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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 흥행, 게임의 규칙을 뒤흔들다
2001-10-12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2)

‘컨셉트 무비’의 정착?

하지만 이런 견해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측면이 있다. <봄날은 간다>를 배급한 시네마서비스 관계자는 <조폭 마누라>의 흥행은 예견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폭 마누라>가 추석특수를 최대로 누린 예라고 설명한다. “대대로 추석에는 액션코미디가 흥행했다. 추석에는 1년에 영화 1편도 잘 안 보는 관객이 극장에 나온다. 그들이 쉽게 선택하는 영화는 액션영화나 코미디이고 올해는 <조폭 마누라>와 같은 장르에서 경쟁할 영화가 없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멜 깁슨의 액션영화 한편만 있었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런 견해는 올 추석 외화들의 부진을 보면 수긍이 간다.

성룡의 <러시아워2>는 1주 앞서 개봉, 추석연휴 6일간 서울 15만1천, 전국 33만2900명을 동원했다. 이는 <조폭 마누라> <봄날은 간다>에 이은 3위의 기록. 성룡의 영화가 한국시장에서 고정관객을 갖고 있지만 늘 어느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봤을 때 그 밖의 외화들이 얼마나 시장을 나눠가졌는가가 중요한데 올 추석 외화는 특히 약했다. <아메리칸 스윗하트> <프린세스 다이어리> <스위트 노벰버> <분노의 질주> 등이 <조폭 마누라> <봄날은 간다>와 같은 날 개봉했지만 서울관객 10만명을 넘긴 건 <아메리칸 스윗하트>뿐이었고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분노의 질주>는 서울관객 1만6천명을 못 넘기는 수모를 겪었다.

<조폭 마누라>의 흥행을 가벼운 영화에 몰리는 추석특수 결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번 추석 흥행전이 한국영화 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라고 말한다. 극장업계 출신인 한 제작자는 “예년에 외화가 분점했던 시장을 <조폭 마누라>가 독식했다. 지금 영화시장이 보여주는 중대한 변화는 한국영화 급락의 전조가 아니라 한국영화와 외화의 달라진 힘관계”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입장에선 <조폭 마누라>와 <봄날은 간다>에 몰린 관객 수 차이가 ‘의외의 결과’는 아니다.

“<조폭 마누라>가 없었다고 <봄날은 간다>가 지금보다 폭발적인 흥행결과를 낳았을까? <봄날은 간다>가 거둔 서울 20만, 전국 40만명이라는 관객 수는 결코 나쁘지 않다. 영화적 완성도에서 <조폭 마누라>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대중적 호소력면에서 그정도 결과가 나오는 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완성도, 스타 파워, 영화의 규모에서 밀렸지만 기획아이디어, 개봉시기 선정, 마케팅에서 <조폭 마누라>는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영화로 느껴졌다는 해석이다.br>

<조폭 마누라>의 흥행이 깡패영화 유행의 정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친구>로 불을 지핀 뒤 <신라의 달밤>을 거쳐 <조폭 마누라>로 이어진 깡패영화의 승승장구는 얼핏 <친구> 이후 생긴 흥행영화의 최신 경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갱스터영화, 홍콩산 변종인 홍콩누아르, 일본의 야쿠자영화처럼 깡패영화는 한국영화에서 신파 멜로드라마만큼 오랜 전통을 가진 장르이다. 명필름 대표 심재명씨는 “따지고보면 깡패영화는 흥행작을 양산한 장르이다. 60년대 다찌마리 영화들이 그랬고 90년대 <장군의 아들>도 성공했다. 조양은이 주연한 <보스>도 흥행했고 멜로드라마 코드가 강했지만 <약속>도 깡패영화로서 흥행했다. 깡패영화 유행이 갑작스레 생긴 것도 아니고 한국영화의 심각한 퇴행징후도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친구>의 폭력성 논쟁 이후 깡패영화의 흥행과 사회분위기를 직접 연관시키려는 시도가 많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건 같은 장르를 색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변형방식이라는 것이다.이 점에서 보면 <친구>가 현실적 캐릭터와 부산사투리로 만들어낸 장르의 내적 변화를, <신라의 달밤>은 코믹터치로 이어받았고 <조폭 마누라>는 주인공을 중성적 이미지의 여성으로 역전시키는 발상을 통해 이끈 셈이다. 실제로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를 연상시키는 <조폭 마누라> 광고사진은 한마디로 요약되는 아이디어 하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컨셉트무비’의 정의를 내려주는 듯하다.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승범씨는 “이런 유의 영화가 한국에서만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90% 정도가 컨셉트무비라는 걸 고려하면 <조폭 마누라>의 성공은 납득할 만한 것이라는 얘기이다. <…JSA> 흥행과 대조적인 분위기

