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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자칭 호러 <쏘우3>에 새로운 장르명을 제시하다

호러의 탈을 쓴 동포영화잖아!

어떤 조사에 의하면 <식스 센스>의 결말을 아무런 힌트없이 한 시간 내에 예측한 사람이 전세계에 5천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대단하다. 영화 막판 브루스 셔츠 등짝에 밴 핏자국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일순 ‘앗, 누가 저기에 초코 시럽을?’ 따위의 옥시크린적 생각이나 했던 필자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가 아닐 수 없다.

<쏘우>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이 영화의 ‘범인’을 끝나기 20분 전에 알아냈다느니,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느니 등등의 얘기를 하고 있을 때, 필자는 조용히 이렇게 되뇌었을 뿐이었다. ‘그래, 그래도 전세계 인구 중 5천명밖엔… 5천명밖엔….’ 그래서랄까, 하여튼 필자는 <쏘우>의 주최쪽이 붙이고 있는 ‘퍼펙트 스릴러’라는 장르명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고픈 욕구를 매우 강하게 느낀다.

<쏘우> 시리즈는 매년 하절기에 접어들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자칭 공포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의 각종 신체부위에 상해를 입힘으로써 마침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핵심 컨셉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체상해 내지 사지절단 장면들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실체는 공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실 ‘어유, 저걸 내가 직접 당하면 얼마나 아플 것인가’ 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에 근간을 둔 측은지심에 다름없다. 그리고 이 측은지심은 등장인물의 몸을 내 몸처럼 여겨 함께 해당 상해부위를 움찔거리는 본의 아닌 박애적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마침내 극장 안은 사해동포주의로 넘실거리기에 이르니, 대체 이를 ‘동포영화’(同胞映畵) 외의 다른 어떤 장르명으로 칭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인간의 성선설을 본의 아니게 뒷받침해주고 있는 ‘동포영화’ 장르. 그중 최고봉에 올라 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데다가, 3편에 이르러 별의별 기상천외한 기구들을 총동원하여 사해동포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체험시켜줌으로써 놀라움을 더하고 있는 <쏘우> 시리즈. 더욱이 당 영화는 내용에서도, 원수를 끝까지 무조건 용서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것을 주야장천 설파하기까지 했던 바, 관객으로선 도대체 박애지심을 안은 채 극장문을 나서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아, 그랬다. <쏘우3>는 동절기를 맞이해 사랑과 용서와 박애의 정신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상은 필자가 <쏘우3>를 끝까지 참고 본 뒤 밀려온 허탈감을 수습하기 위해 고안해낸 이론이다. 혹 이 영화를 보게 될 독자가 있다면, 영화를 미워하기 전에 한번 이 이론을 떠올려보길 바라 마지않는다. 무릇 연말연시란 사랑과 화해와 용서의 계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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