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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가짓수만 맞춰주면 통합되나?

아시아 대원 머릿수는 늘어도 ‘핵심기술’은 여전히 백인 남자들의 것인 대니 보일의 <선샤인>

<선샤인>

대니 보일의 새 영화 <선샤인> 도입부에는 대단한 순간이 있다. 영화는 전조를 깔아두는 시작으로서 과학적이고 까다로운 표현들로 분위기를 맞춰놓은 다음, 마침내 태양에 거대한 핵폭탄을 발사하러 가는 우주선의 대원들을 소개한다. 예전 영화 속 우주선 대원들은 저녁식사로 알록달록한 것들을 빨대로 빨아먹곤 했다. 그런데 <에이리언>과 뉴리얼리즘 이후 대원들이 진짜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어도 괜찮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함선의 주방에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샐러드가 요리되고 있지는 않다. 대신 한 중국인 남자가 닭을 볶으면서 동네 테이크아웃 식당 주방장 같아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대원들은 밥먹으려고 앉아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덟명의 대원 중 세명이 아시아인이 아닌가! 영화를 만든 이들에 의하면, 이것은 미국과 중국이 우주연구를 선도해나가면서 힘의 균형을 맞추게 되는 50년 뒤쯤의 일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 그것보다도 이것이 사실상 반영하는 것은, 약간 도전적인 영화 혹은 미국 주류 밖의 영화를 배급하게 될 때 맞춰야 하는 세계 대 북미 박스오피스 위력의 균형일 것이다.

<선샤인>은 영국인들이 쓰고, 제작하고, 감독한 것이며, 영국에 등록된 회사(DNA 필름)에 의해 영국에서 전 장면 촬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엄청난 예산의 대부분은 이른바 전문 계열사라 불리는 폭스 서치라이트를 경유해 미국 이십세기 폭스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폭스사는 <선샤인>이 <솔라리스>의 주류 버전인지, 아니면 우주 스릴러인지, 혹은 대중심리드라마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4월 동안 전세계 곳곳에서 개봉하면서 북미는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제일 가능할 것 같은 날짜는 9월이다(한국은 4월19일).

현명한 처세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기준에서 보면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으니(약 4천만달러), 운이 좋다면 폭스사는 국제적으로 그 예산을 벌충하고, 그 과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좋은 이야기를 모아 북미에서는 진정한 수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시도하는 다문화주의란 유행에 민감한 마케팅 수단일 뿐이고, 얄팍하다.

우주선의 선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나다 히로유키가 맡은 인물은 하는 일이 별로 없고 영웅적인 자기희생으로 죽고 만다(아, 자기희생적인 일본인들이란…). 베네딕 웡이 연기하는 볶음요리전문 항법사는 초반에 실수를 저질러서 전체 임무를 위기에 처하게 하고는, 죄책감에 발끈하여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선 사라져버린다. 식물학자로 나오는 양자경만이 그럴듯한 인물을 맡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여전히 조력자의 역할에 그친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서 여전히 주요한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을 재난에서 구해내고 마지막 릴까지 생존하는 이는 백인 남자들이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좋은 의도는 시나리오를 35번 개선하는 과정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적 임무를 맡은 대원들의 정확한 국적은 결코 드러나지 않으며, 사다나의 인물 이름(‘카네다 대장’)을 제외한 다른 이름들은 모두 의도적으로 특정한 국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기억하기 쉽고 북미의 느낌이 뚜렷하다(양자경의 인물 이름은 ‘코라존’이고 웡은 ‘트레이’다).

<선샤인>은 다양한 발음의 영어가 세계 공통어인 통합된 미래를 가정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이야기할 때 ‘마일’ 단위를 사용하고, 동양인은 흑인을 대신하여 다문화적인 장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얼굴이 됐다. 흠, 이것은 2057년이라기보다는 2007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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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