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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인생] 귀환, 지옥, 승승장구
김도훈 2007-04-03

센세이셔널리스트 폴 버호벤 감독이 돌아왔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7년 만의 귀환. <로보캅> <토탈 리콜>로 할리우드의 신전에 올랐던 그는 <쇼걸>과 <할로우맨>의 실패로 할리우드를 떠나 모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7년 만에 날이 하나도 닳지 않은 폴 버호벤식 영화 <블랙북>을 들고 귀환했다. 성적 호르몬과 폭력의 정치학에 심취한 예순여덟의 예술가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버림받고 치즈와 풍자의 나라로 돌아가 또다시 전성기처럼 생동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냈을까. 지난 20년간 폴 버호벤이 달려온 할리우드 롤러코스터의 궤적.

# 2006~2007년 _ 귀환

사람들이 폴 버호벤의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은 지난해 최악의 졸작이었던 <원초적 본능2> 덕분이었다. 전신성형을 받고 돌아온 샤론 스톤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원초적 본능>에서의 치명적인 음탕함은 전혀 없었다. 모두가 다리를 벌려젖히는 <원초적 본능>의 끈적끈적한 마력과 <쇼걸>을 대표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 참가했던 폴 버호벤의 유들유들함을 그리워하고 있을 무렵, 버호벤은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만든 신작 <블랙북>의 성공을 자축하며 각종 인터뷰에 바쁘던 차였다. “<원초적 본능2>? 물론 개봉하자마자 봤다. 내가 그 영화를 만들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속옷을 입지 않고 다리를 벌렸던 건 합의하에 촬영한 장면이었다. 샤론 스톤은 요즘 거짓말이 너무 늘었다.”

<블랙북> 현장에서의 폴 버호벤 감독.

폴 버호벤이 귀환했다. 무려 7년 만의 일이다. <쇼걸>과 <스타쉽 트루퍼스> <할로우맨>의 거듭되는 흥행실패 이후, 오랫동안 일거리를 찾지 못했던 그는 모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 멋진 2차대전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블랙북>은 “나이가 들어 현명해진 작가의 성찰적 영화”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려지는 무미건조한 귀환작이 아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 생존담을 슬그머니 위장하며 시작하는데, 안네 프랑크처럼 숨어 살던 유대인 주인공 레이첼은 곧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마타하리가 된다. 그러다가 인도주의자 나치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꿍꿍이를 감춘 레지스탕스에 의해 배신당하고, 나치가 패망하자 무자비하게 나치 가담자들을 색출해 고문하고 처형하는 네덜란드의 미소 가득한 양민들에게 쫓긴다. 숫제 2차대전을 무대로 한 <쇼걸>이라 부르는 게 낫겠다. 버호벤은 마치 여자들의 암투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를 묘사하듯이 2차대전 말기의 네덜란드를 묘사한다. 선과 악의 명쾌한 이분법 따위는 당연히 없다. 사람들은 살아남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만 선과 악이라는 지침서를 따른다.

폴 버호벤은 여전하다. 그리고 여전하다는 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는 영화적 쾌락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만약 이런 표현이 2차대전 영화에 대한 경솔한 표현이 안 된다면 <블랙북>은 정말이지 대단한 오락거리”라고 감탄한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말처럼, 버호벤의 귀환작은 할리우드에서 지난 20년간 익힌 영화적 기술을 기가 막히게 이용한 오락영화이기도 하다. 편집의 속도는 <로보캅>에 가까울 만큼 빠르고, 관객의 눈을 가린 채 내러티브를 몰아가는 긴장감은 <원초적 본능>과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블랙북>은 귀환이라기보다는 귀가(歸家)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다만 7년의 세월이 걸렸을 뿐이다.

# 1995~2002년 _ 지옥

지난 2000년. <할로우맨>을 끝마친 폴 버호벤은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그는 비평가들의 독설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미스터 할로(Hollow: 공허한)의 할로한 영화’라고 공격해대는 것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흥행성적도 별로였다. 1억달러에 가까운 제작비를 건질 방도는 없어 보였다. 더욱 괴로웠던 건 버호벤 자신도 7번째 할리우드영화에 별 애정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뷰에서 “아주 공허한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든 영화일 뿐, 해야만 했기 때문에 만든 영화는 아니다”라고 토로한 것은 신경쇠약 증세의 일부처럼 보였다. <쇼걸>과 <스타쉽 트루퍼스>에 쏟아진 비평계의 악담에도 꿋꿋이 견뎠던 그다. 하지만 <할로우맨>은 이 드세고 용맹스런 이슈메이커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쇼걸>이 개봉한 1995년부터 <할로우맨>의 2000년까지의 5년은, 실망스러운 비평적 논란과 저주받은 흥행성적으로 점철된 최악의 롤러코스터였다. <원초적 본능>(1992)의 성공에 이어 만든 <쇼걸>(1995)은 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뒤이어 만든 블록버스터 <스타쉽 트루퍼스>는 박스오피스에서조차 무시를 당했다(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영화는 <할로우맨>보다도 수익이 저조했다). 비평가들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버호벤을 오래전부터 탐탁잖아 했던 로저 에버트는 물을 만난 고기였다. “액션장면들은 의아할 정도로 재미가 없다. <스타워즈>와는 달리 <스타쉽 트루퍼스>는 도무지 공명을 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일차원적이다. 영화의 풍자적인 농담들에 미소를 지을 수는 있지만, 인간 본성의 따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스타워즈>가 인도주의자라면 <스타쉽 트루퍼스>는 전체주의자일 것이다.”

