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핫이슈] 그 많은 예매율 1위는 어디서 왔을까
김민경 2007-02-27

예매표 사재기 통한 예매순위 조작의 허와 실

지난 2월21일, 다음날 개봉하는 한 일본영화의 보도자료가 기자들의 메일함에 날아들었다. “<XXXX> 이주 개봉작 예매 1위!” 20일 공개된 온라인 영화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의 순위에서 21.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메일을 받은 직후 확인해본 이 영화의 예매율은 17.1%, 다음날인 22일에는 15.8%로 변화했다. 순위권의 다른 영화들이 거의 변동이 없는데 비하면 눈에 띄는 낙폭이었다. 게다가 같은 날 맥스 무비에서 이 영화의 점유율은 5.86%였고, 티켓링크에서는 4.1%였으며, 심지어 예스24의 예매율은 0.69%로 인터파크의 수치와는 무려 31배까지 차이났다. 이번에는 다른 한국영화의 경우. 22일 오후 예스24에서 10.52%로 5위를 차지한 이 영화는 맥스무비에서 4.67%, 티켓링크에서 3.2%, 그리고 인터파크에서 2.8%라는 격차를 보였다. 예매 사이트에 따라 고객의 특성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의 차이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매율 조작, 공공연한 마케팅 기법

사실, 영화 마케팅 실무자들 스스로 ‘장난질’이라 부르는 온라인 예매순위와 예매율의 조작은 공공연한 ‘마케팅 기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이 같은 예매순위 조작은 흥행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을 저해할 뿐 아니라 이 수치를 믿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행위다. 결국, 믿을 수 없는 수치를 남발함으로써 관객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사들은 왜 예매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하며, 어떤 과정을 통하는 것일까.

현업 영화 마케터들은 예매순위가 중요해진 것이 예매 사이트들의 규모가 확장된 3, 4년 전부터라고 설명한다. 전체적인 온라인 예매 규모가 커지면서 사전 예매순위가 흥행순위로, 사전 예매율이 흥행 스코어로 연결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홍보사 관계자에 의하면 그때부터 마케터들에게 온라인 예매순위는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됐다. “당시만 해도 맥스무비 같은 사이트는 실제 흥행의 바로미터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거기서 높은 순위를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집중했다. 확실히 첫주 흥행은 무조건 예매율의 영향을 받았으니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개봉 주에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그 성적을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삼아 장기상영을 꾀하는 현재의 ‘와이드 릴리즈’ 배급방식 아래서 첫주 흥행에 큰 영향을 끼치는 예매율 관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 같은 예매순위는 일간지, 방송, 인터넷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영화의 흥행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인용되면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세계일보> <매일경제>등 중앙일간지와 SBS 영화정보 프로그램 <TV 박스오피스>가 인터넷 예매순위를 내보내고 있다.

예매표 5만장으로 사들인 ‘1위’ 타이틀의 효과

이 같은 예매율 관리 또는 조작은 어떻게 이뤄질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개봉을 앞둔 영화가 걸려 있는 제작사 또는 배급사가 예매권을 다량 구매하는 것이다. 구매량은 작품 규모와 개봉 시기, 그리고 경쟁작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마케터들은 2천~3천장부터 2만~3만장까지 된다고 언급한다. 지난해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한 영화의 홍보 관계자는 협찬 업체들과 함께 5만여장의 예매권을 시중에 풀면서 대형 프로모션을 펼쳤다. 때에 따라선 적은 물량으로도 예매순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2005년 규모가 적은 영화의 홍보를 맡았던 관계자는 단 1천장의 예매권을 구매해서 이틀 동안 예매율 1위를 유지한 사례를 경험했다. “당시는 사전 인지도가 낮은 영화들이 올망졸망 몰려 있던 시기였다. 물론 주말이 가까워오면서 결국 순위가 뒤집어지긴 했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계기였다.” 예매권 구매는 이벤트와 광고를 병행하면서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고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발휘한다.

한편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온라인 예매업체의 예매권을 사들이면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순위를 “들었다 놨다” 할 수도 있다. 한 영화사의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이러한 사이트들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오히려 영화사쪽에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일정한 양의 예매권을 사면 팝업 광고나 목 좋은 자리의 배너 광고를 얹어주는 패키지 상품이 거래된다. 그래서 어떤 사이트에 특정 영화의 광고가 유독 많이 노출되고 예매순위가 타 사이트보다 월등히 높다면 마케터들은 일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우리는 그럴 때 ‘음, 좀 샀구나!’ 한다. 무조건 의심하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말하자면 ‘정황 증거’가 보이는 거다.”

