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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숲으로 소풍가자, 낯설고 고혹적인
2001-09-21

9월25일∼28일, 서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0월10일부터는 부산에서 48편 무료상영

사막 같은 황무지에 수십년간 나무를 심는 사람의 이야기를, 혹 봤거나 읽었을지 모르겠다. 물과 생명이 말라붙고 마을의 폐허만 남은 땅에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어 마침내 숲으로 가꿔낸 양치기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의 삶 말이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동명소설을 렘브란트의 회화마냥 섬세한 빛과 색채의 일렁임, 결이 풍부한 크레용화로 살려낸 프레데릭 벡의 87년작 <나무를 심는 사람>은 국내에는 다소 낯설고도 신기한 화풍의 캐나다 애니메이션이다. 히로시마, 자그레브 등 유명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물론, 클레르몽 페랑과 오스카의 애니메이션 트로피까지 각종 영화제를 휩쓴 이 작품은 국내 공중파 방송과 위성채널, 비디오로도 소개된 바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국내 토양에서 캐나다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낯선 그림이다. 영화제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캐나다 애니메이션 축제가 오는 9월 말과 10월 중순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다.

오는 9월25일부터 28일까지는 서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0월10일부터 14일까지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개최하는 ‘캐나다 애니메이션영화제’는 주한 캐나다대사관과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부산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행사. 캐나다의 메이저 애니메이션제작사인 ‘널바나’(Nelvana)에서 만든 <말괄량이 삐삐>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상에 은퇴한 도서관 사서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인간 식물> 등 2편의 장편을 포함해 모두 48편의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장편 상영작 수는 적지만,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벡의 <나무를 심는 사람>은 물론, 어릿광대 내면의 강박증을 수려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살려낸 <빙고>나 60여년의 전통과 함께 창조적인 상상력과 이미지 실험의 산실로 알려진 ‘NFB’(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의 작품들 등 중·단편의 다채로운 질감이야말로 캐나다 애니메이션을 세계에 알린 주역이니 말이다.

‘NFB 단편걸작선’, ‘이미지의 실험실’, ‘애니매니아’, ‘Beyond NFB’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선보이는 중·단편 목록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NFB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의 표정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NFB는 1939년, 영국 다큐멘터리감독 존 그리어슨이 캐나다의 영화산업에 자문역을 맡았을 때 영화제작 전반을 관할하기 위해 창설한 기구. 당시 전위적인 영상 실험의 전방에 섰던 영국 애니메이터 노먼 맥라렌을 영입해 애니메이션에 발디딘 이래 예술적인 실험과 독립애니메이션 작가들의 요람을 자임해왔다.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다양한 구성원들간의 이해를 돕고, 캐나다를 세계에 알리는 영상물을 표방하는 NFB와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국적에 상관없이 재능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열린 기회였다. 유리 위에 모래와 잉크로 그림을 그린 캐롤라인 리프, 셀부터 구슬까지 갖가지 재료로 신비로운 영상을 빚어낸 이슈 파텔, 인형과 종이의 장인 코 회드만과 핀스크린의 대가 자크 드루엥 등 새로운 상상력과 이미지의 연금술사들이 이곳에서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구미부터 아시아까지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 셀과 종이는 물론 점토와 인형, 모래, 붓, 핀, 사진과 실사영상, 컴퓨터그래픽 등 갖가지 화구로 탐사하는 이미지의 풍요로움은 캐나다 애니메이션에 주목하게 만드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빠진 작가들도 있지만, 모래 인형이 등장하는 코 회드만의 오스카 수상작 <모래성>이나 이질감에 대한 두려움을 폭력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의 습성을 만화체로 그린 브레티슬라프 포야르의 <발라블록> 같은 70년대 작품부터,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당한 여성의 내면을 따라가는 유연한 붓선이 인상적인 미셸 쿠르누아예의 <모자>, 재료를 오려내는 컷아웃 기법으로 한 남자의 엉뚱한 일상탈출극을 담은 유진 페데렌코의 <바보들의 마을> 같은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이번 영화제에서 그 매력의 일부를 확인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 “인간은 파괴뿐 아니라 창조도 신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부피에 노인처럼, 사람의 손으로 고집스럽게 빚은 마술 같은 이미지의 숲을 만날 수 있다.

황혜림 blauex@hani.co.kr

▶ 캐나다 애니메이션 영화제

▶ 상영작 48편 미리보기1

▶ 상영작 48편 미리보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