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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안시환(영화평론가) 사진 오계옥 2007-05-09

<상어> 김동현 감독

200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배고픈 하루>는 각박한 현실이 숨통을 꽉 조여올 때 이를 일순간에 뛰어넘는 판타지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다. 영화 속 판타지가 현실을 도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읽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순간이 현실의 압력에 의해 압사 직전에 놓인 인물들의 고통을 쓰다듬어주는 할머니의 약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상어>는 <배고픈 하루>의 김동현 감독이 그 다음해인 2005년에 완성한 장편 데뷔작이다.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였던 <상어>는 자신의 영화가 이 세상을 향한 치유의 손길이 되기를 바라는 김동현 감독의 영화적 경향이 여전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2005년 작품이었던 <상어>가 개봉을 앞둔 지금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처음 만난 사람들>의 촬영을 이제 막 마치고 편집을 준비하고 있다.

-배용균 감독의 조감독을 했다는 정도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 =나는 <주말의 명화> 세대였다.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을 보고 배용균 감독님을 찾아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하게 됐다. 처음 찾아갔을 때는 기다리라고만 하시더라. 그러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에서 작업하게 되면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배용균 감독 영화의 어떤 면에 끌렸는가.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텔지아>를 보면서도 그런 걸 느낀 적이 있었지만, 나한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무엇보다 새로운 영화였고, 영화의 상징 체계라든가 하는 것들이, 사람의 지식을 고도화한 선례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2004년의 <배고픈 하루>를 통해서이다. 상대적으로 그 이전의 작품 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97년에 <섬으로부터>라는 무명 언더그라운드 가수에 대한 영화를 찍었고, <배고픈 하루> 이전에는 단편영화를 찍지 않았다. 그 사이에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도 하고, 계속 시나리오도 쓰고, 책도 읽고 그랬다. 언젠가 다시 세상에 나가게 되면, 그때 아무 준비없이 나가게 되면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 끊임없이 준비하려고 생각했다.

-20대에 영화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영화현장에서 활동하게 하는 궁극적인 힘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 성격이 하나가 해결이 안 되면 그 다음으로 못 넘어가고 하는 게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면 중간에 그만뒀을 거다. 중간에 지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게 영화를 끝까지 하게 한 힘이었다. 장편을 만들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을 거다. 많은 감독들이 데뷔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런 점에서 보자면 난 어느 정도 나의 방식으로 데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독립영화 진영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독립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이 있는가. =언젠가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위원장이 독립영화 워크숍을 맡아달라고 연락해온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한 얘기가 난 영화를 만들면서 독립에 대해 그리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난 그냥 영화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지, 그 앞에 독립을 붙여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어>를 찍으면서 염두에 두었던 본인만의 미학적 실천이 있는가. =무책임한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촬영할 때 ‘나다운 것이 나오겠지’ 하는 믿음을 갖고 찍긴 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내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오르는 거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차를 어디다 갖다 박고 싶을 정도로 속상했다. 아무래도 <상어>가 첫 장편영화이다보니 데뷔 감독들이 거쳐야 하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미학적인 것들이 다 나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영화에 내 자신의 오랜 관심사들이 투영되긴 했을 거다. 가령, 여러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며 형성하는 관계라든가, 여러 길로 쫙 퍼져 있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한곳으로 모인다든지 하는 서사는 내 기본적 관심사이다. 그리고 사람들 말로는 (배용균) 감독님의 영향력이 보인다고도 하는데, 그건 의식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상어>는 언제부터 준비한 작품인가. =시나리오는 98년에 써놓았는데, 다시 꺼내들어 다듬었던 것이 2005년 영진위 디지털 장편 제작 지원을 받으면서 그해 8월에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내가 생각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더운 여름에 한 남자가 상어를 들고 도시를 돌아다닌다는 기본적인 설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사용된 재즈 음악이 주는 여러 인상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한 3, 4개월 걸리는데, 그러면 대부분의 연락을 끊고 그냥 음악만 듣는다. 중간에 사람을 만나면 리듬이 깨진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작업에 들어가면 알아서 연락 안 한다. 집에서 음악 듣고 산책하고, 또 음악 듣고 산책하고…. 한두달을 그렇게 보낸다. (웃음)

-음악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는 것인가. =좋은 음악을 잘 만나면 나도 모르게 시나리오에 관한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상어>를 구상하게 해준 음악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쓰였던 재즈 음악이었다. 가장 먼저 시나리오로 쓴 장면도 그거였고. 그렇게 쓰기 시작하면 길면 두달, 짧으면 한달 정도니까 꽤 빨리 쓰는 편이다. 그 안에 못 쓰면 못 쓰는 거다. 지금 막 촬영을 끝낸 <처음 만난 사람들>도 특정한 음악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쓰기 시작해서 6일 반 만에 끝냈다.

-현장에서도 그렇게 빨리 진행하는 편인가. =<상어>도 현장에서 빨리 진행시킨 편이었지만, 첫 작품이라 그렇게 빠른 속도를 내지는 못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상어>의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필요없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내가 하도 빨리 찍으니까 촬영을 맡았던 오정옥 감독이 자기도 빠른 편인데 따라오느라 힘들었다고 하더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첫날에만 37컷을 쳤다. 퍼스트가 그 다음날 그게 영화 전체의 7%였다고 하더라. 시나리오든 촬영이든 간에 굳이 시간을 길게 끌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장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콘티북을 작성하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그대로 찍지는 않는다. 사전에 준비된 대로만 찍으면 현장에서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준비가 덜 돼 있을 때 현장에서 머리가 더 빨리빨리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에너지도 생기고…. 그 순간 순간에 대처하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뭔가 하나를 일부러 빼놓곤 하는데, 그 때문에 함께 일하는 스탭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웃음)

