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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사무라이 픽션>의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을 만나다

이준익 감독은 <사무라이 픽션>(1997)을 3번 보았다고 했다. 2000년에 국내 개봉한 뒤 극장에서 한 번, DVD로 두 번. 이 영화를 만든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은 단편 옴니버스 <스테레오 퓨처>(2001)와 TV드라마 <가면의 닌자 적영>의 영화화 <레드 샤도우>(2001)를 연출하면서 그다지 큰 이슈 없이 조용히 일본 인디영화계에서 지냈다. 나카노 감독은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흑백 단편 <다리미>를 출품해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은 2006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 다시 초청되었고 이준익 감독은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압축적인 비주얼과 고도의 코미디가 결합된 촌철살인의 단편 <다리미>와 스타일리시한 사극(이자 코미디) <사무라이 픽션>의 감독 나카노 히로유키를 이준익이 만났다. 감독과 감독의 만남이자 감독과 팬의 만남. 통역을 거쳐야 하는 느린 대화였음에도 둘의 대화는 시종 유쾌하고 시끄럽게 이어졌다. 그 화기애애했던 자리를 여기 옮겼다.

우리 영화에는 조롱의 태도가 있다?

이준익: <다리미>도 그렇고 <사무라이 픽션>도 그렇고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스스로 조롱하는 듯한 인물이다.

나카노 히로유키: 나는 어떻게든 더 많이 웃기고 싶었는데 프로듀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웃음) <다리미>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맞춰서 찍어본 경우다. 내가 누군가에게 연출 제안을 받아 만든 첫 번째 영화이고, 조감독을 비롯해서 모든 스탭들이 베테랑 가운데 베테랑으로만 모인 영화였다. 스크립트만 열 종류가 넘었다. 줄거리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열아홉살 때 겪었던 일을 실화화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러시아 문학서를 읽고 있는 소년이 그 프로듀서다. 지금 그는 60살이다. 어느 날 나에게 와서 자기의 추억담을 적은 종이 한장을 주면서 “이걸 찍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쓰는 시나리오마다 계속 싫다, 싫다, 거절을 하는 거라.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분위기 그대로 살려서 가겠다”고 승복했다. 재밌는 내용은 점점 없어지고 분위기만 살려서 지금의 영화가 됐다.

이준익: <다리미>는 특히 미장센이 정교하다. 절제된 동작과 감정, 인물에 대한 의도가 뒤섞인 코미디다. (웃음)

나카노 히로유키: 그 사무라이가 원래 사이코다. (웃음) 평소에는 굉장히 정적이지만 뭔가에 한번 뒤집히면 확 뒤집히는 사람이다. 일본에서는 죄수들이 감방에서 복역할 동안 다리미질이나 바느질을 배운다. 프로듀서에게 얘기를 듣기로 그 사무라이도 실제로 2년 동안 형무소에서 다리미질을 배웠다더라. 영화에서 계속 등장하는 다리미질 장면은 사무라이에게는 칼을 칼집에 넣고 빼는 집중의 순간을 의미한다. 얘기를 들으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영화 맨 마지막에 사무라이가 다리는 물건이다. 그게 티슈다. 여자랑 섹스를 하고 나서 쓰려고 기를 쓰고 티슈를 다리고 있는 거다. 그 인간이 또라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인데 관객이 잘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더라.

이준익: 당신의 영화에는 조롱의 태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에서 진지함에 대한 조롱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들은 전통적으로 사무라이의 정신과 권위, 이미지를 망가뜨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보존하고자 한다. <사무라이 픽션>이나 <다리미>는 그 대상을 조롱하고 바보로 만든다.

나카노 히로유키: 일부러 조롱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사무라이 픽션>에서의 사무라이도 본래 사무라이의 모습이 70%, 유머로 바꿔낸 것이 30%였다. 당신이 말한 관점에 더 가까운 건 앞으로 만들고자 하는 영화다. <돌아온 사무라이>라는 영화인데, 세 가지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엮어서 나중에 연결시킨다. 문제는 시나리오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웃음) 그래서 또 빚을 내야 할 형편이다. 당신은 <왕의 남자>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무엇이 바뀌었나.

이준익: 빚이 많았는데 그 빚을 다 갚았다.

빚 독촉에 돈가스 요리학원 등록까지 우여곡절

이준익: CF, 뮤직비디오, 단편과 장편까지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너무 부럽다.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감독들이 우리나라에는 드물다. 일본에서는 어떤가. 본인이 특별한가 아니면 일반적인가.

나카노 히로유키: 음, (신중하게) 두 사람 정도 있다. (일동 폭소) 이와이 순지 감독도 영화감독도 하고 광고도 찍지만 그 사람은 영화감독의 타이틀을 걸고 하는 거고, 나는 비주얼리스트(visualist)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것저것 하고 있다. 영화만 하는 게 나로선 좋다.

이준익: 한국쪽과 공동작업하는 영화도 있다고 들었다.

