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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이상주의자, 코카인쟁이 선생님! <하프 넬슨>

누구나 한번쯤은 세상에 도움이 되거나, 변화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 물정을 알게 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꿈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린다.

<하프 넬슨>의 주인공 댄(라이언 고슬링)은 뉴욕 브루클린의 한 중학교 역사 선생님이다. 그는 이 꿈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인물이다. “누가 요즘 같은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나”라는 의문을 던지지만, 환상에서 깨어난 뒤에도 역시 꿈을 버리지 못했고,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에 괴로워한다. 교사로서 역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며 ‘미래의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같다. 댄은 이 괴로움을 크랙 코카인을 피우며 연기와 함께 날려보낸다. ‘하프 넬슨’은 레슬링 용어로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 제압하는 기술을 뜻한다. 댄의 선생으로서 열정은 약점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충혈된 눈으로 간신히 학교에 출근하는 댄은 수업시간만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흑인과 스패니시계인 이 학교에서 그는 인권운동의 중요성을 교과서가 아닌 자료화면이나 토론, 발표를 통해 가르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실생활에서 예를 들어준다. 하지만 농구 코치를 마친 뒤 학교 화장실에서 크랙을 숨어 피우던 댄은 그만 13살짜리 제자 드레이(샤리카 엡스)에게 들킨다. 하지만 드레이는 댄의 약점을 이용하기보다는 그의 친구가 되어준다.

백인 젊은이 댄과 흑인 소녀 드레이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 같다. 댄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이상주의자다. 드레이는 가난한 결손가정의 자녀로, 아버지는 생활비조차 도와주지 않아 어머니가 두개의 직장을 다니는 탓에 늘 집은 비어 있다. 오빠는 동네 마약딜러 프랭크(앤서니 매키) 대신 감옥에 들어간 상태. 아버지상을 필요로 하는 드레이는 모자라나마 댄에게서 그 모습을 찾는다.

문제는 드레이의 오빠에게 신세를 진 프랭크 역시 재정상의 도움을 주면서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것. 극중 댄과 프랭크가, 서로가 드레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며, 도덕적인 모델이 되겠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있다. 댄과 프랭크의 대면, 할리우드영화라면 주먹이나 총탄이 오가거나 소리를 지르며 싸웠을 것이다. 또 댄은 마약을 끊고 드레이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좋은 교사로 복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에게 할리우드영화처럼 쉬운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의 오픈엔딩은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타당성있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게 해준다.

<하프 넬슨>은 3년 전 선댄스필름페스티벌 내 랩에서 계발된 단편 <그와너스, 브루클린>을 장편화한 것으로 실제 연인 사이인 라이언 플렉과 아나 보든이 함께 집필하고, 플렉이 연출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이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하프 넬슨>은 올해 초 선댄스필름페스티벌 당시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등을 기록했지만 페스티벌 랩에서 계발된 이 작품은 오히려 영화제에선 외면당했다. <하프 넬슨>은 페스티벌에서 찾는 독립영화 특유의 발랄함이나 재치가 넘치는 작품이 아니다. 지하철 옆자리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또 <하프 넬슨>에는 대사가 별로 필요없다. 주연을 맡은 고슬링과 엡스의 말없는 연기는 수십장의 시나리오를 무색하게 만든다. 댄이 드레이에게 마약하는 장면을 들키는 화장실 장면은 15분 동안 편집없이 지속된 롱테이크로 단지 몇줄의 대사만 있지만 이들의 표정과 몸짓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래서인지 할리우드의 잣대로 볼 때 터무니없이 적은 100만달러로 제작된 <하프 넬슨>은 연말 어워드 시즌이 가까워온 지금 많은 연기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 제작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또 ‘고담어워드’에서도 작품상과 브레익스루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을 수상했고, 스톡홀름필름페스티벌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68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친 이 작품이 과연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오를지는 미지수지만, 고슬링의 연기를 외면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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