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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 속의 악귀를 찾아서
김현정 2007-03-22

<황색여관> 3월22일∼4월8일/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2280-4283

사방 80km 이내로 건물이라고는 없는 황무지에 황색여관이 있다. 여관주인과 그 아내, 처제, 주방장이 살고 있는 이 여관에선 밤마다 칼부림이 벌어지고, 손님 모두가 죽어나가곤 한다. 아침이 되면 주인 부부는 시체에서 귀중품과 지갑을 빼낸 다음 또다시 영업을 준비한다. <파수꾼> <동지섣달 꽃본듯이>의 극작가 이강백의 신작 <황색여관>은 이처럼 황색여관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호기심을 자아내며 시작한다. 그러나 궁금해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지켜보면 된다. 황색여관에는 비밀 따위는 없고, 하루하루는 반복되며 결말은 예정되어 있다.

황색여관 손님들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묵는다. 1층은 값싼 방이고 2층은 비싼 방이어서, 손님들은 빈(貧)과 부(富)로 분열되고, 또다시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로 분열된다. 2층에 묵는 변호사와 전직 장관과 부동산 투기꾼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추악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젊고 가난하다고 하여 순결한 것은 아니다. 1층의 외판원과 배선공은 책을 좋아하는 학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칼을 쥐어주기 위해 핍박하고, 끝내 자신의 죄를 부인한다. 그러므로 황색여관에서 밤마다 일어나는 칼부림에는 아무런 미스터리가 없는 것이다. 이름없이 보통명사로 지칭되는 이들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들을 지켜보며 관객은 자기 마음속의 그늘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황색여관>은 대립과 다툼의 원인은 휘발된 채 오로지 싸움 그 자체에만 골몰하는 인물들을 연민없이 보여주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들이 체면과 위선을 유지하려는 전반부는 다소 느리고 지루하지만 그 때문에 후반부의 에너지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태석 연출이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처음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