나카노 히로유키: 한국 여배우를 출연시키고 싶다. 현재 한국 프로듀서랑 얘기 중이고 내년에는 꼭 같이 찍길 바라고 있다.

이준익: 구체적으로 어느 여배우인지.

나카노 히로유키: 그건 나중에…. (웃음) 한국 여자들이 “~세요~? ~세요~?”라고 하는 말투가 굉장히 귀여워서 꼭 찍어보고 싶다. (웃음) 매력적이다. 일본에서 로드무비 장르의 시나리오를 쓰던 중이었는데, 절반쯤 쓰다가 인물들의 목적지를 한국으로 바꿨다. 계획에 없던 건데 한국 여배우를 쓰고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은 한국 작가가 붙어서 각본을 재작업 중이다.

이준익: 나는 프로듀서 출신 감독이니까 혹시 프로듀싱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 (웃음)

나카노 히로유키: 나는 아직까지 전문감독(영화사에 제의를 받아 연출을 맡는 메이저 영역의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거 찍어봐도 됩니까?”라고 해서 찍어본 영화가 아직까지 없다. 일본에서는 메이저영화와 인디영화의 구분이 아주 명확하다. 인디영화를 한편 찍고 나면 2년 동안은 빚을 갚아야 한다. <사무라이 픽션> 찍고 나서도 3년 동안 빚 갚으면서 단편들을 찍은 거다. (웃음) 그래서 아직까지 새 장편을 찍지 못했다.

이준익: 돈이 없어서 못 만든 거구나.

나카노 히로유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큰 폐다. 한번 영화찍으러 나가면 8∼9개월씩 안 들어오고 빚은 늘어나고, 늘 이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이준익: 일본의 감독들은 전통적으로 도제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 스탭들과 일하는 데 하모니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당신은 그 시스템 밖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협업이 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나카노 히로유키: 한국의 프로듀서가 진정한 프로듀서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나 작업 전체를 대하는 방식이 그런 것 같다. 일본의 경우에는 프로듀서라고 하면 투자자나 소설의 판권을 따온 사람의 의미가 크다.

이준익: 일본의 프로듀서가 비즈니스맨의 속성이 강하다면 한국의 프로듀서는 필름메이커의 속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인상

이준익: 같은 심사위원으로서 영화제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부분 8개 섹션의 작품들은 다 봤는지.

나카노 히로유키: (고개 끄덕이며) 다 봤다.

이준익: 나는 섹션 하나만 빼고 다 봤다.

나카노 히로유키: 다 보느라 아주 힘들었다. (웃음)

이준익: 나도 힘들어하고 있다. (웃음) 출품작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을 듣고 싶다.

나카노 히로유키: 선발된 작품들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았다. 단편영화제 심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수준이 높지 않았나 싶다.

이준익: 나는 단편영화 심사가 처음인데, 깜짝 놀랐다. 한국의 웬만한 장편영화들 못지않게 기술적으로도 훌륭하고 내러티브의 완결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도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나카노 히로유키: 프로가 찍은 듯한 영상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출품된 한국 단편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나 기타 관련 학과 졸업작품이 많이 출품된 걸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촬영·편집기법이 뛰어나서다. 맺고 끊는 부분에서 학생들 작품인데도 돋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이준익: 한국쪽 출품자들은 대부분 젊은 영화학도들이 많은 데 비해 해외쪽은 연장자에 유경험자가 많더라. 개인적으로는 해외쪽 단편들이 좋았다.

나카노 히로유키: 한국영화 최근작 중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올드보이>다. 본인이 즐기기 위해 만들었고 남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젊고 에너지 있는 영화들. 심사를 하더라도 내가 소장해서 두고두고 보고 남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인지를 기준으로 삼을 생각이다. 이번에 본 경쟁작 중에서는 <아들의 것>(이수진/ 2006년/ 18분/ 35mm/ 컬러)이 좋았다. 아들을 기다리는 노모의 이야기도 좋았고, 영상이 특히 좋았다. 영상에 대해 더 말하자면 스위스나 핀란드 단편들은 그 나라의 풍경을 담은 화면이 특히 아름다웠다.

이준익: 인도영화 <샤누 택시>(바산트 나스/ 2006년/ 15분/ 베타/ 컬러)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벌어질 수 있는 차이, 인간의 가치를 관객에게 공감시키는 영화적 방식이 깊이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원정경기 가는 길>(도키가와 히데유키/ 2006년/ 23분/ DV/ 컬러)은 간이축구를 하러 간 일본 청년들이 선수 한명이 모자라 흑인을 대타로 픽업하게 되는 이야긴데, 외국인과 감정적으로 교류해가는 과정이 매우 유니크하면서도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 국제영화제라는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태도가 심사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무라이 픽션>

<라디오스타>

나카노 히로유키: 단편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

이준익: 물론 있다. 심지어 재미있는 소재도 있는데 바빠서 못하고 있다.

