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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배우 인터뷰 4. 최도영 역 이선균
정재혁 사진 오계옥 2007-03-20

마음은 동적인데 겉으론 정적이고 너무 힘들더라

-얼마 전 네이버 뉴스 대문에 “이선균, ‘최도영 행보, 당위성 없어 답답’”이란 기사가 떴더라. =그게 헤드라인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마치 내가 드라마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나왔다. 기분이 나쁘더라. 인터뷰를 그렇게 한 게 아닌데. 기자가 한 질문이 “장준혁은 악역이지만 현실적이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고, 최도영은 비현실적으로 비쳐진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그래서 나도 도영이 답답하다, 친구를 배신하면서까지 소신을 갖고 대립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 장준혁은 인물을 설명해주는 현실적인 디테일이 많이 있지 않나. 반면 우리 착한 인물들(웃음)은 그런 장치들이 없다. 비중상의 문제가 아니다. 만날 소나무 음악 나오고(웃음), 분위기도 달라지고,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장면도 많고. 하지만 그건 대본에 있는 토대에, 배우가 살을 붙여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 점에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최도영을 어떤 인물이라고 설정하고 연기했나. =원작을 읽어봐도 최도영은 정말 선비 같은 사람이다. 장준혁이 플러스 지향적이라면, 최도영은 마이너스 지향적이랄까. 처음엔 그냥 묻어가기에 쉬운 인물이라고도 생각했다. (웃음) 하지만 막상 연기해보니 너무 힘들더라. 마음은 동적인데, 겉으론 정적이고. 속에는 갈등, 고민, 감정의 파고가 심한데, 드러나는 건 변하지 않는 신념에 대한 믿음이니. 소신이 있고 멋진 사람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모 인터뷰에서는 ‘최도영이란 인물을 표현하기에 자신의 연기가 1차원적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나 마찬가지지만, 초반에 하는 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다. 1, 2회를 찍을 당시에는 현장 분위기도 낯설었고, 준비도 많이 못했다. 또 드라마 초반에는 장준혁과 최도영이 대립하는 부분이 많이 있지 않나. 그 장면들은 친구이자 동료로서의 느낌을 깔고 연기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딴죽걸기가 되어버리니까. 어떤 힘으로 대립을 줘야 하는지 그게 가장 고민이었고, 처음엔 좌절도 많이 했다.

-본인은 최도영과 장준혁 중 어디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야망없고 욕심없는 장준혁? 아니면 좀더 재미있는 최도영? 둘은 너무 극과 극이다.

-촬영 전에 수술실을 참관하며 준비했다고 들었다. =최도영은 내과라 수술보다 진료하고, 초음파하는 게 많이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술실보다 연구실을 많이 다녔어야 하는 게 아닐까, 준비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 후회한다. (웃음) 연구실 분위기를 좀더 많이 익혔다면,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을 테니까.

-장준혁이란 인물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없다. 못할 것 같다. 지금 명민이 형이 너무 잘하고 있고. 역할을 보면 안다. 욕심도 나고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역할, 욕심은 나지만 나에겐 무리일 것 같은 역할, 나한테 맞지 않을 것 같은 역할. 내가 날 잘 아니까, 역할에 대한 판단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욕심은 있지만 무리일 것 같다고 생각할 때는, 어떻게 판단하나. =안 한다. 하면 안 된다. 내 욕심 때문에 작품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면 안 되니까.

-김창완 선생님, 변희봉 선생님 등 선배 연기자들과의 현장은 어떤가. =너무 편하게 대해주신다. 김창완 선생님은 산울림 때부터 팬이었다. 내가 4남매 중 막내라 어릴 때부터 형, 누나가 듣던 음악을 듣고 자랐다. 김현식, 들국화, 산울림. 어린 시절 정서적인 부분을 채워줬던 분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또 변희봉 선생님은 <살인의 추억> 이후에 다시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좋아했던 배우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현장에선 많이 혼나기도 하고. “너가 깊이있게 잘해야지, 최도영의 행동이 이해되지. 말이 되냐, 그게?”라면서. 명민이 형도 좋고, 정말 드림팀에 끼어서 하는 것 같다.

-<하얀거탑>이 지금까지의 연기생활에서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나에게 고마운 작품이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이걸 잘하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잘못하면 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험 준비하는 것처럼, 공부할 게 있는데 하기 싫은 기분. <하얀거탑>을 준비하면서 추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연기가 아닌 조명이나 연극 기획을 하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연극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학교를 다녔다. 왜 신입생 때 동아리나 학회 같은 데서 신입생 잡으려고 호객행위를 하지 않나. 그런데 연극부는 외롭게 구석에 그냥 있더라. 그래서 가봤다. 예전에 교회 성극을 재밌게 봤고, 연극부면 술도 많이 줄 것 같아서(웃음) 들어갔다. 처음엔 조명부 역할을 했고,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때 선배 한명이 도망을 가서 땜빵으로 연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기분이 좋더라.

