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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못한 영화 DVD [1]
문석 김도훈 2006-11-30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직행한 놓치기 아까운 영화 14편

과거 비디오가 흥성하던 시절, 웬만한 영화는 단 하루라도 개봉관에 내걸렸다. 비디오 재킷에 ‘OO극장 개봉작’이란 문구가 붙으면 그렇지 않은 영화보다 1만원가량 비싸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룰이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습이란 걸 생각해보면, 비디오 또는 DVD로 바로 출시할 영화를 단관에서라도 개봉하려는 수입업자들의 관행은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단관일지라도 극장 개봉에는 선제물, 포스터, 광고, 프린트 등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게 된다. 결국 뒤집어 말하면, 곧바로 비디오 대여점이나 DVD숍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비디오와 DVD를 팔아도 개봉 비용을 뽑지 못할 만한 영화를 의미하게 된다.

여기 소개하는 14편의 DVD는 어떨까. 여러 가지 이유로 극장을 잡지 못한 채 곧바로 DVD로 출시된 이들 영화 중에는 한국에서 흥행 전망이 암담한 경우도, 시기 선정에 실패한 경우도, 그냥 어영부영하다가 개봉 후보에서 밀려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장 개봉에서 소외된 이들 14편의 영화에 공통점이 있다면 웬만한 극장 개봉작보다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걸작까지는 아니지만 쏠쏠한 재미와 한 움큼의 감동, 그리고 개성 강한 맛을 갖고 있는 비운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또한 이들이 개봉하지 못한 사연을 <씨네21>이 나름대로 추리해봤다.

10살짜리 꼬마에게서 죽은 남편이 보인다

<탄생> Birth 감독 조너선 글레이저/ 출연 니콜 키드먼, 카메론 브라이트, 로렌 바콜/ 2005년/ 100분/ 태원엔터테인먼트

10년 전 젊은 나이로 남편을 잃은 애나(니콜 키드먼)는 남편의 오랜 친구인 조셉과의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10살짜리 꼬마아이 숀(카메론 브라이트)이 갑자기 나타나 말한다. “제가 당신의 남편입니다.” 애나와 가족들은 숀의 황당한 고백을 웃어넘기려 하지만, 애나는 계속되는 숀의 행동과 말에서 죽은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탄생>은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소품이다. 영화는 윤회에 대한 진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십수분에 걸쳐 오페라를 바라보는 니콜 키드먼의 섬세한 얼굴 근육과 조용히 맨해튼의 맨션 복도를 떠도는 홀린 듯한 두려움의 공기를 통해 관객에게 속삭인다. 아마도 숀은 숀의 환생일는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사실 윤회라는 소재는 인간의 비탄과 헛된 열망에 대한 맥거핀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탄생>은 우리 시대 가장 명민한 예술가들의 협연물이다.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Karma Police> 같은 뮤직비디오계 걸작들을 만들고 <섹시 비스트>(2000)로 장편 데뷔한 조너선 글레이저, 루이스 브뉘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과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쓴 장 클로드 카리에,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를 촬영한 해리스 세이비데즈, 그리고 미아 패로처럼 짧은 단발로 파리한 두려움을 연기하는 니콜 키드먼과 소름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아역배우 카메론 브라이트. 모든 요소들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선율을 타고 팽팽하게 살얼음을 걷는 <탄생>은 너무나도 예민해서 카메라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숨을 멈칫하게 만드는 기묘한 스릴러다.