나카노 히로유키: 장편은 커다란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랫마을에서 대본을 쓰고 촬영을 시작하면서 점점 산을 올랐다가 완성하면서 산을 내려오는. 하지만 단편은 하루이틀 만에 결정을 내려서 예산에 맞춰 장면 수와 스크립트를 조절하고 하루 혹은 한 시간이라도 능력을 쏟아 진행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CD를 넣고 처음 몇초를 들으면 이 음악을 들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처럼 장편영화는 사람들이 처음 8∼9분을 보고 이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라면 단편은 처음 15초 내로 그것이 결정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하면 된다고 본다.

이준익: 나는 장편을 그렇게 하는데. (웃음)

나카노 히로유키: (웃음)

이준익: 12월9일에 일본에서 <왕의 남자>가 개봉한다. 보면 5분 안에 결정이 날 것이다.

나카노 히로유키: 5분 만에 영화가 끝나나? (웃음) 농담이 아니고 정말 5분 안에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길 다 넣어놓고 영화를 끝내면 멋지지 않겠나.

이준익: 2시간이 5분 같은 영화일 거다. (웃음)

즐겁고 유쾌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카노 히로유키: 실은 내년에 3편 정도 영화를 찍을 계획이다. 그중 하나가 이와이 순지 감독이 프로듀서로 나선 음악영화다. 90년대 음악을 소재로 하는데 촌스럽지 않게 멋있게 찍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오다기리 조나 쓰마부키 사토시 같은 스타들만 캐스팅되면 영화 잘되게 할 자신이 있다고 프로듀서에게 말해놓고 왔다. (웃음) 최소한 캐스팅이라도 잘돼야 안심이 돼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웃음)

이준익: 나는 프로듀서 겸 감독이라 그런 부담이 덜한 것 같다. 당신도 그 두 역할을 한꺼번에 하면 어떻겠나.

나카노 히로유키: 나도 프로듀서 출신이라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도 당신이 해주면 어떨는지.

이준익: (자못 당황) 나는 바빠서 안 된다. (웃음)

나카노 히로유키: 바쁜 와중이라도 이것도 하기 싫고 저것도 하기 싫고 할 때 맡아주면 어떤가.

이준익: (계속 당황) 내가 뒷바라지해줘야 하는 조감독들이 많다.

나카노 히로유키: 촬영감독 자리라도 괜찮은데.

이준익: 아, 촬영감독. 당신의 비주얼 감각이 뛰어난 건 사실이다.

나카노 히로유키: 그러니까 시켜달라. 사실 감독 제의를 받고 있는 작품은 많지만 내가 흥미가 없다. 일본 영화계가 한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사람들을 많이 울리는 한국영화들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영화들도 점점 관객을 울리기 위한 영화들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한국영화가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일본영화들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그런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감독들은 따로 있으니까 그들이 그 일을 하면 된다. 나는 인생을 즐겁게 볼 수 있는, 기분이 상쾌해지고 유쾌해질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이준익: 얼마 있다가 가도카와 사람들을 만나러 일본에 간다. 그때 당신을 열심히 추천하고 오겠다.

나카노 히로유키: 메이저 영화사로는 도에이와 한번 작업해본 적이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 작품과 같은 감동적인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써놓고 할리우드에 갔다 와보니까 어떤 각본으로 감독 제의가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던 중이었는데 촬영 들어가기 이틀 전에 투자사가 망해서 영화가 중단됐다. (일동 폭소) 그때 아, 이제야 집에 가서 쉴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영화가 싫어졌다. 그래서 돈가스 장사나 해야겠다 싶어서 돈가스 요리학원에 다녔다. 돈가스에 관해서는 나에게 다 물어봐! 할 정도까지 되었었다. (일동 감탄)

이준익: 아니 그런….

나카노 히로유키: <레드 샤도우>라는 영화를 찍다가 출연자 중 한명이 사고를 당했다. 모두들 그가 꼭 낫길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병문안을 가고, 촬영은 중단시켜놓은 상태였다. 마침내 그가 기적적으로 현장에 돌아오게 됐는데 와보니까 시나리오가 그새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정말 고생하면서 마저 찍었다. 나중에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데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웃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동안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라. 그래서 막 울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영화를 보던 우리 관계자가 “저 장면에선 뭐가 어땠고 뭐가 저땠고” 하면서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는 거다. 그때 완전히 질려서 영화를 관두려고 했었다. 그래서 돈가스를 배웠고 그뒤에 돌아와서 찍은 영화가 단편 <다리미>다.

이준익: 나는 외국영화 수입하다가 빚을 수십억원 졌었다. <왕의 남자> 찍는데 촬영현장에서 “레디!” 하면 전화가 온다. 돈 언제 갚느냐는 독촉 전화다. 그럼 (비굴하게 전화받는 시늉하며) 아, 제가 지금 새 영화를 찍는 중인데 이 영화 다 찍고 돈 벌어서 그때 꼭 갚겠습니다, 만날 그러면서 영화를 완성했다.

나카노 히로유키: 으하하하하하하.

이준익: 돈가스는 댈 것도 아니다.

나카노 히로유키: 으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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