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안전한 KTX를 위해
정희진(대학 강사) 2006-12-29

1990년 모 대학에 근무하던 여성 청소원의 급여는 29만8천원으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남성 경비원 임금(121만원)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여성들은 두 직종이 모두 20년 장기근속에 대동소이한 업무라고 생각하여,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지방법원은 두 업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하다며 임금 격차가 합리적이라고 판결했다. 달리 말하면, 청소보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경호 업무가 더 중요하고 우월하다는 것이다. 청소 노동은 경비 업무에 비해 쉼없이 일해야 하며 노동 강도가 훨씬 센데도 말이다.

전쟁영화나 조폭영화를 보면, 성(gender)을 기준으로 한 분업이 확연하다. 남자들은 평소에는 빈둥거리거나 체력단련(군사훈련)을 하다가 가끔 싸우는 데 반해, 여자들은 일상적으로 노동한다. 한마디로, 남자는 싸움에 목숨을 걸고 여자는 목숨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여성이 전투를 하고, 남성은 싸우는 여자들 밥해주고 청소하고 전사를 기다리는 영화/현실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성별 분업은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기보다는 남자는 (남자들끼리) 싸우고 여성은 (공동체를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닐까.

2003년 8월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남성 노동자의 46%,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저임금과 고용, 승진 차별의 이데올로기적 근거는 “남자가 여자를 먹여 살린다”는 것인데, 이는 통념이지 현실이 아니다. 여성 비정규직의 42.6%는 배우자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이후 25∼40살 여성 인구 5명 중 1명이 비혼(非婚)이고, 기혼일지라도 남편의 경제력만으로 생활하는 가구는 소수다. 이처럼 대다수 여성이 집/‘일터’ 양쪽에서 일하며 생계부양자로 살아간다. 하지만 여성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이 남성 정규직의 36.8%에 불과해도 “여자는 결혼하면 되니까”로 정당화된다. 결혼이 진정, 여성의 생계수단일 수 있다면 남자들 사이의 계급차이 없이 모든 남성이 혼자 벌어도 되는 ‘중산층’이든가 남편이 아내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한국철도공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300일 가까이 파업 투쟁 중인 KTX 여성 승무원들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억울한 사람 한둘 아니지만” 나는 새삼스럽게 분노했다. 이 사건은 신자유주의, 남성 경영진(철도공사 정규직의 여성 비율은 5%다)의 무능과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 부패, 성차별의 완벽한 합작품이었다. 이는 여성 노동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간접고용, 취업사기, 간접차별이라는 약자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복잡한 차별의 축소판이었다.

이들의 요구가 흔히 생각하듯 “정규직 보장”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도)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철도공사는 여승무원의 업무가 ‘단순 반복적’인, 안전과 무관한 접객 서비스 업무이기에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주화를 통해 간접 고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전 업무는 열차 팀장(남성), 객실 서비스 업무는 여승무원이 담당하도록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전 업무가 서비스 업무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남성이 맡고, 철도공사는 남성을 직접 고용하는 반면 서비스 업무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안전 업무와 서비스 업무는 구별되지 않는다. 18량의 객차로 구성된, 빠른 속도로 걷더라도 10여분 걸리는 총 길이 388m에 1천여명이 탑승하는 KTX에서 겨우 3명의 여승무원이 정차역마다 승강문과 발판의 안전을 책임지고 그 숫자의 승객을 돌보는 일을 ‘서비스’ 업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KTX 승객의 8% 정도는 대도시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이다. 안전 업무는 ‘힘센 근육’으로 서비스 업무는 ‘미모’와 ‘미소’로 한다는 통념은, 여성 노동의 내용을 모르는 일부 남성의 상상일 뿐이며 안전사고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안전과 서비스는 연속적인 노동이다. 모두 육체노동이자 정신,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전문직으로 남녀 구분이 있을 필요가 없다(이 글은 여성학자 조순경, 정형옥, 정경아 그리고 민세원 서울 승무지부 지부장을 비롯한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