그러나 <조폭 마누라>의 흥행은 이 영화를 제작, 투자, 배급한 이들에게 희소식일지라도 영화계 전체가 반길 일은 아니다. “한국영화 몰락의 징후”라는 건 과장된 표현이라 해도 “<조폭 마누라>류의 영화가 범람할까 두렵다”는 영화계 관계자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를 여러 편 기획하고 있는 한 제작자는 “의욕이 안 난다”는 소감을 밝힌다. 그는 “쉽게 돈버는 길이 보이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품의 완성도로 경쟁하던 게임의 법칙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런 반응은 지난해 추석에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했을 때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제작자들이 분투할 수준있는 대중영화의 모범을 제시했다면 <조폭 마누라>는 정반대로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트린 모델인 셈이다. 물론 <조폭 마누라>만 집중성토를 받을 영화는 아닐 것이다. <자귀모> <비천무> <단적비연수> 등 완성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올 추석흥행전 결과에 민감한 이유는 <조폭 마누라>가 보여준 폭발력이 완성도에 비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1997년 <할렐루야>가 서울관객 31만명을 넘긴 것과 비교하면 <조폭 마누라>의 기세는 위협적이다. 컨셉트와 마케팅의 힘만으로 불가능해 보인 어떤 선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돌파구, 앞서가는 제작자가 찾는다

이것이 추석특수에 기인한 흥행성공이며 일시적인 과열이라는 진단이 맞는지는 추석연휴 이후 관객 동향으로 증명될 문제이다. 문제는 이번 흥행결과가 영화계에 끼칠 부정적 영향이다. 크게 히트한 영화의 아류작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투자, 제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쉽고 가볍고 돈 적게 들이는’ 영화 위주로 흐른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봄날은 간다>를 제작한 싸이더스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씨는 “투자자나 제작자가 앞서가는 시도를 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반면 최근 <와이키키 브라더스> <버스, 정류장> 등을 제작하며 스타 캐스팅에도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는 심재명씨는 차승재 대표의 걱정에 동의하면서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어차피 돌파해야 할 현실”이라고 말한다. “관객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관객수준은 외국보다 높다. 공급자가 수요를 만들어야 되는 상황이며 돌파구는 잘 만든 대중영화가 흥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제작비 규모가 큰 작품을 진행중인 김승범씨 역시 “<조폭 마누라>의 흥행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 길은 완성도있는 영화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할리우드의 흥행작도 상당수는 수준미달인 영화로 채워져 있다. 한편으론 영화의 완성도를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렇지 않은 영화가 성공하는 데 영화산업 자체의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설령 지금 상황이 영화시장의 심각한 변화를 의미한다 해도 영화의 다양성과 완성도를 지키는 건 여전히 제작자의 몫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점유율 50%로 치닫고 있는 지금, 흥행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숙명을 안은 채 영화산업의 미래 또한 염려해야 할 제작자들이 짊어진 짐은 오히려 무거워진 느낌이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1)

▶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2)

▶ 예상 깨고 `대박` 터뜨린 영화들

▶ <조폭 마누라> 제작자 현진영화사 대표 이순열

▶ 영화 글쟁이 박평식, 최근 흥행작들을 보고 탄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