<스타쉽 트루퍼스>

폴 버호벤과 조지 루카스를 어색하게 비교한 에버트의 비판은 그렇다 쳐도, “마치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같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맹공은 어딘가 심각하게 비틀려 있었다. 버호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스타쉽 트루퍼스>를 통해 당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채비를 서두르던 미국의 우파 프로파간다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풍자를 풀어나가는 영화적 방식에 의문을 품을 수는 있을지언정 영화의 의도 자체를 오해당하는 일은 예견 밖이었다. 그는 <스타쉽 트루퍼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으며, <할로우맨>은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그 누구도 버호벤과 일을 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로우맨>이 끝나자 나는 영화만큼이나 완벽하게 텅 빈 상태가 되었다.” 차기작은 줄줄이 엎어졌다. 미국과 러시아가 나치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을 두고 벌이는 스파이영화 <공식적인 암살자들>(Official Assassins)은 무산됐고, 괴승 라스푸친 전기영화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과 각각 진행하던 마술사 후디니와 심령술사 빅토리아 우드헐 전기영화는 그들의 이혼으로 연기되었다. <십자군> 프로젝트는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으로 완전히 끝이 났다. 버호벤은 탄식했다. “할리우드에서 한 감독이 특정한 장르영화를 실패작으로 만들게 되면, 그 장르는 이후 10년간은 금지된 거나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90년대 후반 몰아닥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재편성이었다. 그에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척척 맡겼던 대규모 독립스튜디오 ‘오리온’과 배포 큰 제작자 마리오 카사의 ‘캐롤코’는 90년대 중반 일제히 도산해버렸다. 든든한 아군과 돈줄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두 회사의 유일한 요구는 배우 선택권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마이클 더글러스를 기용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 의지대로 영화를 관할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갈 곳이 없었다. “나는 힘있는 배우들이나 제작자와 끈끈한 네트워크를 만들거나 파티에서 사람들을 구슬리는 데 소흘히 했었다. 그런 걸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뒤늦은 후회 역시 소용없었다.

# 1971~1995년 _ 승승장구

1980년대 초반의 폴 버호벤은 이미 네덜란드의 거장이었다. 매춘부 여인들을 다룬 코미디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Wat Zien Ik?, 1971)로 데뷔한 그는 히피 성향의 조각가와 부유한 여인의 성적 모험과 사랑을 다룬 <사랑을 위한 죽음>과 2차대전 레지스탕스영화 <오렌지 군인>으로 역대 네덜란드 흥행성적을 경신하는 동시에 주연배우 룻거 하우어를 전 유럽의 스타로 키워냈다. <사랑을 위한 죽음>과 <오렌지 군단>이 각각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원초적 본능>을 예견케 만든 스릴러 <포스맨>이 컬트적인 인기를 모으자 본격적인 할리우드의 손짓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그를 눈여겨보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조지 루카스에게 폴 버호벤을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의 감독으로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조지 루카스는 스필버그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다이들이 곧바로 옷을 벗고 섹스를 하기 시작할까봐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라는 게 버호벤의 추측이다. 어쨌거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구애는 계속됐고, 버호벤은 “진력이 났던 네덜란드 영화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미 <쿠조>와 <블레이드 러너>로 각각 미국 입성에 성공한 촬영감독 얀 드봉(이후 <스피드>로 감독 데뷔한다)과 배우 룻거 하우어를 데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 <전설의 전사>(Flesh + Blood)를 완성했다. 어린 제니퍼 제이슨 리의 아름다움이 눈을 잡아끄는 이 작품은, 당시의 할리우드가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어두운 중세 사극이었다. 왠지 할리우드 진출은 그것으로 끝인 듯했다.

<로보캅>

오리온 영화사가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오리온의 중역은 “당신이 알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설의 전사>가 참 좋았다”고 말한 뒤 각본을 하나 보냈다. <로보캅>이라는 유치찬란한 제목이 또렷이 박혀 있었다. 버호벤은 각본을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에다 처박아버렸다. 네덜란드 최고의 감독을 싸구려 대본으로 농락하는 할리우드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경솔한 그를 구원한 것은 아내였다. 그녀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각본을 다시 끄집어내 버호벤에게 건넸다. “성질 급한 양반. 끝까지 읽어보시죠.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각본이라고요.” 아내의 통찰력은 옳았다. 각본에서 영화적인 은유의 가능성을 읽은 버호벤은 대본을 움켜쥐고 촬영장으로 향했고, 결국 <로보캅>은 무시무시한 흥행성적을 올리며 버호벤의 이름을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흥행감독으로 추켜올린다. “<로보캅>은 매우 미국적인 영화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내가 더한 것은 이방인이었던 내 자신의 처지와 마음 상태였다. 미국의 모든 것이 낯설었고 모든 것이 놀라웠다. 나는 로보캅이었다.” 이방인은 곧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를 경신한 블록버스터 <토탈 리콜>의 성공으로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와 동급의 위치에 올랐고, <원초적 본능>으로는 문화적인 비명을 불러일으켰다. 버호벤은 흥행감독인 동시에 인정받는 작가였다. <쇼걸>이 닥치기 직전까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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