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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목마르요”
2001-10-05

<다큐멘터리 한대수> 찍고 32년 만에 단독 콘서트 준비중인 한대수를 만나다 (2)

#4. 점프컷: 사랑, 그 목마름

2000년 8월, 김포공항. 전 부인 김명신과 함께 현 부인 옥사나를 마중나온 한대수. 옥사나와 한대수가 키스로 인사하고, 김명신과 옥사나가 서로를 친근하게 얼싸안는다.(<다큐멘터리 한대수> 중에서)

고생스런 뉴욕 생활을 함께 버텨 준 동반자는, 그의 첫 부인 김명신씨였다.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개방적인 성격과 전위적인 취향을 가진 김명신씨는,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던 한국에서 그의 개성을 이해한 드문 사람이었다. “원래 좀 차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어. 조용한 사람은 내가 이상하니까 별로 안 좋아하고, 독특하고 강한 사람들이 날 좋아하더라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거로 시작해 뉴욕의 고달픈 생활까지 20여년을 함께한 아내지만, 잠깐 다른 사람을 맘에 둔 그에게 받은 상처로 결국 사이가 벌어지고 만다. 이혼, 사랑을 잃은 상실감으로 <무한대>와 <기억상실>을 채우며 허우적대던 무렵, 지금의 부인이 된 옥사나를 만났다. “사막을 헤맬 때 만났죠. 장기적인 여자관계에 자신도 없고…. 소탈하고, 직선적이고, 몸매도 예쁜 여자였어.” 20대 러시아 아가씨와 40대의 한대수, 나이 차이는 두 연인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륙 출신이라 그런지 통이 큰” 옥사나는 재혼한 김명신씨가 힘들어 할 때 “오래 산 당신이 도와줘야 한다”며, 한동안 셋이 함께 사는 것에도 동의했다. <다큐멘터리 한대수>에서도 드러나는 세 사람의 기묘한 친밀감은, 보편적인 잣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이들의 인연이 강퍅한 세상에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울타리임을 새삼 일깨운다.

#5.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No religion can ever heal you/ no thoughts nor pain/ can ever release you/ (중략) life’s a mirage” (어떤 종교도 당신을 치유할 수 없어/ 어떤 생각이나 고통도 당신을 구원할 순 없지/ (중략) 삶은 허상이야) <No Religion>중에서)

서울에 머무는 동안 뉴욕을 강타한 최근의 테러는, 그에게도 “완전히 초불양호”한 사건이었다(그는 세상사를 양호한 것과 양호하지 못한 것으로 나눈다). 어릴 때부터 오가며 자란 미국, 7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삶의 터전인 뉴욕은 “제2의 고향”이니까. 더구나 이번 사태에서 3번째로 무너진 건물이,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한 옥사나씨의 증권회사 자리였다. 생각해도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마누라 지금 매일같이 전화하는데, 파라노이아 걸렸어.” 기분이 좋진 않지만, 보복전쟁을 운운하는 상황도 맘이 편친 않다. “Hunger creates anger라고. 배고프면 화나잖아. 문제는 이스라엘은 알부자고, 화폐도 넘치는데 팔레스타인은 먹을 것도 없다는 거지. 성경에 나왔다고 땅도 빼앗았는데, 사실 말이 안 되잖아. 부시는 우파니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데, 자기들은 배고프고 하니까 테러하는 거지.” 비단 이번 일이 아니라도, 에이즈를 비롯한 온갖 질병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 급변하는 디지털시대에 그는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낭만적인 여운이 묻어나는 자유의 이상, 사랑의 상실과 기억을 읊조리던 초기 음반들과 달리 99년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나 지난해 손무현이 프로듀스한 8집 &lr;Eternal Sorrow>에서 현실비판이 더 묵직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성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반역의 시대를, 외면할 수도 묵인할 수도 없어 음악에 담고 있는 것이다.

#6. 영원한 고독

“나도 이제 노후의 대문을 두드리고 있단 말야. 10년 살지, 20년 살지, 즐거운 웃음으로 미래를 보는 것 아니라구요. 이젠 그냥 영원한 고독, 영원한 무한대로 가는 것 아니냐. 그래서 8집 제목도 영원한 고독이야.”(<다큐멘터리 한대수> 중에서)

울상을 한 8집 <Eternal Sorrow>의 표지를 두고, 그는 “울고 싶어서”라고 말한 바 있다. “50이 넘었는데, 뭘 했나. 인생에 대한 문제,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낸 이 체계가 극소수만이 혜택을 누리는 체계라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고생스러워 눈물이 나는 거죠.” 스스로 가수라기보다 “생각을 음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그가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53년. “영감이나 작곡 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마비현상 때문에 종종 오른팔을 쓰지 못할 때도 생겨났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작동이 안 되는 게 있죠. 어느 정도의 고통이 있고. 그러면서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지.” 가끔 프리랜서로 사진 일을 하는 걸 빼곤 음악만 남은 지금, 과연 언제까지 작곡하고 노래할 수 있을지를 슬쩍 걱정하곤 하면서도 그는 다큐멘터리에 두곡의 신곡을 실었다. 음반으로 낼 여건이 안 되자 그냥 집에서 지인들과 연주하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There’s Nothing That Can Last As Forever”(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미발표 신곡 <As Forever>의 가사처럼 변치 않는 것은 없겠지만, 기타를 메면 노래가 흘러나오고, 금지될 것을 뻔히 보면서도 <Marijuana>를 노래하는 그에게 음악은 오래도록 변치 않을 꿈이 분명하다.황혜림 blauex@hani.co.kr▶ <다큐멘터리 한대수> 찍고 32년 만에 단독 콘서트 준비중인 한대수를 만나다 (1)

▶ <다큐멘터리 한대수> 찍고 32년 만에 단독 콘서트 준비중인 한대수를 만나다 (2)

▶ <다큐멘터리 한대수>를 만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