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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신인류가 왔다
김도훈 2007-04-27

김연아가 프리 종목 연기를 펼치기 직전, 한국의 해설자는 “잘 싸워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잘 싸우긴 뭘 잘 싸워. 누가 들으면 아사다 마오랑 머리채 붙잡고 얼음판 레슬링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항전의 부르짖음이 해설로 깔리는 동안 김연아는 멋지게 경기를 마무리했고, 두번이나 넘어졌는데도 싱글벙글이었다. ‘금메달을 못 받아서 조국과 엄마에게 죄송스럽다’는 양 오만상 찌푸리던 80년대 구국의 스포츠 전사들처럼 울지도 않았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는 신나게 미소지었다. 다음날 한국의 매체들이 커다란 활자로 박아놓은 제목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아쉬운 3위. 김연아는 나이 서른 더 먹은 그들보다 훨씬 명석했다. 인터뷰에서 “성인 무대 첫해였던 이번 시즌은 만족스럽다. 한국 피겨 사상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 입상은 의미있다”며 자신의 공적을 치하한 김연아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냐는 스포츠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똑 부러지게 응수했다. “생각없다. 일단 몸이 정상이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그 다음이다.”

박태환은 비장한 얼굴로 몸을 풀며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400m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하얀색 아이포드에 담긴 음악을 고개를 살짝살짝 까딱거리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는 근사한 상체를 기울이며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역전을 성공시켰다. 아시아의 물개라니, 이 녀석은 아시아의 어뢰였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특유의 배시시한 웃음을 짓던 박태환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뭐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럽다도 아니고 조국의 전사로서 자랑스럽다도 아니라고? 18살 청년은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자네가 왜 조국과 태릉선수촌의 영광을 대변해야 하나.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말은, 그 은밀하고도 오만한 자신감 덕택에 언제 들어도 근사하다.

그들이 오래된 한국인 코치와 결별하고 부유한 기업의 스폰서를 얻어 세계 최강의 코치진을 맞이했을 때, 한국의 신문들이 쏟어낸 추잡스런 경고들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들은 ‘초심을 잃지 마라’고 호통쳤다. ‘크게 성공하니까 동고동락하던 조강지처를 버리는 격’이라 했다. ‘힘을 합치고 집중해도 세계 정상의 목표는 멀기만 한데 왜 이러냐’고 경고했다. 압권은 ‘자칫 다가오는 세계선수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올 경우 이번의 사태가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경고였다. ‘이제 혼자의 몸이 아니라 국보급 인기를 누리는 대한민국 소속 선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니, 대체 국가가 뭘 해줬기에. 대한민국 스포츠계랑 언론계 X까라 그래. 두 사람 모두 낡은 태릉선수촌에서 국내 신기록이나 세우며 국가의 녹에 매달려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것이고 누구도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

조국의 명예를 짊어진 구국 전사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맞이한 듯하다. 일본 선수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혈전을 당부하는 목소리는 이제 왠지 측은하다. 김연아와 박태환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거나 가난을 탈출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만들 명연을 펼치면서 돈도 두둑히 벌 수 있는 세계의 무대다. “싸워달라” 그만 부르짖고 “즐겁게 경기해달라” 요청하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비장한 해설자들과 낡은 언론이 88올림픽적인 정신세계를 내버리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즐기는 시대다. 세상이 변했다. 신인류가 왔다. 적응해야 하는 것은 우리 늙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