2005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탄생>은 당시 12살이었던 카메론 브라이트와 니콜 키드먼의 목욕장면 때문에 매스컴의 쓸모없는 비아냥을 들으며 금세 잊혀졌다. 평단은 <탄생>을 실패한 예술영화가 아니라면 지루한 상업영화 혹은 영재 감독의 지나친 야심 정도로 이해했다. 하지만 <탄생>은 그보다 덜 예술적이고, 그보다 덜 지루하고, 그보다 덜 야심적인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탄생>은 무섭도록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단발한 니콜 키드먼은 기겁할 만큼 아름답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빌려 이 영화를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릴러로 광고할 만용은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고원을 지키는 외로운 싸움꾼들의 맑은 영혼

<커커시리> 可可西里 감독 루추안/ 출연 두오부지, 라이장, 리앙오이, 자오지웨잉/ 2004년/ 90분/ 소니픽쳐스

티베트와 신강위구르 사이에 자리한 해발 5000m 고원지대 커커시리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데뷔작 <사라진 총>(2002)으로 주목받은 베이징영화학교 출신 루추안의 두 번째 장편영화 <커커시리>는 거대한 대지에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 커커시리에는 100만 마리에 이르는 티베트 영양들이 인간의 손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연 그대로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양의 털과 가죽에 매혹된 서구의 장사꾼들로 인해 커커시리에는 거대한 살육의 물결이 몰아닥친다. 이제 주민들은 사라져가는 영양의 수를 보존하고 밀렵꾼을 잡기 위해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한다.

비전문배우를 기용하고 세미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촬영된 <커커시리>는 보는 이를 조용하고 광활한 대지로 몰아간 뒤 격정적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드라마다. 관객은 화자로 설정된 신문기자 가유의 눈을 통해 자경대를 따른다. 자경대는 몸도 제대로 씻지 못한 채 수많은 나날을 거대한 대륙의 지붕을 돌며 밀렵꾼을 쫓지만, 거대한 대륙에서 인간의 목숨이란 부질없는 먼지다. 모래무덤은 그들의 몸을 끌어당기고, 변변찮은 트럭은 그들의 몸을 쇳덩어리로 짓누르며 뒤집히며, 밀렵꾼들의 총탄은 그들의 뇌수를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다. 진정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정부의 청을 받아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영양을 지켜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총을 들고 거친 커커시리를 헤맨다. 그래서 루추안이 그려내는 <커커시리>의 삶과 죽음은 가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예기치 않게 전해주는 격정적인 자연의 드라마와 닮아 있다.

<커커시리>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자경단의 삶을 제3의 화자를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중국 정부의 이중적인 소수민족 정책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진 대륙의 귀퉁이에서 약동하는 인간들의 실존적인 비극, 그 앞에서 정치적인 의도를 질문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개를 숙여 숙연함을 표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다큐멘터리로 착각한 수입업자들의 실수일까. 혹은 국내의 티베트 영양 털가죽 수입업자들의 음모일지도.

SF 미니시리즈 <파이어플라이>의 극장판

<세레니티> Serenity 감독 조스 웨든/ 출연 네이선 필리언, 지나 토레스, 애덤 볼드윈, 모레나 바카린/ 2005년/ 119분/ 유니버설

비운의 SF 미니시리즈가 부활했다. 2005년 개봉작 <세레니티>는 조스 웨든(<미녀와 뱀파이어>)이 제작한 SF 미니시리즈 <파이어플라이>(Firefly)의 극장용 장편이다. 2002년 <폭스TV>를 통해 방영된 <파이어플라이>는 전체주의 연방과 독립국가간 전쟁이 연방의 승리로 끝난 50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고물 우주선 ‘세레니티’를 몰고 다니며 난파된 우주선의 식량을 훔쳐 파는 말콤 일행의 모험을 다룬 스페이스 오페라다. 하지만 <파이어플라이>는 개똥벌레(Firefly)만큼이나 짧은 수명을 기록하며 우주로 사라져버린 비운의 시리즈였다. 상업채널 <폭스TV>가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시리즈의 조기 종영을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린 것이다. 놀랍게도 <파이어플라이>를 되살린 것은 DVD를 50만 세트나 구매한 마니아들이다. 이에 힘입은 조스 웨든은 유니버설과 손잡고 자신의 첫 장편영화이자 <파이어플라이> 극장판인 <세레니티>를 제작할 수 있었고, 미국 개봉시 TV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장르영화로서는 희귀하도록 뛰어난 비평적 성과를 거뒀다.

