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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부적절`한, 그러나 시간을 초월한
2001-09-20

밥 딜런 신보 <Love and Theft>

밥 딜런의 ‘마흔 네 번째(!)’ 앨범이 나왔다. 물론 ‘번안곡’으로 유명한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역)> <A Hard Rain's A-Gonna Fall(소낙비)> 정도만 아는 사람들에게 이건 별다른 뉴스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왜? <롤링 스톤>에서 이 음반에 만점을 주었기 때문에? 요즘 이 잡지가 얼굴 쭈글쭈글한 록 베테랑과 살 탱탱한 소저들에게 홀딱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여기에 동참하기는 꺼림칙하다. 지난 5월 24일 환갑을 맞이하여 딜런이 대중음악에 미친 공적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에 미친 것”이라는 등의 찬사가 잇다랐지만 그것도 왠지 남의 나라 이야기같다. 사심없이 음악이나 들어보자.

음악 형식으로 장르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은 새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포크’가 아니라 ‘블루스’라고 부를 것이다. 2 비트의 쿵딱거리는 리듬 위에서 주절대는 첫 트랙 <Tweedle Dee Tweedle Dum>,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발라드인 두 번째 트랙 <Missippi>를 지나면, 로커빌리풍의 기타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Summer Days>부터 ‘12마디 블루스’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마치 미국 남부의 담배연기 자욱한 허름한 바에서 흥겹게 연주하다가, 공연이 끝나면 황급히 짐을 챙겨 떠나는 길거리 밴드(road band)의 음악 같다. 라운지 재즈 풍의 <Bye and Bye>에서 슬슬 분위기에 젖어들고, 델타 블루스풍의 <High Water>에서는 밴조 소리에 고개를 까딱거리다가 <Honest with Me>에서 슬라이드 기타에 취하게 든다.

그리고 마침내 <Lonesome Day Blues>나 <Cry a While>에 이르면 세상 고통을 다 잊은 듯 발바닥을 쿵쾅거리게 된다. 흠, “나는 장광설을 떠드는 곳(highfalutin area) 이 아니라 해학을 부리는 곳(burlesque area)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란 이런 의미였군. 번역이 신통하지 않지만 딜런은 이 앨범에서 ‘시인’이 아니라 ‘광대’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점에서 ‘개인적이고 내향적’이었던 전작 <Time out of Mind>와도 다르다.

물론 블루스만 있는 건 아니다. 잠깐 언급한 <Missippi>도 그렇지만 <Po' Boys>와 <Sugabebe>같은 와 같은 ‘발라드’는 로큰롤 ‘이전’일 뿐만 아니라 로큰롤과 ‘무관’한 팝 음악같다는 인상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Moonlight>는 영락없이 1930년대 유럽의 사교 클럽에서 흘러나올 만한 ‘올드 팝송’이다. 딘 마틴이나 프랭크 시내트러가 날리던 ‘좋았던 옛 시절’의 미국 쇼비즈니스계를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이자 음악이자 밥 딜런이 10대 시절 밴드를 만들어서 흉내내다가 철이 들고 난 뒤에는 집어치웠던 음악이다.

물론 딜런은 오래된 음악을 원형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유의 방법으로 '이상하게' 변형해 놓는다. 그래서 그가 풀어놓은 과거는 그저 푸근한 것이 아니라 신비스럽고 수수께끼같다(이게 밥 딜런의 제 1의 코드다). 앨범 제목에 ‘도적질’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감이 오는 순간이다. 물론 그는 이 점에 대해 “나에게 미래란 이미 과거의 일이다”라는 미스테리한 말로 설명을 대신한다. 최근의 정치적 사태를 고려할 때 이번 음반은 시의적절치 않은(untimely)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음반의 내용물은 이제까지의 업적과 더불어 시간을 초월한(timeless) 것 같다.

신현준/ 음악애증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