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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월드의 열혈팬 배우 정유미, 이와이 순지 감독을 만나다
정리 장미 사진 오계옥 2006-12-14

이와이 순지 감독과 배우 정유미의 조합은 생경한 면이 많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사람의 대담은 정유미가 이와이 순지 감독의 연출작을 낱낱이 기억하는 열혈팬이고 이와이 순지 감독이 부산영화제를 “굉장히 열성적인 영화제”라 칭하며 꾸준히 찾을 정도로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힘을 얻어 순조롭게 진행됐다. <무지개 여신>은 이와이 순지 감독이 ‘플레이워크’라는 시나리오 공모 프로젝트를 통해 시나리오를 발굴한 이후 “섬세한 연출을 할 수 있고 느낌이 좋은 감독이 되리라 생각”한 구마자와 나오토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자신은 기획, 제작, 각본에만 참여한 영화. 연출을 겸하지 않은 최초의 작품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정유미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대담 전날 설렘과 두려움으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웃음과 미소를 주고받던 2시간의 대담이 끝나고 정유미가 자신이 출연한 <폴라로이드 작동법> <사랑니> <가족의 탄생> DVD를 선물로 건넸다.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일본어 열심히 배울게요.” 아쉬운 인사로 끝맺은 감독 대 팬, 감독 대 배우의 대화를 여기에 옮겼다.

작은 것에서 건진 특별함, 그게 바로 훌륭한 연기죠

정유미: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아 고마운 마음이 앞서고 한편으로 무척 떨리네요. 먼저 <무지개 여신>에는 제작자로 참여하셨는데 완성된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와이 순지: 영화가 완성되기 전까지 프로듀서로서 진행 과정을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감독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면 직접 각본까지 쓰게 되는데 이번 영화는 저 외에 사쿠라미 아미라는 다른 각본가가 있었고 감독도 따로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영화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유미: 혹시 영화를 연출하실 때 현장에서 식사는 잘하시나요. (웃음) 내년에 개봉할 제 세 번째 출연작이 <좋지 아니한가>인데 그 영화를 연출하신 정윤철 감독님은 영화에만 신경을 쏟느라 식사하시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거든요.

이와이 순지: 식사는 잘하고 있습니다. (웃음)

정유미: 그분은 밥먹는 시간도 아까워하시는 것 같았는데 감독님은 어떠신가요.

이와이 순지: 저는 오히려 현장에서보다 각본을 쓰는 동안 사람들과 만나고 않고 혼자 작업에 몰두한 채 괴로워하는 편입니다. (웃음)

정유미: 출연작이 네편으로 많지는 않지만 저는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이 매번 무척 행복했습니다.

이와이 순지: 사실 감독으로 현장에 있을 때는 많은 일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다른 영화에 배우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현장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제가 영화를 만들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좋은 배경을 뒤로한 채 아주 중요한 신을 촬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배우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 좋은 그림을 담아내는 때입니다. 그런 기쁨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영화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정유미: 그렇다면 어떤 것이 훌륭한 연기일까요. 사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와이 순지: 기본적으로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그런 배우를 찾습니다. <무지개 여신>의 등장인물들 역시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 관객에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와닿게끔 연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너무 특별하게 연기하는 것 역시 이상하다고 봅니다. 그 배우가 연기해서 안심이 되고 동시에 그 연기가 관객에게 임팩트도 줄 수 있을 때, 훌륭한 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소녀들이 길을 걷고 있는데 움직이는 고양이가 눈에 띄었고 시선을 완전히 빼앗길 정도로 매우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고양이의 행동은 아주 자그마한 것이었지만 소녀들에게는 큰 임팩트로 다가온 겁니다. 작은 움직임, 작은 소리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배우라면 임팩트있는 연기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유미: 개인적으로 <무지개 여신>에 출연한 배우 우에노 주리를 보며 감독님이 설명하신 그런 임팩트를 느꼈습니다. 일상적인 것을 통해 특별함을 전달하는 배우, 저도 그런 배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고요. 그리고 우에노 주리가 연기한 아오이처럼 직접 단편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한 경험은 없지만 저 역시 대학 다닐 때 단편영화를 찍는 작업에 배우로, 또 연출부로 참여한 적이 있어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지개 여신>을 통해 일종의 향수를 느낄 겁니다.

이와이 순지: 대학 시절 저 또한 두곳의 영화연구회에서 활동을 했는데 우리 학교의 영화연구회와 아는 형에게 소개를 받아 불려간, 그 형이 다니는 의대의 영화연구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의 영화연구회가 굉장히 진지하고 재미없는 이른바 아트영화를 만드는 곳이었다면 의대의 영화연구회는 돈이 되는 영화, 이를테면 큰 거 하나, 물건 하나 만드는 데 관심을 쏟는 전혀 다른 색깔의 서클이었습니다. 편집까지 맡아했던 때라 우리 학교 영화와 의대 영화를 동시에 편집하고는 했는데 자꾸만 의대에서 만들던 코미디로 손이 가고 그쪽 편집을 더 열심히 하게 돼 제 취향이 코미디쪽이 아닌가 고민도 했습니다. (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손이 갔던 필름이 코미디영화였으니까요. 멋진 영화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즐거운 영화를 만드는 것도 좋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고민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부터

정유미: 극중 아오이가 회사 옥상에서 토모야의 등짝을 바라보는 장면 또한 아오이의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 좋았습니다. <무지개 여신>은 감독님의 연출작은 아니지만 이런 특징은 감독님이 직접 연출하신 작품에도 해당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와 앨리스>를 보면 하나가 병원 복도에 앉아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는데 배우가 스스로 이런 디테일을 만들어냈는지 감독님께서 그 부분에 대한 지시를 내리셨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이와이 순지: 워낙 여러 경우가 있어서 그 장면에서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웃음)