예매율 관리에도 난점은 있다. 대개의 사이트들이 한 사람이 예매할 수 있는 티켓 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용되는 기법은 순위가 발표되는 직후 시간대를 타깃으로 삼는 것이다. 이럴 경우 홍보사 직원들이 몇개의 아이디를 동원하더라도 예매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전체적인 예매량이 적은 시간대에는 적은 예매만으로도 큰 상승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법은 일반인들의 본격적인 예매가 진행되는 주 중반 이후에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수고를 굳이 감내하는 이유는 “그렇게라도 잠시 1위를 기록한 다음 이를 내용 삼은 광고와 보도메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래도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이번주 개봉 영화 중 1위!” 또는 “이번주 개봉하는 한국(외국)영화 중 1위” 등의 고육지책성 카피라도 뽑아내야 한다. 품이 드는 ‘노가다’의 대가치고는 결과가 미미하지만 그조차도 아쉬울 때는 이런 방법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티켓값에서 1500원~3천원을 깎아주는 할인권 배포는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트렌드다. 예매권의 경우 일반 관객에 배부된 뒤 언제 실제 예매에 사용될지 확신할 수 없는 반면, 할인권은 선착순 등의 조건이 걸리면 이른 시간 안에 실제 예매로 이어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 방법 역시 이벤트와 함께 광고 노출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객관적 자료 없는 겁없는 베팅

문제는 이 같은 마케팅으로 영화사가 정말 이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개봉 첫주에 3500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권을 내건 한 영화의 이벤트는 ‘수익을 거의 포기한’ 조치에 가까웠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첫주를 지나면서 급격히 관객을 잃었다. 마케팅 관계자들에 따르면 다소 극단적인 경우였던 이 영화를 제외하더라도 2천원에서 3천원 사이의 할인권을 내세워 마케팅을 펼친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이들 영화 중 흥행에서 성공한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결국 인위적인 예매율 조작을 지렛대로 추켜올린 영화는 첫주 흥행을 그럭저럭 이뤄낸다 해도 그 추세를 꾸준히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회사의 명운을 걸고 흥행전선에 임하는 영화사들에 ‘영화의 흥행은 영화 그 자체가 가진 힘이 결정한다’는 마케팅의 궁극 원론을 강의하는 것은 한가로운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한 홍보 담당자는 “사전 인지도나 선호도가 나오지 않고, 별달리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면 나 스스로도 압박감에 못 이겨 예매권이든 할인권이든 밀어붙였을 것”이라며 동병상련의 소회를 피력한다.

현대전의 교본이 모두 초반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만약 현대 상업영화의 전술·전략서가 있다면 ‘첫 번째 전투가 전체 전쟁을 결정한다’라고 적어놓았을 것이다. 흥행에서 성공하려면 첫주에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고, 첫주 성적을 높이려면 스크린을 많이 확보해야 하며, 스크린을 많이 확보하려면 거대한 사전 홍보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할리우드에서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관통된다. 마케팅 예산이라는 실탄이 80%가 개봉 전에 분수처럼 발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판 영화 전술서는 ‘개봉주 예매율을 어떻게든 높여야 한다’는 전술지침을 추가로 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흥행을 확실히 성공시킨다는 보장만 된다면 예매권을 10만장 구매하건 1천원짜리 할인권을 판매하건, 영화사의 마케팅 활동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예매율을 조작하는 방법은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도박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예매 사이트들은 투입한 예산이 어떤 결과물을 낳는지를 합리적으로 입증하는 데이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마케팅 기법은 마케팅 비용을 부풀려 손실을 더 키우는 쪽으로 결말나기 십상이다. “객관적 자료 하나 없는 이런 겁없는 베팅이 어쩌다가 지금처럼 관례가 됐는지 모르겠다”는 한 홍보 관계자의 개탄처럼, 지금의 한국 영화계는 흥행이라는 절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매율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신세인 것이다.

예매 사이트의 공정성이 관건이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 김형호 실장

-영화 마케팅에서 예매순위가 왜 이렇게 중요해졌다고 보나. =예매율이란 박스오피스의 사전 지표 격이기 때문이다. 맥스무비는 절대 예매량이 가장 많고, 표가 한 극장에 몰리지 않고 골고루 분포해 있어 대표성이 가장 크다.

-최근의 3500원 할인권은 마케팅에 너무 부담을 주는 액수 아닌가. =절대수량이 크지는 않았다. 2천, 3천장 수준일거다. 그 정도 액수면 광고 하나 값이랑 비슷하다. 그 돈으로 맥스무비에서 홍보를 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액수는 아닐 것이다.

-예매 사이트의 공신력을 의심하게 하는 사례들도 심심찮게 있다. =해당 사이트가 얼마나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가, 그게 관건이라고 본다.

-맥스무비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아무리 표를 많이 산다 해도 1개 아이디당 4매 이상을 반영하지 않는다. 예매 관객 중에서도 실제 관람객만 반영한다. 수요일을 발표날로 정한 것도 그때가 극장 시간표가 가장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광고 패키지 거래도 하지 않는다.

-맥스무비도 예매권 거래를 하고 영업도 하고 있다. 사이트의 공신력에 영향이 가지 않겠나. =예매권 판매는 어디나 다 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부당하게 순위에 반영되지 않도록 한다. 만약 홍보사 직원 4명이 1만장을 사서 순위를 조작하려 한다면, 그들이 아이디를 각각 2500개씩 만들지 않는 한 그 만장을 다 순위에 반영시킬 수 없을 것이다. 우리야 돈많은 회사가 우리 예매권을 되도록 많이 사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많이 사는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