-그런데 전공은 연기과다. =내가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다. 입시가 바뀌고, 고3 때 성적이 많이 떨어져서, 대학 안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담임선생님이 지방대 영문과라도 가면 나중에 재수를 하더라도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1년만 다니려고 영문과에 들어갔다. 그렇게 1년을 다니고, 운좋게 연극원에 붙었다. 연극이 좋아서 연극원에 들어간 거지만, 당시 연출쪽은 빈자리도 많지 않았고, 연기쪽이 영어시험을 안 봐도 되니까(웃음) 그쪽으로 지원했다. 물론 졸업할 때는 연극을 해야 할지, 연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

-그래도 연기가 재밌었나보다. =신기했다. 내가 내성적인 편인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 점에 희열을 느꼈다. 물론 연기가 지금도 힘들고, 고민도 많다. 내가 앞에 나서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연기는 계속 그런 걸 요구하니까 조금은 딜레마이기도 하고. 하지만 힘들기 때문에 계속 나를 고민하게 하고, 능동적으로 만들어준다.

-이후 TV단막극을 비롯해서 많은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 연극뿐 아니라 방송쪽 일을 시작한 건 또 다른 맥락의 ‘보여주기’일 것 같은데. =졸업하고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했다. 운좋게 공연이 잘됐고, 송창의 감독님이 그 공연을 보고 나를 찾아주셨다. 그런 인연으로 시트콤 <연인들>을 했다. 당시 방송 메커니즘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매니저도 없고, 집은 멀고, 차도 없는 상태에서 1년을 했다. 방송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면이 본인과 맞지 않다고 느낀 건가. =연극에 비해 드라마, 시트콤은 빠르지 않나. 연극은 리허설을 통해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 공연을 올리니까 거기에 내가 익숙해져 있었다. 또 당시 <연인들> 이후에 계속 오버하고, 까부는 역들이 많이 들어왔다. 연극을 하자고 결심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고, 그다지 잘한 것 같지도 않은데 오버를 해야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니 힘들었다. 계속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도 싫었고.

-<잔혹한 출근> 개봉 무렵에 오락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에 출연한 모습을 봤다. 오락 프로그램 자체를 좀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쪽팔린다. (웃음) 전날 드라마 <도망자 이두용>의 쫑파티가 있었다. 다음날 녹화가 있으니까 술은 안 마시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예능 프로는 한잔 하고 가는 게 더 편하다고 하더라. 녹화를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멍하고, 앞으로는 절대 오락 프로 안 나갈 거다. (웃음)

-그럼 지금은 방송 메커니즘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나. =지금도 편하지는 않다. 다만 단막극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단막극은 대본 자체가 다양하고, 기회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단막극을 통해 좋은 작가, 좋은 감독님들과 만나고, 그 연결선에서 <하얀거탑>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처음으로 비중있게 출연했던 미니시리즈 <러브홀릭>도 좋은 경험이었다. 나와는 정반대인, 정형화된 검사란 캐릭터를 정극으로 쭉 끌고 나가면서 배운 게 많다. 시청률도 좋지 않았고, 잘하지도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불편해하는 역할을 하다보니 역으로 나에게 플러스가 되더라.

-4부작이긴 하지만 <태릉선수촌>도 같은 맥락의 작품일 것 같다. 오늘 의상도 <태릉선수촌>의 동경 느낌인데. =<태릉선수촌> 때 내 옷을 많이 입었다. 코디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협찬 받아서 옷 입는 거 싫어한다. 내 생활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게 연기에도, 작품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태릉선수촌>의 이윤정 감독님도 동의해주셨다. 단막극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게, 내가 영화 <알포인트>를 하고 나서 KBS 드라마시티 <연애>를 했다. 그때 이윤정 감독님이 나를 보고 연락을 한 거다. 이윤정 감독님은 이전부터 감각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태릉선수촌>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작품이다. 촬영이 끝나고는 후유증이 있을 정도로 지금도 사랑하는 작품이다.

-목소리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을 것 같다. <하얀거탑>에서의 목소리도 인상적이지만, <손님은 왕이다>의 껌을 씹으며 우물거리는 느낌의 목소리도 좋았다. 네티즌은 일명 ‘목욕탕 목소리’라고 하던데. =우리 집안 톤이 좀 그렇다. 장단점이 있다. 가벼운 연기를 할 때는 목소리 자체가 무거우니 더 오버해서 띄워야 한다. 그런 점이 좀 싫은 부분이다.

-영화에 대한 욕심은 없나. 최근 캐스팅 소식을 들은 것도 같은데. =영화? 물론 욕심 있다. 드라마, 연극, 영화, 이제는 장르의 구분을 떠나 배우는 그냥 배우면 되는 거 같다. 최근에 계약한 작품이 있는데 메인투자가 좀 불안해서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2005년 촬영한 영화 <사과>의 개봉이 계속 미뤄져서 서운하겠다. =개봉이 두번 정도 밀렸다. 재밌던데, 왜 그럴까. (웃음) 나에게는 중요했던 영화다. 이전까지 오버했던 역할 이후 처음으로 편하게 한 작품이었고. 첫사랑, 부잣집 남자 나오는 이야기는 작위적이고, 재미없지 않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과>는 상황과 감정에 굉장히 깊게 공감했던 영화다. 지금 하면 더 잘할 것 같고. (웃음)

-해보고 싶은 작품은 어떤 건가. =블록버스터보다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다른 좋은 감독님들과도 하고 싶다. 봉준호, 김지운 감독님. 나도 보는 눈이 있는데 왜 하고 싶지 않겠나. 다만 거기에 내 연기가 따라가지 못할 때, 그걸 느낄 때 가장 괴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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