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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이라고? 우리 안에 괴물이 살고 있는 걸”
2001-10-12

장 피에르 주네 인터뷰 (1)

<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에이리언4>까지, 판타지의 미궁을 지어내던 장 피에르 주네가 이번에는 좀더 따뜻하고 행복해진 영화를 들고 찾아왔다. 지난 부천영화제에 폐막작으로 선보인 <아멜리에>에선 그동안 주네의 영화들이 보여주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도시와 기괴한 인물들이 모두 지워져 있었다. 대신 현실을 기적으로 바꿔내는 아름다운 여인 아멜리에와 낭만적이고 동화적으로 가공된 도시 파리가 등장했다. 영화와 함께 부천을 방문했던 장 피에르 주네는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에이리언4> 이후 파리로 돌아가 처음 만든 이 신작에 각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기억과 사랑을 토로하는 영화이며, 현실 속에 숨어 있는 판타지를 발견하는 영화, 그리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라며.

<아멜리에>는 당신의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밝아졌다. 어떻게 구상했나.

<에이리언4>를 찍느라 몇달간 LA에 머물러야 했다. 할리우드의 작업은 흥미롭기는 했지만 하루하루가 전투같았다. 제작자나 관계자들과 거의 매일 싸워야 했다. 게다가 영화도 총과 살육이 난무하지 않는가? (웃음) 그러다보니 파리에 돌아가고 싶어졌고 총이나 싸움이 등장하지 않는 밝고 행복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물론 <아멜리에>는 <에이리언4> 이전부터 이미 대략의 캐릭터와 상황을 구상해놓은 것이었다. 문제는 이야기를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였다. 그런데 어느날 파리의 거리를 거닐다가 낡은 박스 안에서 살고 있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거지를보았다. 파리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를 보는 순간 그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 거지는 마치 그보다 나쁜 삶이란 없을 것만큼 비참해 보였는데, 오히려 그가 남을 돕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남을 돕는 착한 소녀’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그 다음부터는 술술 풀렸다. 시나리오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함께했던 기욤 롤랑과 썼다.

<아멜리에>는 아주 사적인 기억과 취향을 늘어놓는 당신의 단편 <쓸모없는 것들>( Foutaises, 1989)과 유사하다.

그 영화를 봤는가? (웃음) 난 내가 파리에서 살며 느낀 것들을 묘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기억과 취향을 이야기해야할 지 막연했다. 내 경험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억과 취향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일종의 게임이다. 문제는 그것이 구체적인 사건이나 일화가 되면 공유의 폭이 작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오감으로 표현하였다. 가령 콩자루에 손을 넣을 때 느낌, 바람의 촉감, 향기로운 냄새 같은 것 말이다. <쓸모없는 것들>이나 <아멜리에>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내가 가진 기억과 경험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영화이다. 이런 방식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나에겐 아주 행복한 방식이었다.

예전 작품들은 가상적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판타지’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아멜리에>가 현실세계가 배경인데도 판타스틱한 것은 그 배경인 파리가 실제와는 상관없이 아멜리에의 상상적 세계로 가공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은 항상 도시라는 공간을 영화적 공간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것 같다.

맞다. 이 영화는 실재하는 파리가 아니라, 그녀가 생각하고 구축한 파리이다. 가령 난 ‘자연’(nature)이라는 공간은 영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부드럽고 넓고 평평한 의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은 상상력이 어우러져 창조되는 것 아닌가? 내가 항상 도시를 영화적 공간으로 선택하는 것은 내가 인공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변형하길 좋아하는데 도시가 그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나의 특별한 촬영 스타일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는 도시와 건축물들이 흥미로운 것이다. 마치 오슨 웰스가 자신만의 촬영 스타일에 자신의 관점(perspective)을 투영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숏렌즈, 클로즈업, 크레인숏 등을 써서 내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영화적으로 전달한다. 실재하는 도시, 파리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파리로 이주한 것은 21살 때였는데, 사실 파리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서울처럼 교통이 혼잡하고, 뒷골목은 지저분하며 개똥이 넘쳐난다. 이런 이미지들은 여태까지 내 영화 속 도시라는 공간을 어둡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이번 작품을 통해서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좀더 미학적으로 가공된 영화적 도시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거리의 지저분한 포스터를 아름다운 포스터로 교체하고, 복잡하게 주차된 차들을 치우고, 특히 후반 디지털 작업을 통해서는 하늘빛이라든가 공간을 다르게 채색했다. 야외촬영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아주 판타스틱했다.

이번 영화는 다리우스 콘쥐가 아니라 브루노 델보넬이 촬영을 맡았는데, 일상적인 사물들을 클로즈업이나 광각렌즈 등을 통해 왜곡하거나 낯설게 만들면서 동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게다가 카메라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저속과 고속을 감성적으로 사용한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가. 거기에 특별히 영향을 끼친 다른 예술이나 영화가 있는가.

단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일 뿐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사물과 풍경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 것은 나에게 매우 지루한 일이다. 그런 것은 뉴스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내가 포착하는 대상을 상상력을 가지고 다르게 보여주고 변형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령 팀 버튼이나 테리 길리엄의 영화들처럼, 영화적 세계는 프레임 하나하나까지 상상력으로 변형하고 가공하는 판타지로 충만해야 한다. 그 속 어느 프레임을 떼내 벽에 걸어놓아도 좋을 만큼, 하나의 숏이나 신, 심지어 하나하나의 프레임까지 의미가 풍만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야 한다. 물론 내가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만화적인 프레임이 계속 내 영화 속에 남아 있는 것이겠지만. 또, 내게 특별한 영향을 끼친 ‘무엇’은 따로 없어도 나는 회화나 음악, 사진, 영화 등을 보고 모으기를 좋아한다. 딱히 언급하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특별하다. <아멜리에>에도 그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만들었다. 한번 찾아봐라. (웃음) 브루노 델보넬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언젠간 그와 함께 작업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작품에 다리우스 콘쥐가 참여하지 못하면서 그와 일하게 되었다. 그와의 작업은 아주 만족스럽고 훌륭했다.▶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세계 (1)

▶ 장 피에르 주네의 작품세계 (2)

▶ 주네의 조력자들

▶ 장 피에르 주네 인터뷰 (1)

▶ 장 피에르 주네 인터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