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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다큐멘터리, 질주하다
2001-10-19

<소신>의 이규정 오가와 신스케상 수상, 국제경쟁부문 대상은 리티 파뉴의 <방황하는 사람들의 대지>

지난 10월 9일 막을 내린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필름페스티벌은 올해 한국 여성다큐멘터리감독들에게 충실한 가을걷이 자리였다. 모두 여섯명의 감독이 참가해 4명이 수상하거나 특별언급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호주로 이민간 멜리사 리(이규정) 감독의 <소신>과 <사랑에 관한 실화>가 ‘아시아천파만파’ 부문에서 대상격인 오가와 신스케상을, 황윤 감독의 <작별>이 장려상을 받았고, 김소영 감독의 <하늘색 고향>이 스페셜멘션을 받았다. 계운경 감독의 <팬지와 담쟁이>에는 넷팩상 스페셜멘션이 돌아갔다. 오가와 신스케상 수상은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이후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다. 멜리사 리 감독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주제를 독자적인 접근을 통해 유쾌하게 다룬 <소신>과 미국에서 만난 아시아 남성(한국계와 일본계)과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재구성한 <사랑에 관한 실화>라는 대조적인 두 작품을 통해 뛰어난 작가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와 찬사를 받았다.

한편 국제경쟁부문에서는 프랑스와 캄보디아가 공동제작한 리티 파뉴 감독의 <방황하는 사람들의 대지>가 대상인 로버트·프랜시스 플레허티상을 수상했고,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만든 <반다의 방>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방황하는 사람들의 대지>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캄보디아의 광케이블 공사현장에서 노동하는 캄보디아인의 일상을 조명하면서 이 작업 때문에 방황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의 생활상과 세계화된 신기술의 모습을 대비시켜 캄보디아 역사의 비극을 구체화했다”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조그마한 반다의 방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반다의 친구들과 마약, 그리고 점차 파괴되어가는 주변를 담은 <반다의 방>은 문명의 경계 속에서 파괴되어가는 집단의 모습을 윤리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뛰어난 영상미로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비디오로 제작된 작품, 올해부터 인정

일본 다큐멘터리의 거장 오가와 신스케가 주축이 돼 출범시켜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다큐영화제로 성장한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올해로 7회를 맞이하고 있는데 작품 선정방식과 내용에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국제경쟁부문에 비디오 작품의 출품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사무국장인 야노 카즈유키는 “10년 전 비디오 작품은 TV프로그램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작품을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10년 동안 기술의 진보, 감독의 사고방식의 변화, 비디오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표현의 발전 등이 쌓여 비디오 작품도 국제경쟁작품에 선정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야마가타영화제에 출품된 1천여 작품 가운데 70% 정도, 상영된 작품의 40%가 비디오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국제경쟁부문의 작품 선정방식이다. 과거 감독이나 평론가가 중심이 된 전문가들이 결정하는 작품 선정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킨 것이다. 시작하는 작품 선정과정부터 공모로 선발된 3명의 시민을 작품 선정위원에 참가시켜 시민의 눈으로 작품을 선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모험적인 시도를 했다. 일반 관객을 비롯해 시민들이 함께하는 영화제를 만들려는 기획의 일단이었다.

야마가타영화제의 국제경쟁부문에 선정된 15개의 작품 가운데 <A2>는 각별한 주목의 대상이 됐다. 옴진리교를 내부의 시각으로 2년이 넘도록 취재해 만든 모리 타쓰야 감독의 는 ‘민중의 적은 바로 옴진리교’라는 등식을 둘러싼 일본사회의 모습을 신도와 지역주민, 경찰, 우익, 매스컴 등을 통해 부각시켰다. 세계적인 영화비평가 코몰리의 작품인 <한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스페인혁명 당시 아나키스트 부대를 지휘했던 혁명가 부에나벤추라 뒤르티를 연극과 노래로 재현해낸다. 무대장치도 없는 거리에서 즉흥 연극을 통해 그의 삶은 재현되고 그것은 바로 영화가 된다. 뒤르티의 삶이 감각과 감성을 통해 체화된 작품이다.

전쟁과 음악.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이는 단어들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은 <크레이지>. 디 호디그만 감독은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 전쟁에서 음악의 힘과 기능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크레이지>는 병사들이 기억하는 음악을 들으며 전장에서 병사들이 통감하던 공포와 무기력, 책임감과 향수, 사랑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정신치료소 드비니에르에서 살고 있는 환자들의 일상을 기록한 브누아 디르보 감독의 <드비니에르>는 인간으로 살 권리가 있는 불치의 정신병 환자들의 삶을 자연·시간과의 관계로 이해하고 끈질기게 그들의 삶에 밀착한다. 알려지지 않았던 나치의 동성연애자에 대한 차별을 다룬 롭 엡슈타인과 제프리 프리드만 감독의 <형법 175조>는 역사에서 은폐되었던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주의 소비에트에서 살았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사적인 청춘연대기>는 감독 자신의 청춘 시절을 연대기 형식으로 재현한 작품. 만스키 감독은 이 작품이 러시아영화사상 최초의 ‘인민의’ 영화라고 주장한다.

아시아감독을 발굴하는 창

야마가타영화제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작업은 아시아감독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네트워킹하는 작업이다. 야마가타영화제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생전의 오가와 신스케 감독도 아시아의 다큐멘터리감독에 주목하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관심은 아시아의 작품을 모은 ‘아시아천파만파’에 집중되고 있다. 아시아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아시아천파만파’는 올해 한국 여성감독의 다큐멘터리에 주목했다. 아시아다큐멘터리를 선정한 후지오카 아사코는 “한국에서 많은 작품을 응모해왔다. 시대를 표현한 작품을 중심으로 골랐는데 우연히 모두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천파만파’에서는 한국의 수상작말고도 야스민 카비르 감독의 <이민자의 마음>, 두 하이빈 감독의 <철로를 따라>, 왕펑 감독의 <불행한 것은 한쪽만이 아니야>, 니라지 바신 감독의 <나의 친구 수> 등이 호평을 받았다.

야마가타는 디지털 작업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디지털 이미지와 표현으로 카메라앞의 형상과 현장을 재구성한 존 조스트 감독의 이나 도시의 단편들을 이미지 합성으로 그려낸 탄 카이싱 감독의 <염소(鹽素) 중독> 등은 디지털 이미지 표현의 현재를 발언하고 있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등 아시아지역에서도 디지털 캠코더로 만든 작품이 증가하고 있었다. 디지털 비디오 작품의 증가는 저렴한 제작비로 간편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다큐멘터리영화제의 세계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

한편 야마가타영화제에서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서 현대사회의 본질을 정치적 비평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작품들을 만들어온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과 일본의 세계적인 반전다큐멘터리감독이었던 가메이 후미오의 특별회고전이 마련되어 두 감독의 전 작품이 상영되었다.

야마가타=글·사진 안해룡/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 ▶ 한국 여성다큐멘터리, 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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