연방에서 도망친 의사 사이먼과 초능력자 여동생 리버를 태우면서 겪는 세레니티호의 위기를 다루는 <세레니티>는 시리즈의 외전이라기보다는 시리즈의 최종 연장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레니티>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장편의 흐름을 온전히 지니고 있다. 조스 웨든은 마니아를 충족시키면서도 시리즈의 문외한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현명한 방식을 택했다. 오리지널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확 줄이고, 대신 매력적인 캐릭터와 간결한 이야기의 힘을 늘렸다. 게다가 겨우 4500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의 기술적 성과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특수효과는 효과적으로 세공되어 있으며(값싸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마차 경주를 오마주한 추격전은 조지 루카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가 결여하고 있는 오래된 스페이스 오페라의 박진감을 화면에 되살려낸다. 장르 팬이라면 <파이어플라이>의 DVD 세트를 함께 구입하는 호사를 누려도 은하계 아래 한점 부끄럼이 없을 것이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국내 미 방영 SF 미니시리즈의 극장판을 개봉할 만한 담력을 지닌 제작자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미국은 지금 문화도 정치도 쇼.쇼.쇼

<아메리칸 드림즈> American Dreamz 감독 폴 웨이츠/ 출연 휴 그랜트, 데니스 퀘이드, 맨디 무어, 크리스 클라인/ 2006년/ 107분/ 유니버설

비록 박스오피스의 수렁으로 사라졌지만, <아메리칸 파이>와 <어바웃 어 보이>를 감독한 폴 웨이츠의 4번째 장편영화 <아메리칸 드림즈>는 꽤 즐길 만한 정치풍자코미디다. 미국 대통령(데니스 퀘이드)은 4년 만에 처음으로 신문이라는 걸 한번 읽어보겠다 결심한다. 문제는 대통령이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밤낮으로 침실에서 신문 스크랩만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지율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백악관의 실질적인 조종자인 보좌관(윌렘 데포)은 대통령을 최고의 시청률을 차지하고 있는 가수 선발 프로그램 <아메리칸 드림즈>에 심사위원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한편 <아메리칸 드림즈>의 사회자인 마틴 트위드(휴 그랜트)는 쇼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괴이한 후보들을 선발하기 시작한다. 마틴의 레이더에 걸려든 것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갖다바칠 남부 소녀 샐리(맨디 무어)와 대통령 암살을 지령받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라크인 오마르(샘 골자리). 이제 대통령과 마틴과 샐리와 오마르가 동시에 무대에서 만나는 쇼의 최종회가 다가온다.

폴 웨이츠 감독이 신작의 소재로 끌어온 것은 지금 미국을 굴러가게 만드는 거대한 ‘쇼’들, 조지 부시 정부와 이라크 전쟁, 그리고 실제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 중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이다. 패러디는 의외로 직접적이다. 휴 그랜트가 연기하는 마틴 트위드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영국인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의 판박이고, 데니스 퀘이드와 마샤 게이 하든은 헤어스타일부터 남부 사투리를 웅얼거리는 모습까지 영락없이 부시 내외다. 그러나 폴 웨이츠는 도발적으로 자신의 희생물들을 조롱하는 대신, 전작들을 관통하는 선량하고 미국적인 낙관주의를 무기로 상큼하게 미국의 팝문화와 정치의 쇼비즈니스적 속성을 놀려댄다. 풍자코미디치고는 뒤통수를 치는 맛이 좀 싱겁고, 박스오피스와 비평적인 성과도 그만큼 싱거웠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즈>는 <아메리칸 파이>와 <인 굿 컴퍼니>에 이은 폴 웨이츠의 ‘아메리칸 3부작’으로 치켜세워도 손색없는 라스트 쇼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조지 부시를 아는 당신,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을 아십니까? 모르는 걸 패러디해봐야 관객이 들 리가 있나.

