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디스토피아의 다리 건너 행복의 나라로
2001-10-12

기괴한 이미지 벗겨내고, 로맨틱 코미디 <아멜리에>로 돌아온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세계 (1)

장 피에르 주네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미지로 천연덕스럽게 풀어낸다. 인육을 파는 푸줏간 사람도, 남의 꿈을 훔치는 과학자도, 외계인의 DNA를 가진 여전사도, 그의 미장센에서 생명을 얻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여기’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쓴소리에도 눈 하나 꿈쩍 않을 만큼 고집불통이다. “나는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게 좋다. 그것도 과도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의 영상으로. 영화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다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내 영화를 좋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진 않다. 그건 교황에게 콘돔을 쓰라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알아서들 하라는 얘기다. 열광하거나, 혐오하거나.

이미지의 힘이 세다

주네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영상은 꽤나 충격이었다. 어둡고 습한 화면은 푸줏간과 지하터널을 맴돌았고, 가뜩이나 기괴한 캐릭터들은 회전목마를 타는 악몽처럼 어지럼증 나는 화면 속에서 생김새 이상의 기행을 일삼았다. 마르크 카로와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만들기로 했을 때, 장 피에르 주네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다. 뜻밖에 칸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는 경사를 맞고, 해외시장으로 뻗어나가게 되자, 주네는 거의 모든 대륙의 관객과 조우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디를 가든 관객의 반응이 같았다. 같은 대목에서 즐거워하고, 같은 대목에서 지루해했다. 영화로 모든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가 실감한 것은 이미지의 힘이었다. 내러티브는 종종 언어와 문화의 골에 빠지곤 하지만, 이미지는 그것들을 뛰어넘는 친화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이후 주네는 좀더 옹골찬 확신을 갖고, 이미지로 말 거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기괴함을 컬러풀하게 버전업했고, <에이리언4>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는 드물게 유럽풍의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로 기록됐다.

<아멜리에>는 그런 주네가 외도를 한 것인가, 싶은 착각을 주는 영화다. 몽마르트르의 한 아가씨가 남들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자기의 반쪽과 만난다는, 그래서 ‘해피 투게더’해지는 로맨틱코미디라. 주네가 드디어 현실을 직시하고 일상을 돌보기로 했다는 뜻일까. <아멜리에>는 그러나, 주네의 행보가 언제나 그랬듯, 그 모든 예상을 요령껏 비껴나갔다. 단조에서 장조로 음계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주네의 인장들로 가득한 우화 <아멜리에>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멜리에>는 지난 5월 프랑스에서 개봉한 이래 800만의 기록적인 관객몰이를 했다. 올 상반기 프랑스영화들이 자국시장에서 50% 넘는 점유율을 올리는 데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시사회를 열고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그린 영화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멜리에를 연기한 신예 오드리 토투는 하루아침에 국민적인 스타로 급부상했다. 아멜리에의 남자친구 니노로 출연한 <증오>의 감독 마티외 카소비츠는 괴팍하고 반골적인 인상을 느슨하고 부드럽게 풀어 로맨틱한 캐릭터를 소화해, 남성향수 모델로 발탁되는 ‘사고’까지 치고 말았다. 아멜리에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풍차카페와 길모퉁이 야채가게도 파리의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아멜리에>는 장 피에르 주네의 필모그래피에서 그 ‘명도’와 ‘채도’로서도 단연 튀는 작품이다.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도 로맨스가 있으니, 얘깃거리야 그닥 다를 것이 없지만, 그토록 기괴하고 암울한 이미지에 천착하던 감독이 갑자기 밝고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로맨틱코미디로 선회한 이유는 뭘까. 감독 자신은 그것을 “개인적인 진화”라고 부른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마친 뒤에 내가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는 것들만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들은 내게 전과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밝고 가벼운 영화라고 판단한 주네는, “나는 이게 좋고 이게 싫다”는 내레이션만으로 진행되는 단편 <쓸모없는 것들>(1989)에서 출발해 숙성시킨 프로젝트 하나를 끄집어냈다. 곡식 자루에 손을 넣거나 야트막한 냇가에서 물수제비 뜨는 것처럼 추억 속에서 건진 작은 기쁨들을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 무수한 낱낱의 에피소드의 연결점으로 ‘아멜리에’라는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아가씨를 만들어냈다. ▶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세계 (1)

▶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세계 (2)

▶ 주네의 조력자들

▶ 장 피에르 주네 인터뷰 (1)

▶ 장 피에르 주네 인터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