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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하게 가르쳤습니다
2001-10-10

김민우 <와이키키 브라더스> 음악 코디네이터

‘정수기 코디네이터’만큼이나 음악 코디네이터는 우리에게 낯선 용어다. 음악감독이 엄연히 있을 바에야 보조 혹은 어시스턴트라 불러도 될 호칭을 굳이 ‘coordinator’(제작진행 책임자)라 부르는 이유를, 김민우(36)는 “말 그대로 보조에게는 없는 무거운 책임 탓”이라고 설명한다. <와이키키…>의 모든 삽입곡이 기성곡인 까닭에 음악감독은 제작 기간 내내 저작권위원회에 붙어 살다시피 했고, 따라서 감독을 대신해 현장을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고. 그런데 그 책임 한계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기타 연주법도 모르던 배우들을 한달 새 ‘적어도 겉모습은 완벽한’ 밤무대 밴드로 만드는 일부터, 촬영 당일 카메라 옆에 붙어 서서 자세 봐주랴 재생된 녹음과 연기가 안 맞을까 손가락 세어주랴 속 태우고, 그뿐인가 배우의 ‘헛스윙’을 가려줄 세션맨으로 활약키도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활약이 유독 돋보이는 건 선곡에서다. 시나리오 상에는 단지 “조금 끈끈한 블루스”, “신나는 최신 댄스음악” 정도로 감독이 표시해놓은 곡을 실제 기성곡들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송골매의 <세상만사>, 옥슨80의 <불놀이야>,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등 귀에 익숙한 70∼80년대 명곡부터 산타나의 <유로파>, 김수희의 <남행열차>, 코요테의 <순정>까지 시대와 장르를 총망라해 매끈하게 깔았다.

어쩌면 김민우의 소개는 조금 늦은 편인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7개월 전에 그의 이름이 ‘스탭25시’ 코너에 오를 수도 있었다. <친구>의 음악감독이기도 했던 최순식을 도와 레인보우 공연을 현장 지도한 사람이 그였으니까. 7인조 밴드 중 진숙을 포함한 3명의 연기자들에게 키보드를 가르칠 때도 그랬지만, 등장인물의 연주장면을 뽑기 위해 뒤에서 배우를 가르치는 작업은 고되다. 특히 세심한 손동작이 요구되는 기타의 경우 웬만히 가르쳐선 폼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많은데, <와이키키…>에서 기타를 맡은 이얼이 유난히 배우는 속도가 느려 그의 애를 태웠다. 촬영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땐 무작정 함께 밤을 새우며 억지로 코드법을 주입시키기도 했다. 영화를 다 찍어갈 무렵엔 배우들이 진짜 밴드 부럽지 않은 실력을 갖추게 됐지만, 지금도 이얼은 기타만 보면 질색을 한다.

음악인생이 언제쯤 시작됐을까 더듬다보면 중학교 시절 큰형이 던져준 세고비아 통기타 하나가 시작점에 놓여 있다.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대중가요로 시작된 관심은 팝음악을 거쳐 헤비메탈에 이르렀고, 레드 제플린과 지미 페이지를 최고의 우상으로 모시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러고보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성우 패거리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이었단다. 돈 때문에 기타를 드는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며 괜히 뭉클해지더라는 그, 혼자 다짐했단다. 돈 때문에 기타를 놓지는 않을 거라고.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프로필

1966년생

경희대 86학번

<친구>(2001) 음악 스탭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음악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