정유미: 다른 장면도 있습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아이들이 음반매장에서 CD를 훔쳐 도망친 뒤 조그마한 터널 같은 곳에서 도난방지 장치를 떨어뜨리려고 CD를 벽에 마구 내려치는 신이었는데요. 메이킹 필름을 보니 감독님께서 배우들에게 조금 더 세게 내려치라고 요구하시더군요. 역시 연기의 디테일을 살리려면 감독과 배우 사이에 의사 소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와이 순지: 저는 일단 감독이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주문을 내릴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상대가 중학생이면 똑같은 설명도 쉽게 표현해야 합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는 배우들에게 길게 설명하고 난 뒤 “이제 알겠니?”라고 물으면 “몰라요”라고 대답했을 만큼 그게 잘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색다른 방법들도 고안해냈습니다. 예컨대 음식을 주면서 그걸 먹으며 연기를 해보라고 하거나 창밖을 한번 바라보라고 말하며 움직임을 유도하기도 했고 어떤 물체를 움직여서 그걸 보도록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린 배우들은 서로 아는 데도 한계가 있고 너무 많이 알아도 연기가 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지시를 내립니다. 아이들과의 촬영은 절대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물을 데리고 하는 촬영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감독들은 늘 새로운 접근방법을 시도해야 합니다.

정유미: TV에서 방영됐던 <불꽃놀이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에도 어린아이들이 출연합니다.

이와이 순지: 일본에는 아역을 데리고 있는 소속사들이 많은데 <불꽃놀이…>를 만들던 때에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그래서 그건 그해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작품입니다. 그 나이 또래의 자연스런 모습이 묻어나는 11명의 아이들에게 다양한 트레이닝으로 연기를 주입시켰고 이런 과정을 통해 고난도의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아이가 변성기 때문에 말을 하다가 목소리가 변하는 어려운 연기를 해야 했는데 열심히 연습을 한 끝에 그걸 성공적으로 해냈을 정도입니다. 사실 연습할 때 냈던 목소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실제로 찍으니까 잘 안 나와서(웃음) 제일 좋은 이상한 목소리를 위해 테이크를 많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유미: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리허설을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감독님께서 마음에 안 들어하며 아까 연습할 때처럼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웃음)

이와이 순지: 일단 슛이 떨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긴장하게 돼 리허설의 연기가 더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로서는 똑같은 연기를 했다고 느끼겠지만 감독이 보기에 뭔가가 다르고 아쉬울 수 있습니다. 가끔씩은 눈썹의 미묘한 움직임이나 묶은 머리카락이 살짝 흘러내린 모양처럼 아주 작은 무언가의 차이로 연기가 마음에 들거나 혹은 안 들 수 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정유미: 그리고 <언두>에서 여자주인공이 주변 사물을 끈으로 묶는 설정이나 <피크닉>에서 등장인물들이 담장 위를 걸으며 여행하는 설정 등 감독님 영화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특이한 발상들이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요.

이와이 순지: 남들이 상상 못하는 일을 좋아하고 항상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라는 게, 연애와 참 닮았어요

정유미: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작품은 있으세요.

이와이 순지: 12월9일 일본에서 개봉하는 이치가와 곤 감독님에 대한 9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관객과 가장 빨리 만나는 작품입니다. 감독님이 지금 90살이라서 상영시간을 90분에 맞췄는데 “90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잘 봤습니다”라는 평에 “90살까지 산 사람도 있는데 90분을 못 참습니까”라고 대답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웃음) 80% 정도가 자막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유미씨는 보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정유미: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요.

이와이 순지: 일본어 공부하는 데는 정말 좋은 영화일 겁니다. (웃음) 사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역시 처음 편집할 때 1시간 정도에 해당되는 앞부분의 이야기를 자막으로만 표현하는 형태로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자막을 이용하는 게 재미있고 집중도 더 잘되는 것 같아 비슷한 형식의 읽는 영화를 기획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유미: 혹시 일본에서는 회식은 안 하나요. 이번에 제작자로 영화에 참여하셨는데 한국의 경우 촬영 중에 제작사쪽에서 한턱 쏘는 일도 많습니다. (웃음)

이와이 순지: 영화 끝나고 쫑파티는 합니다. (웃음) 우에노 주리씨는 이번 영화로 처음 만나서 촬영 들어가기 전 중국요릿집에 함께 갔는데 저에게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질문은 구마자와 감독님에게 하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정유미: 좋아하는 한국영화는 있으세요.

이와이 순지: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엽기적인 그녀> 등입니다.

정유미: 유명한 영화들을 주로 보셨네요.

이와이 순지: 영화를 많이 안 보지만 일본영화보다 한국영화를 즐겨 보는 편입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남이 해놓은 걸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걸 좋아해 어찌 보면 어떤 장르도 잘 알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고 그래서인지 가끔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유미: 감독님은 직접 연출한 작품들을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보시는 편인가요.

이와이 순지: 특별한 기회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없습니다. 영화라는 게 연애와 닮아서 한번 끝나고 나면 그 여자친구를 잊으려 하듯이 그 작품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노력 역시 가끔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정유미: 감독님 영화를 감명 깊게 봤고 느낀 점도 많았는데 막상 질문을 하려니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웃음)

이와이 순지: 보는 사람이 어떤 감수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영화라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만든 사람보다 그 영화를 더 인상적으로 오래 기억하는 관객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굉장히 좋은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는 했는데 나중에 다시 보고 결국 이런 얘기였어 하며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유미씨 역시 저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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