노동자와 드랙퀸의 이상한 동거

<킨키 부츠> Kinky Boots 감독 줄리언 제럴드/ 출연 조엘 에지톤, 치웨텔 에지폴, 사라 제인 포츠/ 2005년/ 106분/ 브에나비스타

영국 코미디는 어느새 클리셰가 됐다. 쇠락한 산업도시의 돈없는 노동자 계층.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꿈꾸는 사람들. 그들 주위에 머무르는 정치적 소수자들. 이러저러한 요소들을 북부 악센트와 버무리면 질좋은 코미디영화 한편 뚝딱 하고 나오는 덕택이다. <킨키 부츠> 역시 이같은 클리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영화로, 이번에는 제화산업이 몰락한 소도시 노스햄튼에서 드랙퀸용 신발을 만들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구두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조엘 에지톤)는 오랫동안 함께한 노동자들을 해고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마음이 약해 고민하던 그는 런던의 한 클럽에서 우연히 드랙퀸 쇼를 보고는 ‘틈새시장’을 노리기로 결심한다. 찰리를 돕기 위해 흑인 드랙퀸 롤라(치웨텔 에지폴)가 노스햄튼의 공장으로 오지만, 보수적인 노동자 계급의 편견 앞에서 곤욕을 치른다. <킨키 부츠>는 찰리와 롤라, 두 소심한 몽상가들의 성장을 따르는 영화다. 한 인간은 전통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야 하고, 또 다른 인간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기 위해 내면의 진정한 용기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구두 공장 노동자들은 찰리와 롤라의 변화에 감화돼 ‘킨키한(음탕한) 부츠’를 편견없이 제작하는 데 성공한다.

<킨키 부츠>는 (<풀 몬티>와 <빌리 엘리어트>이 그랬듯이) 영국인들이 그토록 잘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동화를 능숙하고 행복하게 결합해낸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킨키 부츠>가 클라이맥스를 밀라노 패션쇼에서의 소동으로 끝내는 폼이 영락없는 기성품 영국 코미디에 할리우드 관습을 더한 꼴이라 지적하는 것도 온당할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킨키 부츠>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50년 동안 3대를 내려온 노스햄튼 신발 공장의 성공기는 본편에 이어지는 15분짜리 <리얼 킨키 부츠 공장> 서플에서 확인 가능하다. 동화 같은 일들이 그쪽 동네에서는 가끔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으로, <킨키 부츠>는 앞으로 한 서른편쯤 더 나와도 시침 뚝 떼고 믿어줄 만한 ‘영국식 현대 동화’의 썩 괜찮은 클리셰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스타가 등장하는 몇몇 워킹 타이틀 영화를 제외한다면, 흥행에 성공한 영국 코미디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눈먼 미국인과 러시아 백작 부인의 사랑

<화이트 카운티스> The White Countess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출연 레이프 파인즈, 나타샤 리처드슨, 사나다 히로유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2006년/ 138분/ 소니픽쳐스

아편 연기 속에 울렁거리던 1936년 상하이. 러시아 백작 부인 소피아(나타샤 리처드슨)의 가족은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은 채 상하이에서 살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호스티스로 일하던 소피아는 시력을 잃은 미국 외교관 토드 잭슨(레이프 파인즈)를 돕게 되고, 잭슨은 소피아에게서 영감을 얻어 ‘화이트 카운티스’(백인 백작 부인)라는 바를 개업한다. 소피아와 잭슨은 곧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역사의 풍랑은 심상치가 않다. 잭슨은 ‘화이트 카운티스’를 상하이의 모든 세력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클럽으로 만들자는 일본인 외교관 마츠다(사나다 히로유키)의 제의를 승낙하지만, 모든 것은 상하이를 삼키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간계였음이 밝혀진다. 전쟁이 발발하자 잭슨은 가족을 이끌고 홍콩으로 떠나려는 소피아에게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