-<상어>에서는 특히 대구라는 지역적 특성이 중요한 듯하다. =가끔 <상어> 때문에 대구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난 대구 사람이 아니다. 배용균 감독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28살에 내려가서 31살까지 3년 동안 대구에서 보냈다. 각종 테스트 촬영은 제외하고 촬영만 300회였다. 청춘의 막바지를 대구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때가 한국에서 가장 더웠던 해로 얘기되는 94년이었던 탓에 대구의 여러 정서를 내 몸속으로 흡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가 갖는 폭염이 내리쬐는 도시라는 설정으로는 대구가 가장 적합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미쳐 있던 은숙이 제정신이 돌아와서 기차를 타고 귀향할 때, 어둠의 터널에서 멀리 보이는 밝은 빛 속으로 나아가도록 처리한 숏이었다. =여러 영화제에서 <상어>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때,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사실 내게는 이 장면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길 바랐는데,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쳐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터널에서 멀리 보이는 빛은 은숙이 악몽 같은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향 같은 곳으로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도박에 빠져 있는 준구가 가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데 실패한 곳이기도 하다. 준구를 어느 정도 현대인들의 초상처럼 그리고 싶었는데, 현대인들은 결정적일 때 준구처럼 잠들어버리면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터널에서 보이는 그 빛은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이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한 질문들이 또 있는가. =또 하나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이 영화를 홍보하고 있는 한혜미씨가 이메일로 질문을 해온 거다.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써서 장문의 편지로 답해줬다. (웃음) 질문은 유수와 아버지가 만날 때, 왜 그 만남을 완전한 해피엔딩으로 처리하지 않았는가 하는 거였다. 나는 우리의 삶이 완전한 해피엔딩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출소한 유수가 그렇게 찾던 아버지를 딱 만났는데, 아버지가 거의 반쯤은 죽은 식물인간으로 나타났다면, 유수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는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고 본다. 할 말을 다 해도 정리되지 않고 남는 것들이 있다는 거다. 유수가 아버지를 만난 것 자체는 반쯤은 해피엔딩이지만, 그런 행복이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니까.

-인물들의 만남이 긴밀하다기보다는 우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인물들간의 관계를 느슨하게 처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이야기의 완성을 위한 지나친 우연? (웃음) <상어>를 만들면서도 이 부분을 걱정했었고, 영진위에서 디지털 장편영화 지원을 받는 심사 과정에서도 지적된 것이었다. 우연이 많은데 해결할 방법은 있느냐고 묻기에 그냥 모르겠다고 했다. (웃음) 그런데 막상 영화를 만들고 나니까 이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더라. 다들 그들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선이 되고 행복이 되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난 의도되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좋다.

-현실적 삶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적 같은 순간들을 극에 새겨넣는 것이 흥미롭다. 전작이었던 단편영화 <배고픈 하루>에서도 기적 같은 장면으로 끝맺지 않았는가. =현실만 바라봐서는 희망을 갖기 힘드니까. 현실에 조금만 눈이 열려 있다면 자기가 사는 세상이 다 더러울 거다. (웃음) 그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게 되는 거 같은데, 난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배고픈 하루>의 마지막에 아버지가 뛰어가는 장면이나 <상어>에서 은숙이 비오는 날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적도 일종의 판타지로 보일 거다. 나는 현실의 거대한 산에 막혀 어디로 갈지 모를 때 그 산 건너편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판타지 속에 있다고 본다. 기적의 순간을 판타지적인 느낌으로 찍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경향은 배용균 감독님에게 배운 것이기도 하다. 그게 좋아서 감독님을 찾아가기도 했고. 난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것에는 큰 즐거움을 찾지 못하겠더라.

-하지만 지금 촬영 중인 <처음 만난 사람들>은 리얼리즘적으로 접근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막 촬영이 끝났고, 이제부터는 편집을 해야 한다. 지난해 연말인가, <씨네21>과 인터뷰할 때 기존의 나와는 다른 리얼리즘영화가 될 것 같다고 실컷 떠들었고 그렇게 되겠거니 했는데, 결국에는 그렇게 완성하지 못했다. (웃음) 결국 전작들처럼 판타지 같은 장면들이 곳곳에 드러날 것 같다. 내가 어디 안 가는 거지 뭐.

-<상어>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관객과의 소통에 대한 부담은 없는가. =없다. 정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영화에 대해 좋다는 사람도 있고 별로라는 사람도 있고, 나도 그런 얘기를 듣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니 이제 그 접점을 알겠더라.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나니까,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다. 처음에는 그게 정말 충격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어려울 수 있지, 하는 생각.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사람들도 이해가 되더라. 10년 전에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써놓은 시나리오를 다시 펼쳐든 작품이다보니 개인적인 성격이 강하게 만들어졌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인연이 닿아서 관객이 본 뒤에 내가 어쭙잖게 깔어놓은 인생에 관한 얘기나 철학을 이해하면 다행이고…. 흥행에 대해서는 내 손을 떠난 것 같다. 적은 돈으로 찍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이고. 반면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예산 규모가 훨씬 늘어났다. 나도 인간인데, 그 예산에 맞는 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내용은 <상어>보다 쉬우니까 <상어>보다 잘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당장은 <처음 만난 사람들>의 편집 작업이다. 어떤 영화가 될지는 붙여봐야 알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들>을 찍으면서 컷을 <상어>보다 많이 잘라봤는데, 문득 그냥 관습적으로 컷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제부터는 내 스타일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그래야 영화 찍는 게 훨씬 더 재밌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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