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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는 소재일 뿐, 부드러운 화두를 던진 것”
2001-10-09

시사실/킬러들의수다/p

장진 감독 인터뷰

인터넷영화 <극단적 하루>에 이어 킬러 이야기다. 왜 킬러 이야기에 집착하게 됐나.

내가 해야 되는 이야기는 풍자이고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가장 멋있는 블랙코미디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현실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만약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너무 선동적일 테고 직접화법으로 얘기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킬러는 소재일 뿐이다. 우리 현실에서 아무도 총 들고 설치고 폭탄 터트리는 킬러가 있다고 여기지 않을 거다. 그런 비현실적 상황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심정일 때가 있었지, 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싶었다. 킬러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킬러들의 수다>라는 제목과 달리 전작에 비해 말수가 적어진 느낌이다. 입담이 줄고 타이밍으로 승부하는 유머가 많다.

대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을 하다보면 자꾸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뭔가 웃긴 한방을 터트려야 된다는 강박이 생기는데 너무 그런 데 매달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더 웃긴다고 영화의 격이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톨게이트장면, 조 검사와의 추격전, 오페라장면은 아예 대사없이 찍었다.

액션이나 서스펜스 장면들이 장진식 유머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나치게 정직한 장르영화적 표현처럼 보인다.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햄릿>은 사실 <킬러들의 수다>의 축소판 같은 내용이다. 일종의 패러디인데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차라리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춘향전>처럼 좀더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을 패러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개별 상황은 재미있고 웃긴데 하나로 모아지는 부분이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략과 압축에서 배울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 찍은 걸 붙여보니까 2시간45분쯤 돼서 많이 잘랐다. 그러다보니 큰 줄기가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장진사단의 배우들이 아니라 신현준, 원빈 같은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만족스럽다. 아마 신현준씨의 연기 폭이 이 정도로 폭넓다는 데 놀랄 사람들도 있을 거다. 연출자들이 신현준씨에게 지나치게 통속적으로 제한된 배역만 맡겨왔던 것 같다. 원빈도 마찬가지로 잘해줬다. 두 배우 모두 촬영 전 한달간 리허설을 하면서 열심히 해줬다.

관객 입장에선 결론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빈의 마지막 내레이션에 들어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하지 않으면 우린 굶어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는. 이 영화는 킬러들의 1주일을 관망하는 이야기고 “나쁜 놈을 없애야 돼” 같은 쎈 화두가 아니라 “증오가 없으면 킬러는 굶어죽을 것”이라는 아주 부드러운 화두를 던지는 영화다.▶ <개봉작> 킬러들의 수다

▶ "킬러는 소재일 뿐, 부드러운 화두를 던진 것" - 정진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