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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 소설의 진수, <겐지 이야기>
2007-01-25

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한길사 펴냄

일본의 고전 <겐지 이야기>가 최초 완역되어 10권으로 출간되었다.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책을 세토우치 자쿠조가 현대 일본어로 옮기고, 김난주가 한국어로 번역한 이 책은 <겐지 이야기>와 관련된 옛 그림이 컬러로 삽입되어 있어, 읽는 즐거움만큼이나 보는 즐거움을 준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겐지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를 살려 구어체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고전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옛이야기를 듣는 듯 편하게 읽힌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기와 의복, 건물 구조, 탈것 등의 참고도판은 옛 삶의 방식의 이해를 돕는다.

<겐지 이야기>는 히카루 겐지라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연애소설이다.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는 헤이안 시대 사람으로 남편과 사별한 뒤 궁녀로 생활했는데, 화려한 귀족사회를 무대로 70여년간 펼쳐지는 남녀상열지사를 맛깔나게 그려냈다. 천황이 총애하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난 겐지는 외모와 예술적 재능 등 여러 면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남자로 성장한다. “이렇게 황자의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면 너무도 엄청나, 말하기가 싫어질 정도입니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겐지는 어려서부터 누구랄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겐지는 황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대신 일찌감치 신하의 자리를 갖게 되고, 자신을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똑 닮았다는 아버지의 후궁, 후지쓰보에게 연정을 품는다. 겐지는 아내를 맞아들이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후지쓰보를 비롯한 여인들과 분방한 관계를 맺는다. 후지쓰보를 닮은 어린 무라사키를 거두어 돌보면서 사랑에 빠져 그녀가 죽을 때까지 깊은 애정을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수양딸을 포함한 많은 여인들과 정신적, 대개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1권부터 7권 제41첩까지는 겐지의 이야기이고, 그 이후는 겐지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4대에 이르는 사람들이 400명도 넘게 등장하는데다가 그들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책에 첨부된 계보도와 연표는 필수적이다. 겐지가 아버지의 후궁과 관계를 가져 낳은 아들이 천황이 되고, 겐지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해 아이를 낳는 등 출생의 비밀이 수시로 복선으로 등장하며, 한 사람의 부인하고만 평생 해로하지 않았던 사회상 덕에 의붓 남매끼리 혹은 아버지의 여인에게 연정을 품는 일도 수시로 일어난다. 겐지가 정치적 알력 다툼 때문에 지방으로 쫓겨난 뒤에도 연애행각은 멈추지 않으니, 그야말로 엄청나 말하기가 싫어질 정도. 웬만한 아침드라마 못지않은 복잡한 연애사와 집안문제 등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고, 그런 상황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은 노래로 표현되며, 결국은 삶의 덧없음을 행간으로 드러낸다. 기나긴 이야기에 리듬감을 불어넣는 옛 노래들의 압축미는 이번 완역본 최고의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