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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합리적 진보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입사 희망 언론사를 적어내라고 했다. 매체 구분 없이 3순위까지 적힌 희망 언론사 유형을 5년 정도 모아보니 일정한 패턴이 있다. 다수의 학생은 일단 지상파 방송을 1지망으로 생각한다. 이 경우 2, 3지망으로 신문을 선택할 경우 조중동과 한겨레신문이 많다. 신문을 1지망으로 할 경우는 중앙일보가 많다. 그 다음은 한겨레신문이다. 조선, 동아는 2, 3지망에 많다. 종종 자신이 지망하는 언론사가 아니라 기피하는 언론사를 적어내는 경우도 있는데, ‘조선, 동아 제외’, ‘조선 제외’, ‘조선, 동아 및 한겨레 제외’, ‘한겨레 제외’ 등이 많다. 이들을 면접해보니 조선, 동아는 ‘‘정파성이 부담스러워서’ 기피하고, 한겨레는 주로 ‘월급이 낮아서’ 기피한단다. 중앙일보만 기피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중앙일보는 기자 지망생들에게 ‘합리적 진보 내지 중도’로 자리매김해 있다. 실제 논조는 그보다 보수적이다. 그런데 실제보다 더 진보적으로 비친 것은 왜일까? 여러 이유로 ‘조선, 동아 및 한겨레’를 제외하고 싶은 욕구가 투사됐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정은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내가 본 한 신문사의 독자조사 결과에 보면, 한국의 화이트칼라들이 생각하는 ‘합리적 진보’에 가장 가까운 신문은 중앙일보라는 응답이 많다. 여기서 ‘합리적 진보’는 뭘 지시하는가? 지시하는 구체적 내용이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 ‘합리적 진보’는 다만 현재의 보수도 진보도 아닌 그 무엇을 말할 뿐이다. 지향점없이 추진력만 있는 상태! 현재에 대한 부정은 있되 미래에 대한 긍정이 없는 상태!

이명박 대세론의 진원지도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한겨레21>이 최근 40대 500명을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40대는 왜 이명박 대세론에 빠졌나’에 따르면, 이명박의 지지율은 55%로 초강세다. 이명박의 지지자 중 62.6%는 ‘앞으로 계속 지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지지층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거다. 대선 결과야 내년 가봐야 아는 것이지만 현재 이명박이 누리는 인기는 ‘합리적 진보’라는 지향없는 추진력을 흡수한 결과가 아닐까? 이명박의 정치적 위치는 ‘합리적 진보’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현재의 40대가 이명박 지지층을 형성하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자는 말한다. 강고한 보수적 정서를 갖고 있는 한국사회가 진보 정권의 미진함을 계기로 용수철처럼 회귀하는 것이라고. 이 시각은 한국의 이념 지형을 진보와 보수로 이원화하고, 이명박=한나라당=보수로 등식화한다. 이 진보의 도그마는 이명박이 중도에서 시작해 보수로 지지기반을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층이 이명박으로 넘어온다는 것은 진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화되는 것이기보다는 진보든 보수든 강고한 정치 도그마에 대한 거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도그마에 대한 거부는 이념의 내용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이념이 현실에 적용되는 방법론에 대한 거부이다. 만약 그렇다면, ‘합리적 진보’로 표상되는 대중의 정치적 욕구를 수렴하려면 진보와 보수 그 어디쯤에 점을 찍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이념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 나를 위치시킬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보수를 뉴라이트로 개명하는 시간에 ‘도덕적 보수’를 생각하고, 진보의 도덕성을 홍보하는 시간에 ‘합리적 진보’의 방법론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보수든 진보든 정치 도그마를 확신하는 사람은 쉬이 ‘지금’과 ‘내가’의 함정에 빠진다. 지금 당장 변해야 하고,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세상에 대한 헌신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한 조급증 때문인 것 같다. 격렬한 정파성의 본질은 대의와 역사의 탈을 뒤집어쓴 집단적 욕망이다. 한국사회의 정파성은 보수일변도의 불구에서 균형을 향해 회복되는 과정의 산고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특권화된 정치 도그마는 공론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합리적 진보’와 ‘이명박 대세론’이라는 기표는 이제 도그마를 거부하는 또 다른 사회적 기운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