<화이트 카운티스>는 전형적인 제임스 아이보리의 세계다.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자 이시구로 가즈오는 신분을 떨쳐버리지도 감당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의 사랑을 슬며시 들추어내고, 미열을 타고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들은 레이프 파인즈와 나타샤 리처드슨,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같은 숙련된 연기자들에 의해 근사하게 생명을 얻는다. 모든 것이 아이보리식으로 유려하게 재단된 세계를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은 아찔한 프로덕션디자인이다. 흥청거리는 상하이를 재현한 세트는 보는 것이 호사스러울 정도여서 <화이트 카운티스>가 이상한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아이보리의 넋두리처럼 보이는 순간도 간혹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가 눈먼 미국인과 퇴락한 러시아 백작 부인의 사랑을 유미주의적인 빛으로 담아내는 순간, 어쩌면 이토록 화려한 허상의 세계야말로 아이보리와 이시구로 가즈오가 원했던 1936년 상하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DVD에는 고 이스마엘 머천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서플로 실려 있는데, 역시나 우아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간 양반이었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레이프 파인즈와 나타샤 리처드슨이 나오는 머천트-아이보리 영화라니. 개봉은커녕 DVD로 출시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전설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귀환

<프랭크 허버트의 듄의 후예들> Frank Herbert’s Children of Dune 감독 그레그 야타네스/ 출연 알렉 뉴맨, 줄리 콕스, 수잔 서랜던, 에드워드 애터튼/ 2003년/ 266분/ 드림믹스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실패작인 데이비드 린치의 <>은 결국 컬트로 남았지만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의 팬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1965년에 시작해 1985년에 마지막 권이 집필된, 전세계적으로 1200만부가 팔린 전설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연대기를 한편의 영화에 담는 것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모할 것 같았던 <>의 영상화에 또다시 손을 댄 것은 감독 존 해리슨을 위시한 TV계의 재능들이다. 도전의 성과는 훌륭했다. 지난 2000년에 방영된 3부작 TV시리즈는 채널 <Sci-Fi>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성공을 거두었고, 원작의 2, 3부인 <듄 메시아>와 <듄의 후예들>을 각색한 후속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의 듄의 후예들>(이하 <듄의 후예들>)이 지난 2005년에 방영되어 시리즈를 이었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라 내용을 요약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듄의 후예들>은 전편의 주인공인 폴 아트레이드가 세운 제국의 붕괴와 후손들의 일대기를 담은 서사극이다. 방대한 분량을 영상화하기에는 266분의 러닝타임도 모자라는 게 사실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저하되는 프로덕션의 질도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과 <듄의 후예들>은 고전기 SF의 향취를 기막히게 재현해내는 재주를 과시한다. 이는 수십년간 활자로만 존재해온 원작이 여전히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덕이다. 물론 원작과 장르에는 문외한인 관객이라도 두편의 미니시리즈를 통해 <>의 세계를 엿보는 쾌락을 맛보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2000년 방영된 <>에서 촬영을 맡았던 전설적인 빛의 거장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듄의 후예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1부를 만들면서 블루 스크린으로 피사체를 찍어 배경과 합성하는 손쉬운 방식을 거부하고, 아예 실내 스튜디오에 행성 모양을 벽화로 그려 모든 장면을 찍어냈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복고적인 스토라로의 방식은 키치적인 구식 스튜디오 SF영화의 향취를 지녔으나 간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빠진 <듄의 후예들>는 벽화를 걷어내고 평이한 블루 스크린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훨씬 자연스럽지만 어째 영 아쉽기도 하다.

왜 개봉하지 못했을까? 물론 <듄의 후예들>은 TV 미니시리즈다. 당연히 개봉할 리가 없지. DVD로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