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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낳아놓긴 했지만
강병진 2007-03-02

29년 전 이맘때의 어느 날, 중구 신당동의 안정순씨(당시 나이 32살)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뱃속의 아이가 산도 밖에 머리를 들이민 지 한참이 지나도록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격렬한 아픔에 터져나온 비명은 쇳소리를 냈고, 악물고 있던 이빨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후회하고 있었다. 제왕절개를 권유한 의사의 말을 들었어야 했던 걸까. 뭐하자고 무리한 자연분만을 감행했던 걸까.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 좁은 뱃속을 운동장 삼아 놀더니 결국 180도 회전하여 머리와 다리의 위치를 바꾸었던 것이다. 그대로 아이를 낳을 경우에는 자칫 아이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그녀를 담당했던 의사는 당연히 제왕절개를 권유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다. 배에 수술자국을 남기기 싫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든 낳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역산인 상태에서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일. 그날부터 안정순씨의 고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매일 아침 집에 있는 모든 이불을 접어 5단으로 쌓아놓고 출근했다. 아내가 걱정됐지만, 말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편을 배웅한 그녀는 이불 벽에 몸을 지탱한 채 물구나무를 섰다. 그러면 역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녀석이 다시 원상태로 위치를 바꿀 거라 생각한 것이다. 얼굴에 솟아난 땀은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만삭의 몸을 지탱하던 팔은 후들거렸다. 잠시 10분간 휴식. 그리고 다시 물구나무.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다행히 아이는 또 다른 중력의 힘을 느끼고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보람찬 승리였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돌려놓은 아이가 막상 낳으려고 하자 다시 말썽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출산 직후 측정한 아이의 몸무게는 4.0kg.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우량아인 아이에게 당시 의사는 “생후 6개월 된 아기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큰 아이가 나오질 않고 있으니, 산모의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 결국 의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의 머리를 집게로 집어 잡아 빼냈고(덕분에 생후 몇년간 아이의 머리에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안정순씨는 지난 10개월 동안 삭인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쉰 숨을 들이마실 새도 없이 다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도대체 숨을 쉬려 하지 않았다. 코에 숨을 불어넣고, 엉덩이를 때려도 아이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의사는 계속해서 아이를 때렸고, 급기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기를 반복했다. 안정순씨는 방금 전의 고통도 잊은 채 아이의 울음소리를 기다렸다. 엉덩이를 맞고 있는 아이가, 차가운 물속에 잠긴 아이가 가여웠다. 저대로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내가 뭔 잘못을 했는지 생각했다. 그러기를 약 10분. 10년 같은 10분이 지나자, 드디어 아이가 첫 울음을 터트렸다. 첫딸을 낳은 지 7년 만에 낳은 아들, 대전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생긴 첫 번째 경사, 그리고 그녀의 서른두 번째 생일이 지난 지 일주일 만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나 올해 환갑을 맞은 안정순 여사는 아직도 그때를 가장 끔찍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스물아홉이 된 그 녀석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차마 설명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