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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처럼 다가온 ‘아주 특별한’ 봄바람, <아주 특별한 손님>의 한효주
장미 사진 오계옥 2006-11-30

한효주는 ‘첫사랑’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선이 고운 사람이다. 보드라운 갈색 머리칼이나 앳된 얼굴은 물론이고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만 봐도 그렇다. 무엇보다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들, 예컨대 유년의 비밀이나 순수함 등은 한효주의 성정과 맞닿은 면이 있다. “사람이 예뻐도 영혼까지 예뻐 보이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봄의 왈츠>에 한효주를 캐스팅하며 윤석호 감독이 던진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우연스레 이국땅에 발을 내디딘 섬소녀 박은영. 고향에서 실려온 봄바람처럼 쾌활하게 웃던 그녀는 심지 굳은 남자들의 마음조차 마냥 설레게 했고 좁은 어깨를 들썩이던 그 웃음에서 첫사랑의 드라마가 완성됐다. “감독님이 인터넷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제 사진을 보곤 부르셨대요.” 믿기 어려운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한효주는 엄청난 우연의 벽을 넘어 이곳에 도달한 셈이다. 출연작이라곤 시트콤 <논스톱5>와 영화 <투사부일체>가 전부. 봄이란 계절에 맞게 신인을 발탁했다는 변론에도 송혜교, 최지우, 손예진에 이어 계절 시리즈의 여왕좌에 오른 87년생 배우가 질투 섞인 시선을 한몸에 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솔직히 <봄의 왈츠>는 좀 힘들었어요. 전에 시트콤을 하긴 했지만 연기라는 것이 뭔지 전혀 몰랐거든요. 한마디로 무지했죠, 무지. 끝나고 나서도 당분간 그랬는데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더라고요. 괴로우면 괴로웠던 만큼 약이 된다고 참 많이 배웠어요.”

거품처럼 얹힌 소녀다움을 걷어내니 이내 침착하고 평온한 초콜릿 빛깔의 눈이 엿보였다.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 수상자답게 미소가 귀여운 소녀. 한효주는 아마도 그 눈동자 때문에 비좁은 이미지의 틈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단번에 선택한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드디어 미소를 씻어내고 무표정을 둘렀다. “사실 이런 기회는 몇년 뒤에나 오겠구나 싶었어요. 감독님께 감사해요. 절 다른 시각으로 봐주셨으니까요.” 힘들여 설명하지 않고도 속엣것을 세심히 전달했던 <여자, 정혜>를 떠올리건대 이윤기 감독의 신작 <아주 특별한 손님>은 비슷한 울림을 지닐 가능성이 컸다.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 새벽마저도 나름의 사연을 품은 듯한 이 영화에서 한효주는 이방인의 요청을 겁없이 수락하는 보경이란 인물을 맡아 대사 대신 손짓과 눈빛을 통해 이야기를 건넨다.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약간의 위트도 섞인, 그런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아도 그냥 보면 느낄 수 있는 영화 있잖아요.” 하고픈 말을 오래도록 곱씹는 한효주지만 <아주 특별한 손님>은 생애 첫 스크린 주연작인 동시에 몇번이나 좋았다고 토로하고픈 ‘아주 특별한 작품’이다. 생각할 시간도, 대화할 시간도 소중했던 까닭에 10회차를 계획하고 시작된 한달여의 촬영기간이 너무 짧아 오히려 아쉬웠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많은 걸 드러냈어요. 나만 이렇게 재밌나, 나만 이렇게 즐겁나, 하기도 했고. (웃음) 다른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저처럼 위안을 얻었으면 해요.”

<아주 특별한 손님>의 원작은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집 <멋진 하루>에 수록된 <애드리브 나이트>. 일본어를 배울 정도로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한효주와 이번 작품을 연결하는 또 다른 이음새다. “아, 난 정말 운이 좋구나, 그런 마음은 늘 있어요. 인복도 많고요. <아주 특별한 손님> 찍고 나서도 그랬죠. 부산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며칠 전엔 예고편도 재밌게 촬영했어요.”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칭하는 한효주는 대학 진학을 계기로 연기를 택한 이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단번에 합격하며 차분히 꿈을 이뤄왔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연거푸 주연배우의 책임감을 떠맡아 한편으론 두려웠으리라 지레짐작했지만 사실 그녀는 “얻을 건 많지만 잃은 건 없었”기에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답하던 담대한 사람이다. “주연이라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그 역할을 잘 소화해야 하니까 부담스러운 거겠죠. 주연이나 조연이나 단역이나 전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진 촬영을 위해 거리로 나서니 근처를 노닐던 동네 꼬마들이 둥글게 모여들었다. “야, 한효주다, 한효주.” 반짝이는 시선들에 둘러싸여 의연하게 포즈를 취하던 한효주가, 어쩌면 무례하게 들릴 숨죽인 속살거림에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한효주 누나라고 불러.” 아이들의 키득거림으로 갑작스레 환해지던 짧은 초겨울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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