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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한국영화 속 침묵의 조화에 주목한다

제9회 우디네극동아시아영화제, <예의없는 것들> 관객 최고상 수상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호기심, 영화를 보는 자유’를 컨셉으로 열린 제9회 우디네극동아시아영화제(이하 우디네영화제)가 지난 4월20일부터 28일까지 9일간 개최됐다. 일본에서 거대한 흥행 수익을 기록한 판타지영화 <도로로>로 개막한 이번 우디네영화제에서는 아시아 각국에서 온 59편의 아시아영화들이 상영됐다. 한국영화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박철희 감독의 <예의없는 것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김은경 감독의 단편영화 <디 데이> 등 14편의 영화가 초청됐고, <타짜>와 <바람피기 좋은 날>을 동시에 들고 우디네를 찾은 여배우 김혜수는 ‘아시아의 디바’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디네를 찾은 많은 관객에게 올해 한국영화들은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 쏟아져나왔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3월에 열린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부터 이 같은 지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아시아영화를 수입해온 수입업자 파비오 스카르첼리는 “한국영화를 수출하려면 조금은 잘라야 한다”며 “<타짜>는 영화가 2시간19분이 넘는다. 그러나 2시간이 넘는 한국영화는 극장들이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디네에 모여든 기자와 관객은 러닝타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한국영화의 최근 경향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시아엑스프레스(www.asiaexpress.it)라는 인터넷 영화 사이트를 운영하는 스테파노 로카티는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첫 30분은 등장인물과 스토리의 강렬함에 이끌려 어느새 시간이 지나버린다. 그러나 이후 1시간부터가 한국영화의 가장 애매한 순간이다. 강렬함은 그 순간부터 퇴색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타짜>를 들고 우디네를 찾은 최동훈 감독은 “한국영화는 중반부터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타짜>는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도 가장 긴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영화가 길다는 지적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문화 차이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아시아 영화 전문사이트 홍콩익스프레스(www.hkx.it)를 운영 중인 마테오 디 줄리오는 “홍콩영화가 멜로드라마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고 이미지와 음악의 조율이 뛰어나다면, 중국은 배우의 연기가 가장 돋보이며, 그에 반해 한국영화는 침묵의 조화가 가장 큰 특징이다”며 “한국은 무거운 영화든 가벼운 영화에서든 침묵을 아주 적절히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시아영화들이 모두 다 같은 맛일 수는 없다. 나라마다 다른 맛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영화들을 모두 음미해볼 수 있는 우디네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예의없는 것들>이 관객 최고상을 받은 것은 뜻깊은 일로 여겨진다.

<그대와 함께한 여름>의 시에동 감독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

한국영화의 인기는 여전했지만 아무래도 올해 우디네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중국어권 영화였다. 특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가고 싶어하는 시골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에동 감독의 <그대와 함께한 여름>은 올해 우디네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과거를 향해 떠난 여행이었다. 운명과 삶을 바꾸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을 통해 내가 그들 나이에 가졌던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대와 함께한 여름>을 비롯해 당신의 작품들은 모두 소통장애를 다룬다. =그렇다. 어떤 관계든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부, 부자, 애인 등 세계의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택한 것이다. 첫 영화인 <가장 추운 날>(The Coldest Day)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였고, <그대와 함께한 여름>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였다. 80, 90년대와 오늘의 사랑을 주제로 한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

-장이모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조감독을 거치는 것은 중국 영화계의 전통인가. =중국에서 조감독을 통해 감독으로 성장하는 것은 클래식한 성장과정이 아니라 선택일 뿐이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도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장이모는 스승 혹은 가족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