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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 장 피에르 주네의 깜찍한 `주술`
2001-10-16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이 만들어 올해 프랑스에서 800만명이 관람한 흥행작 <아멜리에>는 그의 전작 <델리카트슨>(91)이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95)와 분위기나 정서가 사뭇 다르다. 전작들이 기괴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선보였다면 <아멜리에>의 상상력은 조금 엉뚱하기는 하지만 친근하고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하철의 즉석사진 촬영대에서 남들이 찢어버린 사진조각을 주워 모으는 남자, 방안에 틀어박혀 명화들의 모작을 그리면서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을 연구하는 데 골몰하는 늙은 화가, 식당 여자에 집착한 나머지 하루 종일 그 식당에 앉아 여자의 말을 녹음하고 일거수 일투족에 시비거는 습관성 스토커…. 주네가 수집해 놓은 인물들은 꽤나 별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인 지금 파리에는 이런 인물들이 실제로 있을 법하다. 그 중에는 사랑에 굶주린 이들도 빠지지 않는다. 외국으로 떠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는 여자, 사별한 아내의 무덤을 가꾸는 일에 전념하는 노인 등등.

이 사람들과 함께 파리에 사는 젊은 여자 아멜리에는 어릴 때 어머니가 죽고 외롭게 살면서 마치 주네 감독처럼 잡다한 상상을 끊임없이 해대며 자랐다. 어느날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도 모르게 가져다 주고는,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한다. 이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엉뚱한 인물들은 모두 아멜리에의 일감이 되고, 사랑을 포함해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걸 찾아주려는 아멜리에에게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러면서 아멜리에도 스스로의 사랑을 찾는다. 큰 줄거리가 있다기보다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아멜리에가 만들어가는 예쁜 일화들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사랑을 느끼는 순간 하트 모양의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고, 즉석사진 한장에 담긴 네 컷의 같은 얼굴이 서로 대화를 하는 등 만화와 팬터지를 가미한 과장법도 예쁘다.

제3자의 내레이션을 동원해 일상을 맛깔나게 설명하는 수필같은 연출은 주네 감독이 장편 데뷔전인 89년에 만든 단편 <쓸모없는 것들>(<프랑스 단편영화>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비디오에 들어있다)과 닮았다. 주인공이 자기 주변에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번갈아 열거하다가 끝나는 이 단편은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새삼 눈여겨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아멜리에>도 같은 매력이 있지만, 장편으로 길어지면서 인공적 요소가 늘어난 탓에 담백한 맛이 줄어든 느낌이 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