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이창
[이창] 노 땡큐, 크리스마스 선물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12월25일, 하루 종일 외로워도 슬퍼도 울리지 않던 나의 휴대폰이 저녁 6시 마침내 울렸다. 드디어 나를 찾는 님이 계시군, 허겁지겁 수화기를 들었지만 짐짓 무심한 목소리로, “네”, “저… 고객님, 오늘 타이에서 물건 사셨어요?” 마음은 타이에 있지만, 몸은 서울에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친절한 카드회사 상담원은 “방금 방콕에서 2천달러가 청구됐다”고 전했다. 거금이 주는 긴장이 잠깐 스쳤지만, 짜증은 오래지 않았다. 물론 8할은 친절한 상담원 덕분에 거금을 통장에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에서 나왔다. 나머지 2할은, 뭐랄까 어디선가 벌어지는 일이 나에게도 생겼다는 처연한 안도랄까, 뭐 그랬다.

물론 나도 안다. 저개발 국가, 콕 집어 동남아에서 카드를 쓰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를 모르지 않았다. 서너해 전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이 등지에서 한국인이 사용한 카드 기록을 위조해 수천만원을 챙긴 일당이 인터폴의 협조로 잡혔다, 대충 그런 기사를 읽었다. 어쩌면 유익한 정보지만, 인종주의 편견을 담은 기사라는 생각도 했었다. 카드를 쓰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콕 집어 널리 홍보할 이유야 있나 싶었다. 이렇게 차별의 신화는 경험의 알리바이로 강화된다. 기사처럼 누군가는 그런 일을 당했고, 기사로 불쾌한 경험은 전파됐으며, 그리하여 경험의 증거는 차별의 논리를 강화한다. 겪었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방콕에서 용감하게 카드를 긁었던 것이다. 다행히 서너해 동안 아무 일도 없었고, 경험의 진리는 나를 안심케 하였다. 카드를 긁으며 기사가 생각나면 역시나 차별이야, 확신을 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받기 전까지는.

마침내 이렇게 시험에 들었다. 앞으로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카드를 쓰지 말아야 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비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사용해야 하느냐, 선택에 놓였다. 만약 카드를 쓰지 않는다면, 저개발 국가에서 카드를 쓰는 일은 위험하다는 인식에 굴복하는 일이 되지 않는가, 자문한다.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할 용기도, 글쎄다. 아니다. 내가 나를 아는데, 카드를 사용할 것이 틀림없다. 성수기엔 만실이 예사인 단골 숙소를 잡으려면 인터넷으로 결제할 수밖에 없고, 방콕의 옷들이 내뿜는 유혹의 ‘포스’를 견딜 자신도 없다. 내게 방콕 패션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싱가포르 친구에게도 확인한 바, 방콕의 옷들은 서울은 물론 싱가포르보다 예쁜데다 저렴하단다.

그리하여 서울의 또순이는 방콕의 된장남이 된다. 박봉의 노동자는 나름의 쇼핑 노하우가 있다. 서울에서는 참고 또 참고. 혹시나 유혹에 빠지면, 서울에서 한벌 참으면 방콕에서 두벌 산다는,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하기야 방콕에 내려도 딜레마에 빠진다. 서울의 옷값과 방콕의 옷값을 열심히 비교하면서, 비행기값을 빼려면 살수록 이익이야 생각하면서 다다익선(多多益善)하다가 끝내는 한계를 넘어서 다다익악(多多益惡)에 빠진다. 나는 여전히 쇼핑이 끝나면 죄책감이 밀려드는 타입의 인간인데,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뻔한 전략은 세일하는 물건을 사는 것이다. 최소한 30% 이상, 웬만하면 50% 이상, 나름의 원칙이다. 심지어 방콕에서도 세일하는 물건 위주로 사는데, 세일 생활자의 비애도 겪는다. 싼 맛에 빠져서 취향이 사라져버린다. 물건의 자태보다 세일의 폭에 눈이 멀어서 생긴 결과다. 누군가의 휼륭한 옷차림을 보면, ‘흥, 비싸게 샀겠지’ 질투해버린다.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또 다른 안간힘, 얼마를 썼느냐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 위해서 세일로 얼마를 절약했느냐(벌었느냐!)를 계산한다. 그래도 남은 죄책감을 위해 어쭙잖은 정치논리도 동원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슬로건은 “소비로 제3세계 인민을 돕는다!” 뒤집으면 저개발 국가의 저물가를 마음껏 착취하겠다는 말씀이다. 나의 소비생활에서 잊기 힘든 아픈 추억은, 어언 두해 전 인구 7천만명의 사회주의인민공화국 베트남의 최대 도시인 호치민 공항의 면세점이 그토록 초라해서 도무지 살 만한 물건이 없을 때였다. 심지어 면세점에서 피폐한 인민의 소비생활을 보았다고 ‘오버’하면서 가슴이 아팠다. 사실 아저씨에게 서울의 면세점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계단 같은 곳이다. 어쩌다 70% 세일의 대박을 만나서 지름신이 강림하면 용감하게 카드도 긁는다. 하지만 면세점에서도 세일 생활자의 딜레마는 계속된다. 한국의 면세점은 대부분 12월과 8월에 정기세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성수기의 비싼 비행기값이 아까운 아저씨는 12월과 8월에는 제돈 주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다행히 아저씨의 주기적인 외유철인 추석까지 세일의 떨이가 남아 있으면 유레카!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떨치고 새해에도 소망을 빌어본다. 여행자답게 여행자 물가에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현지인을 돈 뜯어가는 사기꾼으로 여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부디 2007년 크리스마스에는 반가운 선물만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덧붙여, 올해 해외 소비가 ‘급증’했다는 우려성 기사가 나왔던데, 부디 어디에서 쓴들 크게 괘념치 않는 나라를 만들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