영상위는 세계 최대 촬영지원기구 협의체의 총회 및 세미나인 ‘시네포지움’을 2008년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북미, 전세계 순으로 열리는 시네포지움은 아직 아시아에서 개최된 사례가 없다. 이러한 노력이 수년간 축적되면 우리는 머지않아 국내 촬영장에서 톰 크루즈를 목격하거나, 슈퍼맨이 날아다니는 서울 도심을 스크린에서 발견할지도 모른다.

팸투어 참여한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 로빈 시트린 인터뷰

"1년에 100편 만드는 열정 살리면 로케이션도 성공한다"

로빈 시트린은 1984년 켄 러셀 감독의 <크라임 오브 패션>에 로케이션 어시스턴트로 할리우드에 입문했다. 이듬해 <투와이스 인 어 라이프타임스>로 로케이션 매니저가 된 시트린은 <레인맨> <프랭키와 쟈니> <업 클로즈 앤 퍼스널> 같은 영화에서 작업했다. 2000년부터는 팀 버튼의 <혹성탈출> <빅 피쉬>와 마틴 스코시즈의 <에비에이터> 같은 거장들의 영화에 동참했다. 음악영화 <앙코르>가 최근작. 할리우드 경력 23년차 베테랑 시트린에게 처음 방문한 한국 로케이션의 가능성을 물었다.

이번 팸투어에 참여한 계기는. 지금 영화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 및 도시와 깊게 연관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문화적 측면을 직접 살펴보고 싶었다.

한국이 가진 로케이션으로서의 장, 단점이나 좋은 로케이션이 되기 위한 과제는. 첫 방문이라 공간에 대한 비교는 어려울 듯하다. 영화 인력을 중심으로 영상위원회, 스튜디오를 비롯한 영화제작 환경이 강점인 것 같다. 1년에 100편을 만드는 열정을 살린다면 로케이션에서도 성공할 듯하다.

20년 넘게 일했다. 로케이션 매니저의 역할과 뼈아픈 경험을 말해달라. 로케이션 매니저는 늘 제작의 맨 앞에 선다. 프로덕션디자이너와 처음부터 영화의 배경을 고민하는 순간부터. 전문화된 로케이션 매니저는 프로덕션의 디테일한 측면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앙코르>를 촬영할 때 태풍 카트리나 때문에 로케이션이 파괴됐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프로덕션상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한, 미 합작에 대해. 조합이나 역할 분담 같은 환경은 많이 다르다. 다만 한국 영화인들은 적극적 의지가 있기에 그런 순간은 조만간 올 것 같다. 로케이션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위원회 위주로 이뤄진 한국의 로케이션 시스템에서는 누가 책임을 질지 좀더 명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