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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좁다. 할리우드로 가자
2001-10-11

<러시아워2>로 보는 홍콩 범죄조직 삼합회

최근 우리 영화들이 조직폭력배들을 많이 등장시키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영웅본색>에서 시작해 <첩혈쌍웅>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이른바 ‘홍콩 누아르’영화의 전성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홍콩 누아르영화들이 거의 완벽히 몰락한 요즘까지, 성룡만은 꾸준히 홍콩의 범죄조직을 자신의 영화에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미국의 자본으로 미국인 감독이 만든 <러시아워> 시리즈에서도, 성룡이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홍콩의 범죄조직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할리우드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탈리아계 미국 범죄조직인 마피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관객 대부분은 홍콩의 범죄조직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마피아를 다룬 영화들을 볼 때 영화의 문맥 속에 녹아 있는 마피아라는 조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과는 달리, 홍콩의 범죄집단은 그저 단순한 영화적 장치로 치부해버리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의 홍콩 범죄조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특히 홍콩 범죄조직의 핵심이면서 마피아, 야쿠자와 함께 세계 3대 범죄조직으로 불리는 삼합회(三合會)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홍콩의 범죄조직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영어로는 트라이어드(Triad)라고 불리는 이 삼합회는 약 60여개의 소규모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 복잡한 조직. 그 60여개의 소조직 중 중국 본토의 광둥성 출신들이 모여 결성되어 약 3만5천명의 조직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의안(新義安), 대만 국민당과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약 5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14K, 홍콩 토착민들로 이루어진 조직원 3만의 화안락(和安樂) 등이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것은 정확한 근원을 알 수 없는 우리나라의 조직폭력단들과는 달리, 홍콩의 삼합회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나라시대,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외치며 청나라의 전복과 명나라의 복원을 도모하던 명나라 충신들의 후예들이 만든 것이 삼합회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국부(國父)로 잘 알려진 쑨원이 삼합회의 수령인 정사량(鄭士良)을 알게 되면서 반청운동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삼합회의 역사적 의의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목숨을 내걸고 활동하던 이 비밀결사는 근세에 들어와 일부 하위조직들이 범죄에 참여하게 되면서, 중국계 범죄조직의 대명사로 변모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삼합회는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 마카오, 대만 등지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단어로 쓰이다가, 중국의 공산화 이후에 홍콩과 마카오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범죄조직만을 가리키는 단어로 굳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 삼합회가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규모로만 따지자면 세계 최대의 범죄조직이라고도 불린다는 것이다. 현재는 홍콩과 마카오는 물론 중국 본토, 대만, 일본, 미국, 동남아시아, 영국, 네덜란드 등 전세계 주요 국가에서 뿌리를 내리고 대대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년 전 중국의 장쩌민 국가 주석이 ‘흑사회(黑社會)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삼합회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인 것이나, 2000년 6월에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페리를 타고 건너 온 토마토 운반트럭에서 58명의 중국인 밀입국자들이 숨진 채로 발견된 사건의 배후로 삼합회가 지목된 것 등이 삼합회의 국제화를 잘 보여주는 예. 국내에서도 올해 들어 마약밀수나 여권위조 등의 국제범죄에 삼합회의 연루가 계속 드러나자 경찰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그런 삼합회가 홍콩영화계를 장악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 홍콩영화계가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게 되는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계로 진출한 삼합회는, 영화사들을 자신들의 조직원에 의해 운영시키면서 스타들에게 다작의 출연을 비롯한 부당한 요구를 하고 이를 거부하면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연걸의 매니저와 무술감독이었던 왕용위가 삼합회에 살해를 당한 사건은 그중 가장 유명한 예. 아직까지 미스터리인 이소룡의 죽음에도 삼합회가 연루되어 있다는 설이 아주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삼합회의 불법적인 행위에 지쳐 있던 홍콩의 영화인들이 1992년 대대적인 데모를 벌여 삼합회와 영화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되기도 했었다.

물론 <러시아워2>를 보는 데 굳이 홍콩의 범죄조직 삼합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트 오브 워> <리쎌웨폰4> <커럽터> 등 최근에 만들어진 많은 할리우드영화들이 삼합회를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악당의 존재가 필요하게 된 할리우드가 마피아와 야쿠자에 이어 삼합회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대부>나 <소프라노스>를 위해 마피아를 공부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삼합회라는 조직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 보기에 도움이 되는 날이 조만간 오지 않을까 싶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러시아워2> 공식 홈페이지 http://www.rushhour2.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