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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귓가에 속삭일 때
박혜명 2007-04-05

<Corinne Bailey Rae Live In London & New York> 코린 베일리 래/ EMI뮤직 발매

2006년 데뷔앨범을 통해 국내에도 정식 소개된 영국의 솔보컬 코린 베일리 래는 데뷔EP <Like A Star>를 낼 때부터 영국 내외의 평단과 기자들에게 빌리 홀리데이와 메이시 그레이에 비교되며 극찬을 받았다. “어딜 가나 나와 비교하는 인물이 똑같다”고 <BBC>와의 인터뷰 때 내심 식상해진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던 코린 베일리 래는 빌리 홀리데이보다 여성적이고 메이시 그레이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졌다. 허스키한 저음에서 나오는 솔풀한 힘은 기본으로 가져가되, 래의 목소리는 스물여섯이라는 이르지 않은 데뷔 나이를 잊게 할 만큼 상쾌하고도 여린 정서를 자신이 직접 쓴 노래들에 싣는다.

코린 베일리 래는 어릴 때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했고 노래하기를 즐겼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거칠고 성량이 작아 가수 같은 건 꿈도 꿔보지 않았다고 한다. 열다섯살 때, 빌리 홀리데이를 알기 전까지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을 즐겨 들었던 래는 엄청난 관중 앞에서 하늘도 뚫을 것처럼 울부짖는 미국 R&B 디바들의 목소리가 가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리 홀리데이를 처음 들었을 때 왜 내가 이전까지 이 사람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날 정도였다. 노래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보컬이 되기 위해 목소리가 꼭 완벽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십대 때 레드 제플린에 빠져 인디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던 래는 리즈대학 영문학과를 다니면서 작은 재즈클럽의 보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님이 많아봐야 스무명 정도가 고작인 그곳에서 속삭이듯 이야기하듯 노래했던 경험이 지금 자신의 보컬 스타일을 만든 것 같다고 래는 말한다. “나는 티나 터너처럼 무대 위에서 큰 소리를 지를 수 없다. 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사적이고 친밀한 이야기들. 누군가 당신의 귓가에 속삭여주는 듯한 것들.”

이번에 발매된 코린 베일리 래의 라이브 실황 앨범은 CD와 DVD로 구성돼 있는데, CD는 뉴욕에서의 공연 실황이고 DVD는 런던의 성루크성당에서의 것이다. 성당이니만큼 공연 규모가 작다. 데뷔EP를 포함해 영국 내에서만 지금까지 100여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신인인데, 래는 동네 재즈클럽처럼 동그란 테이블을 두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관객 앞에서 굽이 없는 플랫슈즈를 신고 수줍게 노래한다. 래는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영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 아이들과 학교를 다녔다. 어디서나 조용한 아이였다는 래는 웃긴 이야기나 농담 하나 넣을 줄 몰라서 “음, 저는 이 노래를 스티비 원더의 노래처럼 만들고 싶었어요”라든가 “다음 노래가 뭔지는 여러분들도 아실 거예요” 정도로 공연 막간의 잡담 시간을 때운다. 쇼다운 재미는 전혀 없다. 대신 코린 베일리 래의 라이브 DVD는 그 수줍고 여린 성격의 여인이 공연 중에 감정에 취해 자신을 오픈해가는 몸짓들을 보게 한다. 노래가 끝나고서도 눈을 뜨지 못하는 그녀의 여운이 길게, 성루크성당의 무대뿐 아니라 화면 너머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래는 종일 웃고 있었는데도 울컥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