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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무엇으로 불러야하는가
2007-01-04

지루하고 불명확한 ’뉴웨이브’보다는 한국 영화의 경향과 특성을 반영한 용어 필요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프랑스 누벨바그나 독일 표현주의와 같은 종류의 영화운동인가? 그냥 재능있는 작가들 일군인가? 지금으로부터 40년 뒤 시네마테크들이 이 시기의 한국영화 회고전을 개최하게 될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 시기의 한국영화를 무엇이라 부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동의할 것이다. 1996년의 <은행나무 침대>나 1997년의 <접속>, 1999년의 <쉬리>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 시기 이후에 나온 영화들이 달라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하다. 미래에 영화사가들이 한국영화를 되돌아볼 때 단지 개별 감독들만 중요시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 영화업계가 오히려 전체로서 지난 10년간 뭔가 특별한 일을 성취했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이런 식으로 역사를 쓰겠다고 한다면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각 나라의 영화운동엔 다소 지루한 이름들이 붙는 경향이 있다. 가장 지루하고 게으른 선택은 ‘뉴웨이브’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랑스 뉴웨이브(혹은 누벨바그)를 뒤이어 일본 뉴웨이브, 체코 뉴웨이브, 홍콩 뉴웨이브, 브라질 뉴웨이브, 대만 뉴웨이브, 타이 뉴웨이브, 영국 뉴웨이브 등등의 이름이 붙었다. 지독하게 독창적이지 못한 점을 제쳐놓고라도, ‘뉴웨이브’라는 용어는 운동의 성격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성가시다. 어차피 영화운동이란 처음 나타날 때엔 ‘새롭다’ 할 수 있지 않은가. 1980년대엔 영화학자들은 느슨해진 검열로 인해 한국사회와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을 생산해낸 장선우, 박광수, 정지영 같은 감독들을 언급하여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라는 용어를 썼다. 필자는 한국어로 된 논문들은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영어로 집필된 것들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를 ‘코리안 뉴웨이브’라 부르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용어는 한국의 경우 이미 사용된 것이다.

각국 영화운동의 몇몇 이름은 더 설명적이다. 예를 들어 1940년대 후반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Italian Neorealism), 1920년대의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French Impressionist Cinema), 1920년대 후반의 소비에트 몽타주 운동(Soviet Montage Movement)이 있다. 어떤 영화운동이 새로운 세대의 영화감독들이 나타남으로써 생겨나게 될 경우, 중국 영화운동의 5세대와 6세대의 예를 따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인정하건대 최근의 영화운동들 대부분은 어떤 통합된 미학을 포함하지 않아 이름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 지금으로선 오늘날 한국영화를 뭐라 불러야 할지에 대한 혼란이 좀 있다. 2005년 에든버러 대학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엔 1992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뉴 코리안 시네마’라는 용어를 붙여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아마도 ‘뉴 저먼 시네마’의 발자취를 따라간 듯한). 그런데 워낙 모호한 용어라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절한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한국영화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었는지를 고려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들은 기술적인 완성도가 더 높아졌으며, 더 ‘번드르르’(glossy)해졌다. ‘Glossy Korean Cinema’(글로시 코리안 시네마)는 어떤가? 아니면 특정 시기를 언급하기를 원한다면 ‘Post-IMF Korean Cinema’(포스트-IFM 코리안 시네마)는 어떤가? 호주에서 온 한 교수 친구랑 필자는 다른 아이디어를 내봤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와 현재 한국영화 사이의 차이에 대해 들은 최고의 설명은 이전 세대는 자신들의 영화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묘사하는 데 강한 의무를 느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어떤 ‘부담’을 짊어진 듯하다. 젊은 세대 영화감독들도 때때로 영화에서 사회를 분석하지만 그건 개인적으로 흥미를 돋울 때만 그렇고- 어떤 땐 장르나 완전히 개인적인 관심사에 집중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는 ‘부담감’이 없다. 그렇다면 ‘Unburdened Korean Cinema’(부담을 벗어던진 한국영화)라는 용어는 어떤가?(좀더 학구적인 스타일의 내 친구는 ‘Post-Burden Korean Cinema’(포스트-버든 코리안 시네마)를 선호했다) 우리는 이런 용어들이 널리 채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 용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