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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결혼의 기술
장미 2007-01-26

도대체 왜 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스물일곱 나이가 너무 아깝다고 버럭 화를 내던 친구도 있었으나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는 느낌. 가끔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막막해 씩 웃어 보이곤 했다. 어느 순간 왜 하려는지조차 잊은 채 12월9일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린 듯도 하다. 한달여가 지난 지금은 “결혼하니까 어때?”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에만 내가 기혼녀라는 사실을 가물가물한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내곤 한다. 12월9일 이후 주위 사람들은 내가 화성인이라도 된 양 어색해하지만 현재의 내 생활은 스물일곱해 중에서 그나마 평온한 쪽에 속한달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혹은 가장 아름다운 신부.’ 이런 최상급의 단어들은 한번도 꿈꾼 적 없던 인생이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순결한 웨딩드레스나 꿈결처럼 종이 울리는 아름다운 결혼식 따윈 내 바람과 멀었다. 가족과 직장 동료들 앞에서 사랑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선서를 해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괴로웠을 뿐. 사실 내가 꿈꿔왔던 결혼식은 쏟아지는 별빛 아래 나란히 맞절하는 조금 더 고전적이고 초월적인 것에 가까웠다. 평생을 바쳐 함께 살겠다는 결심은 얼마나 큰 다짐을 필요로 하는지. 그러므로 그 약속을 위해 심호흡을 하기 전 어떤 특별한 의식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물론 나 역시 뜻 모를 흰색 옷을 입고 뜻 모를 식순에 따라 뜻 모를 죄책감과 뜻 모를 괴로움에 시달리며 결혼식을 마쳤다. 그게 피해가기 힘든 현실인 셈이다. 그러다가 배낭 여행 중에 만난 헝가리 커플, 이글과 브리즈의 사연이 잠깐 떠올랐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쭉 함께 살아온 이들은 인도의 어느 해안가 마을에서 식을 올렸다고 했다. 주례 대신 영험하다는 샤먼이 불려왔고 뷔페 접시 대신 꽃과 오일이 대령됐다. 샤먼의 지시 아래 이글이 구덩이 속에 파묻혀 정신을 잃는 동안 브리즈는 꽃송이가 동동 떠 있는 오일 속에서 목욕세례를 거쳤다. 한 무리의 하객이 이글을 둘러메고 브리즈가 대기 중인 티피에 입성했다. 그날 밤은 완벽한 혼돈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고, 이글과 브리즈가 입을 모았다.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들까지 제각기 살아온 날들을 토로하며 그 즐거움과 고통에 웃고 울고 고함을 질러댔다. 청춘의 약속을 지키기 힘들었던 기나긴 밤 속에서도 그들은 그날이 있었기에 결코 헤어질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쌍춘년을 놓칠세라 수많은 연인들이 서둘러 결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다투며 원망한 마음,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이찬, 이민영의 결별 소식을 듣고 난 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중얼거렸던 건 식장을 걸어나올 때까지 내 삶을 지배했던 악몽 같은 순간들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쌍춘년에 접수된 혼인신고서가 곧장 이혼신고서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이글과 브리즈의 것처럼 오롯이 두 사람만의 의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의 관심사나 취미를 공유하는 노력 역시 분명 도움이 될 터. 고백하건대 우리는 주말마다 프리미어리그와 K-1을 시청하며 그런 시간을 가진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응원을 펼치다보면 주중에 쌓였던 미움(?!)의 감정이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